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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일장기 향해 절하며 “혐한·배외주의 좋다” 선동

등록 2013-06-06 20:17수정 2013-06-07 08:31

지난 3월31일 한류거리로 불리는 일본 도쿄 신오쿠보 거리에서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이 ‘한국인이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도록 하라’는 구호를 쓴 손팻말 등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3월31일 한류거리로 불리는 일본 도쿄 신오쿠보 거리에서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이 ‘한국인이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도록 하라’는 구호를 쓴 손팻말 등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배외주의’ : <외국인·문화 배책>
‘재일한국인 특권 허용않는 모임’ 등
우익단체 모여 “한-일 단교” 주장
“무섭단 얘기 못들으면 행동 무의미”

‘한국혐오’ 불쏘시개는 스포츠·독도
후쿠시마사고에도 “원전안전” 강변
불편한 사실 눈감고 왜곡 일삼아

무대 뒤편 벽 한가운데 대형 일장기가 내걸려 있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기미가요(일본 국가)가 울려퍼졌다. 검정 양복을 입은 사회자가 다른 두 사람을 데리고 무대로 들어왔다. 셋은 차례로 일장기를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사회자는 한쪽 다리를 꺾어세우기도 하고, 마이크를 쥐지 않은 팔을 쭉 뻗어 머리 위로 올리거나 이리저리 손을 내뻗으며, 대중선동을 하듯 강한 톤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의 입에서 ‘남조선’(한국)이란 단어가 흘러나왔다.

“일본에 있는 부정한 외국인들을 몰아내야 한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맞아”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개회를 알리고 무대를 떠나며, 셋은 다시 한번 차례대로 일장기를 향해 절을 했다.

지난 1일 낮 12시30분께, 일본 도쿄 메구로구 에바라히라오카 구민회관 1층 홀의 모습이다. ‘재일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모임’(재특회)을 비롯한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행동하는 보수운동 도쿄 총결의대회’를 열었다. 382석의 좌석 가운데, 10여명의 보도진을 빼면, 130석가량이 채워졌다. 20~30대가 절반가량이었고, 노인은 극히 드물었다. 3시간30분에 걸친 이날 실내집회는 일본 우익들의 주장을 날 것 그대로 들을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 “제2차 혐한 붐이 일고 있다”

야기 야스히로 재특회 부회장이 첫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스스로를 ‘네트 우익’(인터넷을 무대로 활동하는 우익)이라 불렀다.

“옛날에도 ‘조선’(북한)이 싫다는 이야기는 있었다. 그러나 한국이 싫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한국은 우리편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야기는 2002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주최한 월드컵 때, 제1차 혐한 붐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불공정한 플레이를 했고, 이를 계기로 인터넷에서 ‘재일한국인의 특권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탈리아전을 예로 들며, “한국이 정치, 스포츠에서 로비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이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했지만, 한국은 4강까지 올랐다. 야기는 네트우익이 이끄는 혐한 붐이 ‘조선학교에 대한 비판’을 시작하며 세력을 크게 키웠다고 자평했다.

“2009년 피겨 스케이트 문제로 2차 혐한 붐이 일기 시작했다.”

야기는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일본의 인터넷 사이트엔 이 문제와 관련해, 2009년 3월 김연아 선수가 ‘경기 직전 연습 때 진로를 방해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며 일본 선수들의 방해 의혹을 제기한 이야기가 많이 올라와 있다. 김연아 선수가 성적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그런 핑계를 댔다는 설명도 달려 있다.

야기는 “2차 혐한 붐에 올라타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자신감을 갖고 싸워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원전은 안전하다”

국가사회주의자동맹 부대표를 지냈고 히로시마 시의회 의원을 역임하기도 한 세토 히로유키가 두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때 민주당 정권이 원전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려고 부정한 방법을 썼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85명의 과학자가 2년간 연구해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유엔 과학위원회가 5월27일부터 회의를 열고 있다. 보고서는 주민의 건강에 아무 영향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다고 했다. 나도 후쿠시마에 살고 있어 불안했지만, 재특회는 초지일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인체가 영향이 없다고,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한 유일한 단체다.”(세토는 지난 2월 세계보건기구(WHO)가 후쿠시마 주변 어린이의 암 발생률이 최대 9배 높아질 수 있다고 밝힌 사실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는 “간 나오토 당시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등급을 ‘레벨 7’로 올려 체르노빌과 같은 등급으로 해버렸다”고 비판하며, “간 총리는 ‘내가 (원전에) 도착하기 전에 원자로 배기를 하지 말라’고 명령해 사고를 키웠다”고 비난했다. 반원전파인 간 전 총리가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이용해 일본의 모든 원전을 멈추려 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수소폭발’이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증기 폭발’이 일어났다고 몇 차례나 잘못된 표현을 썼다.

