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 고속정이 걸프 해역에서 한국 선박인 한국케미호에 접근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중동 산유국의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끼고 있는 이란은 2010년 이후 여러 차례 타국 선박을 나포했다. 표면적 이유는 영해 침범이나 해양 오염 등이었지만, 정치적 이유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포 선박은 길게는 두 달, 짧게는 하루 만에 풀려났다.
4일 나포된 한국케미호와 외견상 가장 비슷해 보이는 사건은 2013년 인도 유조선 나포다. 그해 8월13일 이란은 이라크 원유 14만t을 싣고 가던 인도 유조선을 나포했는데, 당시에도 이란이 해양오염을 나포 이유로 들었다. 유조선이 7월30일 이라크로 향하며 이란 영해를 지날 때 기름 섞인 선박평형수(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배에 넣거나 빼는 물)를 쏟아내 해양오염을 일으켰다는 주장이었다.
인도 선주 쪽은 선박평형수 오염은 없었다고 반박했지만, 이란은 인도와 약 한달에 걸친 대화 끝에 9월초 유조선을 풀어줬다. 두 나라 간 합의 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란의 인도 선박 나포는 오랜 우방인 인도의 변심에 대한 보복성 행동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인도가 핵개발 의혹으로 서방 제재를 받는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이고, 이라크산 원유 수입을 늘리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인도 배를 나포했다는 것이다.
2019년 7월19일 이란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페르시아 만으로 들어가는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를 나포했다. 이란 어선과 충돌하고도 구조하지 않은 채 도주하려 했다는 이유였다. 이란군은 헬기를 타고 복면 군인이 강하하는 장면을 자국 통신에 공개하는 등 선박 나포 사실을 널리 알렸다.
영국은 이를 즉각 부인하며 “불법 나포”라고 주장했다. 의도가 있는 나포라는 것이다. 실제 보름여 전 영국령 지브롤터는 이곳 해협을 지나는 이란 유조선 그레이스1을 ‘시리아로 석유 수출을 금지한 유럽연합(EU)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억류했다. 이란은 배가 시리아를 향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영국의 해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물밑 협상을 거듭하던 두 나라는 결국 8월에 영국이, 9월에는 이란이 상대의 배를 풀어주면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란은 넉달여 전인 지난해 8월17일에도 영해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아랍에미리트(UAE) 선박을 나포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은 아랍에미리트가 사흘 전인 13일 걸프 아랍 국가 중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직후 발생했다. 이슬람 수니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가 시아파 맹주인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왔고, 이란 혁명수비대는 “수치스럽다”는 반응을 내놓은 바 있다.
2016년 1월에는 이란이 미 해군 경비정 2척을 자국 영해 침범 혐의로 나포했다가, 곧바로 풀어준 적도 있다. 이란은 이례적으로 미국의 사과를 받았으며 “고의적인 침범은 아니었다”며 경비정과 미군 병사들을 하루 만에 풀어줬다. 당시 미국은 2015년 7월 이란 핵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를 맺고, 이듬해 1월 이란에 대한 경제·금융 제재를 해제하는 등 우호적인 관계였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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