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2시 30분께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방문한 일본인 키무라 리에(46·여)가 한글로 쓴 피켓을 들고 소녀상 옆자리에 앉아 “한국인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외치고 있다. 부산/김상금씨 제공, 연합뉴스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일본 정부가 ‘위안부상’으로 명칭을 통일해 부르기로 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평화의 소녀상을 ‘소녀상’으로 불러왔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3일 오후 정례 기자회견에서 ‘자민당 내에서 소녀상의 명칭을 위안부상으로 통일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질문에 “정부가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위안부상이고, 이전부터 위안부상이라고 표현해왔다. 위안부상이라는 게 어떤 의미에서 가장 알기 쉬운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소녀상이라는 표현은 안 쓰고 위안부상으로 통일하는 것이냐’는 추가 질문에 “지금까지 위안부의 소녀상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위안부상 쪽이 (더) 알기 쉬운 게 아니냐는 생각은 든다”며 명칭을 통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한-일 간의 최대 외교 현안이 돼 있는 소녀상의 정식 명칭은 평화의 소녀상이다. 이 상을 만든 김서경·김운성 작가는 그동안 여러 자리에서 이 상이 일본에 대한 증오를 키우기 위한 조형물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염원했던 할머니들을 위한 ‘평화의 비’임을 강조해 왔다. 소녀상은 할머니들이 20년 넘게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요구해 왔던 일본 대사관 앞이라는 장소성을 살려 1000번째 수요집회가 열리던 2011년 12월 만들어졌다.
일본 정부가 새삼스럽게 소녀상에 대한 ‘명칭 전쟁’에 나서고 있는 것은 지난달 27일 자민당 외교부회에서 ‘소녀상’이라는 명칭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회의에선 “소녀상이라는 표현을 쓰면 실제 소녀가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허위의 소녀상이라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진 바 있다. 기시다 후미오 외상도 지난달 20일 외교 연설에서 이 상을 ‘위안부상’으로 불렀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가운데 미성년자가 다수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1944년 8월10일 버마의 미치나 함락 후 소탕작전에서 체포된 조선인 위안부 20명에 대한 ‘미국 전시정보국 심리작전반’의 <일본인 포로 심문보고>란 문서는 포로로 붙들린 여성 대부분이 성매매 경험이 없었던 이들이라며 이들의 나이도 밝혔는데, 동원 시점인 1942년 8월을 기준으로 나이를 환산하면 평균 연령이 21.1살이었다. 20명 가운데 미성년자는 절반이 넘는 12명이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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