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9월 자민당 간부 인사와 함께 대대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기시다 총리가 새로 임명된 대신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총리 관저 누리집 갈무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자민당의 최대 파벌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 소속 임명 인사들을 내각에서 모두 내보낼 예정으로 전해졌다. 이 문제로 정권을 보는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아베파 전원 축출’이라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11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아베파 소속 대신(장관), 부대신(차관), 정무관 등 임명직인 ‘정무 3역’을 모두 경질할 생각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비자금 조성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만큼, 경질 대상을 아베파 간부에서 ‘정무 3역’으로 더 넓힌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쿄지검 특수부의 수사 진행 상황을 보며, 문제가 되는 임명직을 한 명씩 경질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면 지금도 20%대로 꼬꾸라진 내각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기시다 내각에서 아베파 임명직 ‘정무 3역’은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 스즈키 준지 총무상, 미야시타 이치로 농림수산상 등 대신 4명을 포함해 부대신 5명, 대신 정무관 6명으로 모두 15명이다. 신문은 “15명 전원 교체에 따라 대규모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소수 파벌 출신인 기시다 총리는 10일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정조회장(아베파)을 비롯해 모테기 도시미쓰 당 간사장(모테기파), 모리야마 히로시 당 총무회장(모리야마파), 총리의 최측근인 기하라 세이지 당 간사장 대리(기시다파) 등 파벌별 수장이나 핵심 인사를 만나 ‘아베파 전원 축출’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소 다로 당 부총재(아소파)는 전날인 9일 이미 만났다.
내각뿐만 아니라 아베파 소속 자민당 지도부인 하기우다 정조회장, 다카기 쓰요시 국회대책위원장도 교체 의향을 굳혔고, 세코 히로시게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도 경질을 검토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임시국회 폐회일인 이달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정권 운영 방향을 설명한 뒤 조속히 개각을 단행할 예정이다.
사실상 ‘아베파 학살’에 가까운 조치를 두고 아베파에선 거세게 반발하는 의원들도 나오고 있다. 아베파의 한 간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악수다. 부대신에 정무관까지 교체하면 (야당이 낼 가능성이 있는) 내각 불신임 결의안에 찬성해도 좋은 거냐”고 격하게 반응했다. 신문은 “아베파가 내각에서 전원 경질되면 파벌의 구심력 저하가 확실해 존속이 위태로운 상황이 될 수 있다”며 “파벌에서 탈퇴를 검토하는 움직임도 일부 있다”고 전했다.
자민당 다른 파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모테기파 간부는 “정치자금 문제가 아베파만으로 진정된다고 볼 수 없다. 그때는 후임자 찾기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치자금 문제는 2018~2022년 자민당 파벌별로 여는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파티권’(행사 참여권)을 할당량보다 많이 판매한 의원에게 초과 수익을 돌려주는 과정에서 ‘정치자금수지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고 의원들이 비자금으로 챙긴 혐의(정치자금규정법 위반)를 받고 있다. 아베파의 경우 의원별로 적게는 100만엔(약 910만원)에서 많게는 5천만엔(약 4억5천만원)으로, 전체 액수는 5년 동안 수십억엔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자금을 기재하지 않거나 허위로 작성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검찰은 다른 파벌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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