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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홍성담 화백의 ‘유신풍자화’, 어떻게 봐야 하나

등록 2012-11-29 19:22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한 아기를 낳고 있는 홍성담 화백의 유신 풍자화가 논란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이 홍 화백의 그림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이하 ‘골든타임’)에 대해 정치선동이라며 법적 조처를 고려하겠다고 나서자, 홍 화백은 다시 자신의 블로그에 ‘출산-1’을 올리면서 맞불을 놓았다. 이들 작품을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여성성에 대한 모독이라는 비판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양쪽의 견해를 들어봤다.

‘중성적’ 공포 정치인 조롱이 본질

외설성 등 표현 수위에 문제없고
박근혜의 퇴행적 언행 풍자한 것뿐
여성·출산 비하로 보면 과잉해석

세칭 ‘박근혜 출산’ 그림 앞에 선 자신을 찍어 달라며 인증사진을 부탁한 대학생을 전시장에서 만났다. 미대생이냐고 물으니 법대생인데 수업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 때문에 그림을 보고 오라 했단다. 당대 미술품이 사회적 주목을 끌어낸 극히 희귀한 경우다.

홍성담의 문제작 ‘골든타임’은 평화박물관의 ‘유신 40년 공동 주제 기획 6부작’ 중 ‘3부: 유신의 초상’ 전시에 걸린 여러 출품작 중 하나로, 박근혜 후보가 선글라스를 착용한 박정희를 낳고 있는 그림이다. 표현 수위의 적정성을 합의할 기준은 없을 터인데, 잘라 말하면 문제될 게 없는 표현이라고 본다. 직접 보기 전에 여성 비하적 작품이란 풍문을 들었을 때만 해도, 외설성이 지나친 줄 알았다. 요컨대 알몸이나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러나 임산부복 차림으로 누운 박근혜 후보를 보며 김이 샜다. ‘고작 이 정도를 갖고.’ 표현의 극단을 보여주는 무수한 서구 미술의 사례를 애써 열거하진 않으련다.

이번 소동은 현장 미술계와 세상 사이에 얼마나 먼 거리가 놓여 있는지를 새삼 확인시켰다. 새누리당은 전시의 시점을 문제 삼아 민주당 후보를 위한 네거티브를 대행한 그림이라며 음모론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시점이 문제될 건 없다. 대선 국면에서 자당 후보가 대선 기간 동안 부친인 구시대 독재정치가를 연상시킬 정치 언행을 반복한다면, 그 현상은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의적 주제일 수 있다.

더욱이 총 3점으로 구성된 홍성담의 출품작 가운데 문제작은 제목에서 보듯 지난 9월 종영한 의학드라마 ‘골든타임’의 극중 의사를 출연시켰고, 또다른 작품 ‘바리깡1. 우리는 유신 스타일’은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던 박정희 시대 청년들과 박근혜와 박정희가 싸이의 말춤을 집단으로 추는 그림이니 ‘시점’으로 볼 때 당대 문화 코드를 차용해 정치 현실을 풍자한 경우일 뿐이다. 각별하게 참신한 시도도 아니었지만 충분한 시의성을 띠는 풍자란 얘기이다. 더구나 문재인을 돕기 위해 그렸다면 왜 안철수가 사퇴하기 직전 전시를 했을까? 전시 기간 중 안철수의 지지율을 앞선 문재인을 박근혜의 대항마로 새누리당이 봤기 때문에, 저런 자의적 논평을 내놓는 걸 테다.

보수진영 그리고 진보진영 일부에서 비난하는 성정치학의 문제, 즉 여성 비하도 과잉해석이다. 그 정도 은유로 여성 출산이 비하됐다고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설령 그렇게 느꼈다 한들 홍성담의 의도는 박근혜를 ‘여성’ 정치인이 아닌, 낡은 과거의 회귀를 암시하는 ‘중성’적 공포 정치인으로 조롱할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린 이의 과거사도 이 소동에서 이해의 맥락을 제공한다. 홍성담은 독재정치 시절 그린 걸개그림이 국가보안법에 걸려 조사실로 끌려가 무려 25일간 물고문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런 이라면 과거 회귀를 직면하는 공포감이 보통사람보다 갑절은 클 것이다. 과거 회귀의 공포감을 조장하는 자를 법적으로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까? 그 대안으로 정치 현실을 은유적으로 조롱한들 이런 비난까지 감당해야 할까? 권영세 새누리당 종합상황실장은 “예술은 예술이어야 한다”며 법적 대응을 암시했다. 풍자적 예술은 그냥 예술로 보면 된다. 취향 차이를 빌미로 민심 규합을 노려 작품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게 정작 문제이다. 정치가 정치다웠으면 한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비혼여성 희롱한 반여성적 작품

