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5일(현지시각) 윤병세 외교장관(왼쪽)이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NCC)에서 열린 한-일 양자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대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간 12·28 합의에 따라 출연을 약속하고, 지난 12일 한-일 외교장관 협의에 따라 “신속하게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재확인한 10억엔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지난 12·28 합의와 관련해 한-일 정부는 그동안 두 번에 걸쳐 의미있는 발표를 내놓는다. 하나는 12·28 합의 직후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진행한 기자회견, 또 하나는 이들이 지난 12일 전화회담을 한 뒤 공개한 양국 정부의 발표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두에서 10억엔의 성격을 함축해 정리하는 돈의 ‘명칭’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양국은 12·28 합의 땐 이 돈을 “일본 정부의 예산”이라고 표현했고, 12일 발표문에선 “(일본의) 정부예산 10억엔”(한국), “10억엔의 자금”(일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쳤다.
한-일 양국 정부가 이런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이 자금의 성격을 정하는 순간 12·28 합의의 성격이 명확히 규정되고, 그 결과 한국의 국내 반발로 합의 자체가 무너질 수 있음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1995년 일본 국민들의 성금을 기초 자금으로 한 ‘아시아 여성기금’을 발족하며 한국 등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돈의 명칭을 ‘위로금’(償い金·쓰구나이킨)으로 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도의적 책임을 인정한 것일 뿐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게 아니다”는 피해자들의 반발이 이어지며 사업 자체가 실패로 끝난 바 있다. 당시 기금에 참여했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쓰구나이킨’의 한국어 번역을 ’속죄금’으로 했었다면 한국의 반응이 달랐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밝힌 바도 있다. 그 때문인지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지급하는 10억엔에 “배상적 성격이 있다”는 절충적인 설명을 시도해 왔다.
그러나 일본은 이 자금이 한국이 그동안 요구해 온 ‘배상금이 아니다’는 입장을 거듭해 밝힌 바 있다. 기시다 외무상은 12일 기자회견에서도 10억엔의 성격에 대한 일본 언론의 질문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청구권 문제는 법적으로 이미 해결된 것(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이라는 입장은 전혀 변함이 없다”며 이 돈이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배상금’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결국, 일본이 부담하는 자금의 성격과 관련해 ‘12·28 합의’는 21년 전 아시아 여성기금에 견줘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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