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총리 관저 누리집 갈무리
일본 정부가 북한·중국 등 주변국의 미사일 기지를 직접 타격하는 ‘적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을 보유하기로 결정하는 등 지난 70여년 동안 유지해온 안보정책의 틀이 크게 바뀐다. 5년 뒤엔 일본의 국방예산이 100조원을 넘으며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의 군사 대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일본 안보정책의 대전환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을 보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정부 내각은 16일 오후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외교·안보 정책의 방향을 담은 ‘국가안보전략’ 개정안을 의결했다. 2013년 국가안보전략이 만들어지고 10년 만의 첫 개정이다. 아울러 하위개념으로 일본 방위의 목표를 설정한 ‘국가방위전략’과 5년 동안 방위예산이나 구체적인 무기 등을 결정하는 ‘방위력정비계획’도 승인했다.
국가안보전략에는 ‘반격 능력’이라는 표현으로 적기지 공격 능력이 명시됐다. “일본에 대한 공격을 막기 위한 필요 최소한의 자위 조치로 상대(적) 영역에 유효한 반격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적었다. ‘전수방위’(공격을 받았을 때만 방위력을 행사) 원칙에 따라 태평양전쟁 패전 후 70년 넘게 ‘방어’에만 머물던 일본의 안보정책이 공격 능력을 갖게 되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았다.
기시다 총리는 각의 뒤 기자회견에서 “현재 자위대의 능력으로 위협이 현실이 됐을 때 이 나라를 지켜낼 수 있는지 매우 현실적인 시뮬레이션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충분하지 않았다”며 “반격 능력은 상대방에게 공격을 단념시키는 ‘억제력’이 되는 만큼,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적기지 공격은 상대(적)가 무력공격에 착수했을 때 가능하다. 일본 정부는 “무력 공격의 착수 시점은 국제 정세, 상대방의 명시된 의도, 공격의 수단, 양태 등을 따져 개별적으로 판단하겠다”고 밝혀왔다. 일본은 ‘반격 능력’ 행사 과정에서 미국과 협력할 방침이다. ‘국가방위전략’에는 “일본이 반격 능력을 보유함에 따라 탄도미사일 등의 대처와 같이 일·미가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돼 있다. <교도통신>은 “일본이 반격 능력 발동 시 양국 공동 대처 내용을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것을 미국쪽에 제안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일 가이드라인은 2015년에 개정된 바 있다.
일본은 공격 능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1000km 이상의 장거리 순항 미사일 등을 3단계에 걸쳐 1000발 이상 확보한다. 1단계로 사거리 1250km 이상인 미국의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500발을 구매해 조기 배치한다. 2단계로는 자위대가 운용 중인 ‘12식 지대함 유도탄’의 사거리를 200km에서 1000km 이상으로 늘린 뒤 지상 발사 형태로 2026년 도입한다. 함정은 2028년, 전투기 탑재는 2030년이다. 마지막으로 마하 5(음속의 5배, 시속 약 6120km) 이상 속도로 날아가며 예측이 어려운 궤도를 그리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2030년께 배치한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5년 동안 5조엔(약 47조원)이 투입된다.
일본 정부는 공격 능력뿐만 아니라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이던 방위비를 5년 뒤 2%까지 증액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국방예산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8010억 달러)이고 중국(2930억 달러), 인도(766억 달러) 등이 뒤를 따랐다. 현재 세계 9위인 일본(541억 달러)이 5년 뒤 국방예산을 두 배로 늘리면 100조원을 넘어서면서 세계 3위로 급상승하게 된다. 한국(502억 달러)은 지난해 기준 10위다.
‘방위력정비계획’을 보면, 내년부터 5년 동안 약 43조엔(412조원)의 방위비를 확보한다. 현행(27조4700억엔)보다 1.5배 이상 늘어나는 액수다. 세출 구조조정, 건설 국채 발행 등으로 부족한 약 3조5천억엔은 증세로 조달한다. 자민당은 2024년 이후 법인세·소득세·담뱃세를 올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일본 육상자위대 12식 지대함 유도탄. 일본 육상자위대
이처럼 일본이 안보정책의 큰 틀을 바꾸고 대대적인 군비 확충에 나서는 것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국제질서의 변화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는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북한을 직접 겨냥하며 “전후 가장 엄중하고 복잡한 안보 환경에 놓이게 됐다”고 진단했다.
중국에 대해선 “투명성이 결여된 채로 군사력을 광범위하게 증강하고, 대만에 대한 무력행사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인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우려 사항’이라는 이전 표현보다 강도가 상당히 세졌다. 이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대중 전략에 보조를 맞추려는 것이다. 중국이 일본에 직접적 위협이 된 사례도 국가방위전략에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지난 8월4일 중국이 대만 해역 주변으로 9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이 중 5발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쪽에 떨어졌다며 “지역 주민에게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해선 “미사일 관련 기술 및 운용능력이 급속히 진전됐고, 핵전력이 빠른 속도로 강화될 것이다. 종전보다 한층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이라고 명시했다.
안보정책의 전환을 두고 일본 내부에서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민 300여명은 이날 도쿄 총리 관저 주변에서 집회를 열고 “무력으로 평화를 만들 수 없다”고 호소했다. 학자·시민사회로 구성된 ‘평화구상 제언회의’는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안보전략 내용은) 일본이 스스로 전쟁을 하는 국가로 바뀌는 등 현행 헌법에서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다.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패트릭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각의 결정 전인 15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우리는 일본의 노력을 포함해 우리의 동맹과 파트너가 자위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폭넓게 지지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왔다”며 지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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