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언론들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 내용을 비중있게 보도하면서, 특히 한‧일 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였다는 점을 주목했다.
일본 최대 일간지인 <요미우리신문>은 “윤 전 총장이 내년 3월 한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의향을 표명했다”며 30일치 2면과 6면에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윤 전 총장이 “한·일 관계에 대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됐다. 역사의 진상은 밝혀야 하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실용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발언을 소개하며 “한·일 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였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한·일 관계와 관련해 윤 전 총장이 “이념 편향이 아니라 현실주의에 입각해야 한다”고 문 정부를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윤 전 총장의 출마 선언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한·일 관계에 대해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윤 전 총장이 “한·일 관계에 대해 개선 의지를 드러냈다”면서 “문 정부의 대일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어 외교정책이 대선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도 한일 관계 부분을 자세히 보도하며 “관계 회복을 도모해 갈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윤 전 총장은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기념관에서 열린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의 한·일 관계 악화와 관련해 “이념 편향적인 죽창가를 부르다 여기까지 왔다”고 비판한 바 있다. ‘죽창가’는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처로 비상이 걸렸던 지난 2019년 7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노래다. 그는 “정부가 정권 말기에 수습을 해보려고 하는데 잘되지 않는 것 같다”고 현재 상황을 진단한 뒤 “한·일 관계에선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우리 후대가 역사를 정확히 기억하기 위해서 진상을 명확히 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미래는 우리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서 실용적으로 협력을 해야 하는 관계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정부 들어와서 망가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한-일 간의 안보협력이나 경제·무역 문제 이런 현안들을 전부 다 같이 하나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랜드 바겐’을 하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명확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일본이 집요하게 요구해 온 안보협력 분야에서 보조를 같이하는 대가로 과거사 문제 등에서 다소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구상이라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꾸준히 보여 온 냉담한 자세를 생각해 볼 때 ‘그랜드 바겐’ 구상에 바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다. 일본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등 현안에서 한국이 먼저 납득할 수 있는 양보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요미우리신문>도 윤 전 총장의 한·일 관계 개선 의지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북한 문제와 미국과의 대응 등 외교‧안보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며 “한·일 관계 개선도 문재인 정부 비판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이것이 윤 전 총장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윤 전 총장은 29일 한국 정부가 나아가야 할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해 “대한민국이 (세계에) 문명국가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는 분명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국제 사회는 인권과 법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만 핵심 첨단기술과 산업시설을 공유하는 체제로 급변하고 있다. 외교·안보와 경제, 국내 문제와 국제 관계가 분리될 수 없는 하나가 되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추진 중인 세계적 ‘공급망 재편’ 움직임을 언급하면서,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 등에도 “보편적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는 분명한 입장”을 보이며 선을 그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윤 전 총장은 자신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듯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확고한 정체성을 보여주어 적과 친구, 경쟁자와 협력자 모두에게 예측 가능성을 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고심해 온 문재인 정부와 달리,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는 미·일과 안보협력을 심화해가는 외교 방향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 주장은 한국 주류 보수의 주장을 사실상 대변하는 것으로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외교·안보 자문을 하고 있는 김성한 전 외교부 2차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언론은 한·일 관계 이외에 현 정부와의 대립 등 윤 전 총장 개인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요미우리신문>은 “윤 전 총장이 정치 경험이 없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지지를 얻고 있다”며 “(정부) 압력에 굴하지 않는 자세가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고 분석했다.
<아사히신문>은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와 극한 대치로 주목을 받았고, 야권 세력 가운데 여론의 지지가 가장 높다”고 소개했다. 이어 윤 전 총장 지인들의 말을 인용해 “윤 전 총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 가지 점에서 존경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운동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보수 세력에 대해 보복하지 않은 점과 1997년 외환위기를 역으로 이용해 디지털 사회로 발전시켜 현재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점을 꼽았다는 것이다.
김소연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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