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3가구 가운데 1가구가 생활협동조합 계열의 공제조합이 취급하는 공제상품에 가입해 있다. 한 도시의 버스에 붙어 있는 현민공제 광고.
[99%의 경제]
정남구 도쿄특파원의 ‘일본 공제’ 체험
정남구 도쿄특파원의 ‘일본 공제’ 체험
두 아이 위해 공제조합 가입
입원하면 매일 6천엔
수술받게 되면 5만~20만엔
후유장애 생기면 14만~350만엔 어떻게 생겨났나
1970년 금속노조 아이디어
1973년 주민 대상 공제조합으로
이젠 전국서 7천만여명 가입 ‘싼 보험료’ 어떻게 가능한가
나이 무관 보험료·보상 동일
가입 권유자 전혀 안쓰고
자동이체로 수금원도 안둬 1970년 여름,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한 금속노동자가 퇴근길에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 과로 탓에 일어난 사고였지만, 산업재해 보상은 적용받지 못했다. 졸지에 가장을 잃은 유족이 퇴직금과 후생연금 일시금으로 받은 돈은 약 20만엔에 불과했다. 보험에 가입해 있었다면 걱정을 덜 수 있었겠지만, 당시 민간 생명보험은 보험료가 비싸서 가난한 노동자로서는 가입을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사이타마현 금속노조 서기장이던 마사키 만베이는 이런 사고들을 접하면서 큰 고민에 빠졌다. 2만5000명의 조합원 가운데 매년 35명가량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있었지만, 유족의 생계 대책은 없었다. 조합이 임금 인상 투쟁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족이 4년가량 어렵지 않게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200만엔가량의 일시금을 줄 방법은 없을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조합원 한 사람이 연간 2800엔가량을 내면 가능하다고 마사키는 판단했다. 그는 조합원들을 설득해 모두가 월 400엔씩 공제부금(보험료)을 내기로 했다. 연 4800엔씩 걷은 뒤, 사망자가 나오면 그 유족에게 200만엔씩 공제금(보험금)을 지급하고, 남는 1억2000만엔은 적립해 훗날에 대비하기로 했다. 30살에 가입해 사망시 200만엔의 보장을 받는 민간보험의 보험료가 당시 월 3200~3300엔 할 때였다.
“그렇게 적은 돈으로 보장이 가능하다면 사이타마현민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해보면 어떤가?” 금속노조를 떠나 전국생활협동조합연합회 일을 하고 있던 마사키는 이런 제안을 듣고, 고민 끝에 현민을 위한 공제조합을 창설하기로 했다. 1973년 일본 생협공제의 효시가 된 ‘사이타마현민공제생활협동조합’은 그렇게 출범했다.
마사키는 월 공제부금은 보통 사람의 세끼 식사값 수준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민간보험의 보험료가 월 7000엔가량일 때, 비록 보장 수준을 조금 낮추긴 했지만 사이타마현민공제의 월 공제부금은 2000엔이었다. 당시 <아사히신문>은 이를 “공상적인 보험료”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공제부금을 크게 낮출 수 있었던 것은 나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똑같이 책정하고, 보장도 같게 (일률부금, 일률보장)함으로써, 공제 가입 및 보상 절차를 아주 간단하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필요한 경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가입 권유자를 전혀 쓰지 않았다. 수금원을 두지 않고, 공제부금을 은행에서 자동이체 등으로 납부할 수 있는 시스템도 처음으로 도입했다.
사이타마현민공제는 권유자를 두지 않는 공제 방식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1995년 가입자 수 100만명을 돌파했다. 2011년 7월 현재 가입자는 284만명에 이른다. 사이타마현 전체 인구 720만명의 3분의 1을 넘는다. 연간 공제부금 수입총액은 606억엔(약 9000억원)가량이다.
사이타마현민공제를 모델로 한 공제생협이 일본 전국 각지에서 뒤따라 설립됐다. 현재는 도쿄도(도민공제) 등 전국 39개 도도부현에 공제생협이 설립돼 있다. 현민공제 그룹 전체 가입자 수는 2011년 1900만명을 돌파했으며, 연간 공제부금 수입총액은 5117억엔(2009 회계연도)에 이른다. 공제 사업은 물품구매를 중심으로 하는 다른 생협들로도 확산돼, 전국노동자공제생활협동조합연합회(젠로사이)에는 현재 3500만건, 일본코푸(CO·OP)공제생활협동조합연합회(코푸공제련)에는 670만건이 계약돼 있다.
탄생 이후 39년이 흐르는 동안, 공제 상품은 매우 다양해졌다. 특정 연령대에 조건을 맞춘 건강보험들이 많이 나와 선택폭도 매우 넓어졌다. 그러나 ‘적은 부금(보험료)에 높은 보장’이란 강점엔 전혀 변함이 없다. 기자가 2010년 3월 도쿄특파원으로 부임한 뒤, 곧바로 한 일 가운데 하나도 두 아이를 위해 공제조합에 가입한 일이었다. 코푸공제련이 취급하는 ‘18살 미만 주니어’를 대상으로 한 ‘다스케아이’(상호부조라는 뜻) 공제상품이 인기가 높았다.
이 공제상품은 피보험자가 병원에 입원하거나 사고(부상)로 입원할 경우 하루 6000엔을 지급하고, 사고로 통원치료를 할 경우 하루 2000엔씩 최대 90일간 지급한다. 또 수술을 받게 될 경우 5만~20만엔, 270일 이상 연속 입원하면 36만엔을 보장한다. 사고로 후유장애가 생기면 14만~350만엔, 병으로 사망하거나 중증장애가 생기면 100만엔, 사고로 사망하거나 중증장애가 생기면 100만엔에 추가로 50만엔을 지급한다. 이밖에 부양자가 사고로 사망하거나 사고로 중증장애를 입은 경우에도 100만엔을 지급한다. 월 공제부금(보험료)은 한끼 식사값인 1000엔이다. 물론 공제부금을 2000엔으로 늘리면 보장 수준은 갑절로 커진다.
도쿄/글·사진 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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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현민공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위) 도쿄의 한 주부가 아이와 함께 도민공제의 공제상품을 살펴보고 있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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