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하루키(왼쪽) 도쿄대 명예교수가 2019년 9월 <러일전쟁-기원과 개전>(한길사 펴냄) 출간에 맞춰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한길사 제공
일본의 진보적 원로 지식인들이 “한국 법원의 일본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은 국제법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한·일 정부가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를 발전시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 우쓰미 아이코 게이센여학원대 명예교수 등 원로 지식인 8명은 24일 오후 도쿄 지요다구 중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공동 입장문(공동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1월 한국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일본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에 “인권은 ‘주권면제’에 우선한다는 국제법의 최근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주권면제(국가면제)는 ‘타국의 주권 행위는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을 말한다. 이들은 “2000년 이후 식민지 지배로 발생한 고통이나 희생에 대해 (가해)국가가 사죄하거나 배상하는 움직임이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일 관계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원로 지식인들은 “판결로 역사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역사인식과 외교, 국민감정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끈질긴 대화와 외교적 지혜, 국민에 대한 설득을 통해서만 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에이포(A4) 7장 분량 입장문 상당 부분을 1991년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1997년 작고)의 증언, 1993년 고노 담화, 2015년 합의 등 25년 가까이 진행된 한-일 간 화해와 타협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할애했다. 그러면서 “(역사 문제는) 한·일 국민의 합의와 화해에 기반한 공동 작업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일본이) 한국 쪽과 대화를 하는 것밖에 해결책이 없다”고 주장했다.
원로들은 여러 논란이 있지만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재확인”하고 “합의의 정신을 더욱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일 정부에 요청했다. 당시 합의문에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 일본 총리로서 모든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다”는 부분이 있다. 이들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이 부분을 문서로 만들어 서명한 뒤 주한 일본대사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전달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이 합의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만큼, 일본 정부가 합의 당시 출연한 기금 등을 ‘위안부 문제 연구소’ 설립에 쓸 수 있도록 일본 쪽과 협의하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는 “피해자의 고통을 잊지 않고 오랫동안 후세에 기억하게 하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로들은 “코로나19, 기후변화 등 한·일 혹은 동아시아 지역은 함께 손을 잡고 대처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한-일 관계를 개선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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