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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지구촌 잔치? 다국적기업 잔치?…금이 간 ‘메가이벤트’ 환상

등록 2013-06-27 20:30수정 2013-07-08 15:22

시민들이 정부에 묻기 시작했다
“월드컵·올림픽을 치르면
우리의 삶이 나아지는가”

헤아릴 수 없는 예산 투입에도
국가 이미지 제고·경제 효과 불분명

브라질, 2014 월드컵 반납 목소리
카타르도 2022 월드컵 개최 ‘시끌’

내년 월드컵 개최국 브라질에서 지난 16일부터 컨페더레이션컵 대회가 열리고 있다. 월드컵 전야제격인 이 대회를 브라질 사람들은 반기지 않았다. 거리에 나붙은 대회 펼침막을 찢고 불태웠다. 브라질 전역 80여개 도시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014년 월드컵 개최권을 반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축구와 축제를 벗삼아 사는 브라질 사람들은 왜 축구의 대축전, 월드컵을 거부하는가.

지난 20일 컨페더레이션컵 조별 두번째 경기가 브라질 포르탈레자에서 열렸다. 포르탈레자의 구장은 12개 월드컵 경기장 가운데 가장 먼저 완공됐다. 브라질 동북 해안 도시의 사람들은 그 사실이 그닥 자랑스럽지 않았다. 브라질-멕시코 전이 펼쳐지던 저녁, 3만명의 시위대가 도심을 채웠다.

■ 범접할 수 없는 포르탈레자 경기장

브라질 정부는 5억1900만헤알(약 2725억원)을 들여 포르탈레자 월드컵 경기장을 지었다. 수도 브라질리아 월드컵 경기장에 들어간 7800억원보다는 적은 액수지만, 포르탈레자 시민들로선 어림짐작도 힘든 돈이다.

포르탈레자는 유엔 통계 기준으로 세계에서 5번째로 불평등한 도시다. 전체 인구 200만여명 가운데 13만여명이 기아에 가까운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도시 인구의 30%가 400여곳 판자촌에서 상·하수도 시설 없이 살아간다. 그들은 월 70헤알(약 3만7000원) 또는 그보다 적은 돈으로 연명한다. 게다가 지난 20개월간 브라질의 물가는 15%나 올랐다.

얼마 전, 이 도시 빈민촌에 사는 어느 여성이 자신의 아기를 내다 판 사건이 지역 언론에 보도됐다. 어머니가 받은 돈은 50헤알(약 2만6000원)이었다. 50헤알에 갓난아기를 파는 이들의 눈 앞에 5억헤알짜리 월드컵 경기장이 들어선 것이다. 컨페더레이션컵 대회의 입장료는 브라질 도시 노동자 월 평균 임금의 3분의1 수준이다. 그들에게 월드컵은 범접할 수 없는 잔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메가이벤트가 이번 시위의 피뢰침 노릇을 했다”고 평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한 상파울루 시민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들은 굶주리는데 정부는 경기장을 짓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2013년 겨울(남반구의 브라질은 지금 겨울이다)의 ‘반 월드컵 시위’를 촉발시킨 것이다.

브라질 정부는 내년 월드컵을 위해 경기장을 새로 짓거나 보수하는 데만 310억헤알(약 16조3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했다. 직접 투입된 정부 예산만 280억헤알(약 14조7000억원)이다. 게다가 2016년 여름 올림픽을 위한 각종 경기시설을 더 지어야 한다.

“브라질 정부는 경제 효과를 선전하고 있지만, 메가이벤트를 주최하는 것이 경제 성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헛고생에 불과하다는 것을 브라질 사람들은 알고 있다”고 <유에스 뉴스 앤 월드리포트>는 지적했다.

■ 경제 효과 없는 메가이벤트

메가이벤트는 거대 스포츠 경기, 특히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장기간 열리는 월드컵 또는 올림픽을 일컫는 개념이다.

주최국 정부가 내세우는 메가이벤트 개최의 경제 효과 분석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다국적 컨설팅기업이 분석을 맡는다. 부정적 내용이 담길 리가 없다. 이들은 경기장 건설 등에 따른 최초 고용이 장기 연쇄반응을 일으켜 경제 활동을 활성화한다는 가정 아래 경제 효과를 추산한다. 그 규모는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장기 전망에 따른 추정치는 사후적으로 검증될 수도, 검증받은 적도 없다.

반면 여러 독립적 연구 결과는 메가이벤트의 경제적 효과를 부정한다. 최근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 경제학과 필립 포터 교수는 1972~2004년 사이에 메가이벤트를 개최한 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를 비교했다. 그 결과, 메가이벤트가 개최 도시 주민들의 소득·고용에 중대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계 경기 변동에 따라 소득·고용이 늘어난 경우가 있지만, 메가이벤트 때문에 더 이득을 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도시 및 국가 이미지를 높여 무역·관광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반박당하고 있다. 미국 버클리대학 경제학과 앤드류 로스 교수는 메가이벤트 개최에 따른 무역 규모 변동을 조사했는데, “메가이벤트를 개최하겠다고 지원해 그 지명도를 높인 뒤, 실제로는 그 대회를 개최하지 않는 것이 무역의 관점에서 더 이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회를 개최하게 되면, 경기장 건설 등에 필요한 수입 물자가 더 늘어나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관광객의 증가도 입증된 바 없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을 찾은 유럽인 관광객이 늘었지만 한국 관광업의 주고객인 일본인의 방문은 오히려 줄어, 관광객 전체 규모는 월드컵 전과 거의 비슷했다.