■ “배외주의라도 좋다”

사쿠라이 마코토 재특회 회장은 언변이 아주 좋다. 그가 ‘유’란 이름의 게스트와 함께 무대에 등장했다.

“한국더러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표기)에서 떠나라고 하는 걸 배외주의라고 한다면, 배외주의 좋은 거 아닙니까?” 게스트로 나온 유의 말에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사쿠라이는 5월24일 오사카에서 일본인 2명을 흉기로 찌르고 경찰에 체포된 한국 국적의 31살 남자가 “상대가 진짜 일본인이라면 몇명이고 해치고 싶었다”고 말한 사건을 들먹이며,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정신이상으로 결론지은 것에 분개했다. 사쿠라이는 50만명에 이르는 재일동포 가운데 한해 5000명이 범죄로 검거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 경찰청 통계를 보면, 2012년 재일한국인 검거자는 1007명이다.

사쿠라이는 “한국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가면을 놓고 계란을 던지는 사진이 신문에 났다, 그것은 ‘헤이트’(증오 표현) 아니냐”며 “매스컴이 대답해보라”고 맨 뒷자리에 앉은 보도진들을 쳐다봤다. 여기저기서 “대답하라”는 소리가 쏟아졌다.

그는 “일본 정부가 재일한국인에게는 귀화조건을 완화해 특권을 주었지만 그들은 귀화하지 않는다. 일본에 애착심이 없기 때문이고, 재일한국인으로 사는 게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특회는 생활이 어려운 재일한국인이 생활보호 수급을 받는 것도 특권이라고 강변한다. 생활이 어려운 외국인은 모두 받을 수 있으나, 외국인 가운데 재일한국인이 가장 많아 그 수치를 부각시킨다. 지하철 역 등에 한국어로 안내하는 내용을 별도로 표시하는 것도 이들은 불쾌해한다.)

사쿠라이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재특회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단체다. 오늘 여기에 프랑스, 한국, 일본 미디어가 다 왔다”며 <한겨레> 등 한국 언론을 향해 “우리가 무섭다는 얘기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 행동은 의미 없다. 한국인들이 ‘일본인 죽어라’라고 하는 데 대한 우리의 분노를 한국인들에게 꼭 전해달라”고 말했다.

■ “죽어라, 죽여라, 계속 쓰자”

행사를 마치기 전, 나카이 게이노스케 ‘신일장기 벗의 모임’ 대표, 도미나리 히토아키 ‘도쿄청소년의 모임’ 대표, 가네코 요시하루 ‘일본의 자존 자위를 되찾는 모임’ 대표, 기쿠카와 아케미 ‘일본 침략을 허용하지 않는 국민의 모임’ 대표, 가네토모 다카유키 하이가이샤(배외주의 운동단체) 전 대표가 나와 한마디씩 거들었다.

기쿠카와는 “우리는 시위에서 ‘죽어라, 죽여라’라는 표현을 단 한 번 썼을 뿐인데, 계속 그것이 클로즈업된다. 그럴 바엔 계속 그렇게 가자”고 말했다. 나카이는 “범죄 한국인을 일소하는 새 단체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가네코는 아베 신조 총리가 국회에서 신오쿠보 데모의 과격한 표현에 유감을 표시한 데 비해 “우리가 있어서 그들이 중도로 보이는데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한-일 단교’를 주장했다.

주최 쪽은 이날 인터넷 생중계를 동시 시청한 사람이 8500여명이라고 밝혔다. 인구가 1억3000만명에 이르는 일본에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치다.

도쿄/글·사진 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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