출산이란 소재로 공격하는 대상은
‘보수’ 정치인 아닌 ‘여성’의 처녀성
이런 성희롱적 조롱이 과연 풍자인가

점입가경이다. 홍성담 화백의 그림 ‘골든타임’에 대해 박근혜 후보 진영이 사법대응을 밝힌 데 이어 홍 화백이 자신의 블로그에 그림 ‘출산-1’을 올렸다. 여성의 생식기에서 뱀의 몸통을 한 박정희가 태어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이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법상의 후보자 비방 혐의로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나는 위 그림들에 사법적 판단을 가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비판의 필요성을 느낀다. 다만 그 비판의 초점이 예술은 정치적 선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느니, 예술은 혐오스러워서는 안 된다느니 하는 조야한 예술인식에는 반대한다. 또한 그림이 음란하거나 패륜적이란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위 그림이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성차별적이기 때문이다. 그림이 굳이 출산이라는 성적 소재를 써서 풍자하는 대상은 ‘보수’ 정치인 박근혜가 아니라, ‘여성’ 정치인 박근혜다. 즉 정치인이라는 기득권이나 유신을 옹호하는 보수적 이념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소수자적 특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대상의 강자적 측면이 아닌 약자적 측면을 조롱한 것으로, 이는 성·인종·장애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것에 해당된다. 오바마에게 ‘깜둥이’라고 말하거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절름발이’라고 부르는 건 권력에 대한 풍자가 아니라 ‘혐오발언’이다. 지난 총선 때 불거진 콘돌리자 라이스에 대한 김용민의 ‘강간 발언’ 역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의 그를 공격한 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그를 공격한 것이기에 문제가 되었다.

박근혜의 ‘여성’을 공격한 이유에 대해 홍 화백은 “박근혜의 처녀성과 몰지각한 여성의 가면을 벗겨내기 위한” 것이라 답했는데, 이는 매우 퇴행적이다. 물론 박근혜의 성녀 이미지나 여성 대통령론은 허구다.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여성적 가치를 실현하리란 기대도 무망하고, 그간 여성적 가치와 가장 먼 정책과 조직문화를 보여 온 새누리당이 갑자기 이를 운운하는 것도 민망하다.

그러나 그동안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유리천장’에 부딪혀 온 여성들에게 ‘여성 대통령 자체가 정치개혁’이라는 구호가 솔깃한 위로로 들리는 것 역시 사실이다. 특히 정치에서 소외됐던 40~50대 여성 지지자들이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반대 진영에선 박근혜가 생식기만 여성일 뿐, 출산·육아 등 여성 일반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기에 ‘진정한 여성’이 아니란 논지를 펴왔다. 박근혜가 ‘아버지의 딸’로 정치에 입문한 뒤 가부장적 질서를 흔드는 정치를 해오지 않은 점에서 그가 여성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진정한 여성’이란 논의가 비혼 여성을 배제하고 있으며, 비혼 여성의 처녀성을 문제 삼는 홍성담식 조롱이야말로 반여성적임을 자각해야 한다.

반대 진영은 ‘생식기’만 여성이라는 비판과 더불어 바로 그 유일한 여성적 지점인 ‘생식기’를 조롱함으로써, 박근혜에게 여성 일반의 경험인 ‘성희롱’을 선사한다. 텔레비전 광고 속 박근혜는 유세 중 맞은 칼침을 강조한다. 조롱의 칼끝은 그를 박해받는 여성 정치인으로 재규정할 것이고, 여성 대통령론이란 허구적 프레임은 비로소 그 내용을 얻을 것이다. 총선 때 김용민 파문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필패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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