첨단 건축물인 경기장 건설의 이윤도 다국적 건설사들이 가져가게 되므로, “메가이벤트를 통해 이득이 발생한다 해도, 그 이득은 주최 도시는 물론 주최국에 남지 않는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분석한다.

이 신문은 “메가이벤트를 통해 경기가 부양된다는 보고서를 본다면, 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대가로 그런 분석을 내놓았는지부터 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메가이벤트는 끈질기게 열리고 있다. 1980~2000년과 2001~2022년을 나눠 올림픽·월드컵의 개최지를 살펴보면, 뚜렷한 차이가 보인다. 한국·그리스·남아공·브라질·러시아·카타르·터키등 신흥 국가들이 21세기의 월드컵 또는 하계올림픽을 주최했거나 주최를 희망하고 있다.

메가이벤트를 연구해온 영국 런던대 비판미디어문화학과 강재호 교수는 “비서구권의 정권들한텐 메가이벤트가 정치적 정당성·대중성을 얻는 절호의 기회인 반면, 서구 선진국에선 그런 이벤트의 쓸모가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나치의 독일(1936년 올림픽), 옛 소련(1980년 올림픽) 등을 연상시키는 ‘정치 이벤트’가 제3세계 나라들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 메가이벤트의 역류

메가이벤트 개최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는 데도 제3세계 국가들이 유리하다. “비서구 정권은 서구 선진국과 달리 막대한 정부예산을 독점적으로 활용하는 권능을 갖추고 있다”고 강 교수는 말했다. 서구에선 예산 사용을 위한 복잡한 절차와 기준이 있지만, 일부 세력이 정치를 독점한 제3세계에선 이런 문제가 덜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3세계의 메가이벤트 정치 기획에 최근 균열이 생기고 있다. “메가이벤트는 주최국 내부의 비판자들을 강화시켜, 주최국의 국제적 평판을 손상시킨다”고 국제적 싱크탱크 ‘유라시아리뷰’가 최근 분석했다.

‘오일달러’를 앞세워 2022년 월드컵 개최권을 얻은 카타르가 대표적이다. 최근 국제노총(ITUC)은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권을 박탈하라고 국제축구연맹을 압박하고 있다. 아프리카·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경제활동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나라가 노동3권 보장 등 국제 기준의 노동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제노총은 국제인권단체들과 연대해 카타르 이주노동자들의 파업까지 준비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를 ‘메가이벤트의 역류’라고 표현한다. 주최국 정치권의 의도와 달리, 오히려 통치의 정당성이 손상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시위에서 등장한 “국제축구연맹 기준의 학교와 병원”이라는 구호가 이를 상징한다. 메가이벤트가 민주주의·인권·자유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요구를 촉발시키고, 국제적 잣대에 맞지 않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에 불을 지른 것이다.

공교롭게도 장차 월드컵·올림픽 등을 개최하려고 준비 중인 브라질·러시아·카타르·터키 등은 빈부 격차, 독재, 인권 탄압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통치자의 의도와 달리, 메가이벤트는 이들 나라의 내부 문제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는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 초국적 자본만 배불리는 게임

이득을 취하는 이들은 따로 있다. 강재호 교수는 “20세기 메가이벤트가 정치적 효과를 노린 집권세력을 위한 것이었다면, 21세기 메가이벤트는 초국적 기업·미디어의 상업적 목적을 위해 열리고 있다”고 평했다.

2007~2010년 사이 국제축구연맹은 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를 통해 6억3100만달러(약 7282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방법은 간단하다. 대회가 열릴 때마다 거액을 받고 세계 주요 방송사에 중계권을 판다. 맥도널드·코카콜라·현대자동차 등 다국적 기업과 독점적인 후원·광고 계약도 맺는다. 방송사들은 중계방송 앞뒤로 여러 기업의 광고를 유치해 수익을 낸다. 이들 기업은 수억명이 동시 관람하는 ‘미디어 스팩타클’을 통해 유일무이한 브랜드 광고 효과를 올린다.

“이들 초국적 자본의 권능은 일개 국가의 정부를 능가한다”고 강 교수는 지적했다. 원래 브라질의 축구장에선 주류 판매가 금지돼 있지만, 월드컵 스폰서인 버드와이저는 경기 기간에 자사 맥주만 판매하도록 ‘강제’했다. 옥외광고판이 금지된 상파울루에도 월드컵 스폰서 기업들에 한해 옥외광고를 허용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도 경기장 안은 물론 주변에서 스폰서 기업이 직접 마련한 부스를 제외한 일체의 노점을 불허했다. 초국적 자본과 국제스포츠기구가 주최국의 국내법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월드컵의 가장 큰 수익은 방송 중계권료와 스폰서 기업의 후원금에서 발생하는데,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브라질의 재정으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지적한 <가디언>은 “브라질 사람들에게 국제축구연맹은 지구 저편의 엘리트들과 연대해 지역민의 희생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조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 덫을 향해 여러 나라들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달 초, 드미트리 메드배데프 러시아 총리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개최 비용이 애초 예상한 100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약 23조원)로 늘었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 올림픽은 애초 예상치의 4배가 넘는 510억 달러(약 58조6500억원)가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 대부분을 정부 예산에서 직접 지출한다는 게 러시아 정부의 계획이다. 조만간 러시아에서도 ‘반 푸틴, 반 메가이벤트’ 시위가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브라질의 반정부·반월드컵 시위는 오는 30일 결승전 무렵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공격수이자 2014년 월드컵의 최고 스타로 유력시되는 네이마르 다 실바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다. “나는 공정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고 정직한 브라질을 원한다.”

한국에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경기장·도로 건설 등에만 9조80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평창에서 우리는 공정·안전·건강·정직한 한국을 만날 수 있을까.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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