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타이타닉>을 제치고 세계 최대 흥행영화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영화 <아바타> 신드롬은, 화려한 볼거리의 3D 기술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지구촌 사람들에게 <아바타>는 자신들이 서 있는 현실을 투영하는 창이 되고 있다. 미국 등 서구 관객 중에선 판도라 행성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특히 중국에선 <아바타>에 나오는 외계종족 나비족을 철거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로 바라보는 논의가 커지고 있다. 영화가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 각자에게 나비족은 누구일까?
[중국·홍콩]
“힘없는 철거민의 위대한 교재” 어렵게 예매한 <아바타> 표를 들고 극장에 들어선 중국 관객들은 현란한 특수효과로 장식된 초현실적 화면 속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중국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판도라 행성의 신령한 나무 밑에 묻혀 있는 고가의 광물자원 언옵타늄을 파내기 위해, 전투기와 로봇을 앞세워 파괴를 일삼는 영화 속 지구인들은, 막대한 개발 이익을 위해 보상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강제철거를 일삼는 중국의 부동산 개발상으로 다가온다. 활과 창으로 무력하게 맞서다 힘없이 쓰러져 가면서도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 나비족은 중국 곳곳에서 집을 잃고 쫓겨나는 가난한 철거민들이 된다. 중국 사회의 가장 뜨겁고 민감한 이슈인 부동산값 폭등과 강제철거 문제가 <아바타> 열풍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유명한 스포츠 기자이자 블로거인 리청펑이 지난 4일 블로그에 올린 ‘아바타, 철거민의 위대한 교재’는 열흘 만에 30만회의 조회수와 2970여개의 댓글을 이끌어내며 폭발적 관심을 모았다. 그는 “부동산 개발상들은 자신들이 국내총생산(GDP)을 높이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며 낙후하고 무지몽매한 곳에 새로운 기상을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주민들은 개발업자들이 말하는 소위 ‘아름답고 편안한 생활’은 필요 없다며, 나무동굴에서 신성한 영혼과 함께 살기를 바란다”고 썼다. 젊은 세대를 상징하는 인기 작가 한한도 “야만적 강제철거는 다른 나라 관중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고, 외계나 중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국 부동산 거품은 위험수위로 치솟고 있다. 지난 12월 중국 70대 도시 부동산 가격은 전년 대비 7.8% 올라 18개월 새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개발 이익이 커지자,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지방 정부와 손잡고 주민들에게 보상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폭력배를 동원해 강제철거를 밀어붙인다. 지난 11월에는 쓰촨성 청두시에서 중년 여성이 강제철거를 막으려다 분신해 숨졌고, 그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여론의 분노가 들끓자 정부는 도시주택철거관리 조례 개정에 나서고 있다. 홍콩에선 <아바타>가 고속철도 건설 반대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새해 들어 홍콩을 달구고 있는 광선강(홍콩-선전-광저우) 고속철도 건설 반대 운동에 나선 주민들과 젊은이들은 이달 초 익명의 독지가의 기부를 받아 <아바타>를 함께 관람했다. 영화를 본 주민들과 젊은이들은 <아바타>의 내용이 자신들의 상황과 아주 비슷하다며 철거 반대운동의 의지를 다졌다고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전했다. 지난 8일 밤에는 8000여명이 고속철도 건설 예산 문제를 심의하던 입법회 건물을 에워싼 채 시위를 벌여 예산 표결을 무산시켰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미국·유럽]
“이라크·아프간 침공의 거울” 미국과 유럽 등 서구에선 영화 <아바타>를 미국의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우화로 해석하는 흐름과 그에 대한 반박이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고국인 캐나다의 네티즌 매체 <래블>은 지난 14일 “많은 진보적 관객에게 <아바타>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주도한 식민 점령 전쟁에 대한 정면 비판”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는 천연자원을 노리면서 기업이 후원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집착하는 국가를 꼬집은 작품”이란 것이다. 러시아 영어신문 <러시아 투데이>가 최근 미국의 블로거인 데이비드 스완슨과 한 5분짜리 인터뷰 동영상은 ‘<아바타>는 미국의 이라크 및 아프간 침공의 거울인가?’라는 제목이 달린 채 인터넷 유튜브를 타고 전세계로 퍼졌다. 스완슨은 “<아바타>는 미국의 군사제국주의가 자원을 얻기 위해 남의 땅을 점령하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또 그는 “이주하거나 죽어야 했던 국외자, 항거민, 원주민, 또는 이라크와 아프간의 저항민중들이 영웅이 되고 미국의 전쟁기계들과 군인들이 악당이 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극장을 채우는 모습은 깜짝 놀랄 일”이라고 평가했다. 영화에서 에너지가 고갈된 지구는 판도라 행성의 값비싼 대체자원을 빼앗기 위해 가공할 화력으로 원주민 나비족을 공격한다. 이는 조지 부시 전 미국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며 석유자원이 풍부한 이라크를 침공한 것과 닮은꼴이다. 특히 영화에서 기업체가 무력사용을 지휘하는 것은, 이라크 침공 당시 조지 부시 정부의 최고위층 상당수가 미국의 유전업체 경영진 출신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는 “<아바타>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과 자연을 지키려는 투쟁을 보여주는 심오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영화 속 나비족들에 대한 원주민들의 감정이입을 대변한 셈이다. 반면 보수 쪽에선 <아바타>의 흥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영화의 ‘정치성’을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국제정치 전문가 나일 가드너는 최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에서 “<아바타>의 흥행 성공은 관객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값비싼 설교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최첨단 3차원 입체영상을 즐기려 하기 때문”이라며 “미국인들은 이라크 전쟁의 성공 이후 갈수록 공허해지고 있는 좌파의 반전 수사에 질렸다”고 주장했다. 최근 아들을 아프간 전쟁에 보낸 미국의 한 퇴역군인은 “미군을 민간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치광이 살인자로 묘사하는 것은 우리 장병들을 불명예스럽게 하고 군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힘없는 철거민의 위대한 교재” 어렵게 예매한 <아바타> 표를 들고 극장에 들어선 중국 관객들은 현란한 특수효과로 장식된 초현실적 화면 속에서, 너무나 현실적인 중국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판도라 행성의 신령한 나무 밑에 묻혀 있는 고가의 광물자원 언옵타늄을 파내기 위해, 전투기와 로봇을 앞세워 파괴를 일삼는 영화 속 지구인들은, 막대한 개발 이익을 위해 보상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강제철거를 일삼는 중국의 부동산 개발상으로 다가온다. 활과 창으로 무력하게 맞서다 힘없이 쓰러져 가면서도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 나비족은 중국 곳곳에서 집을 잃고 쫓겨나는 가난한 철거민들이 된다. 중국 사회의 가장 뜨겁고 민감한 이슈인 부동산값 폭등과 강제철거 문제가 <아바타> 열풍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유명한 스포츠 기자이자 블로거인 리청펑이 지난 4일 블로그에 올린 ‘아바타, 철거민의 위대한 교재’는 열흘 만에 30만회의 조회수와 2970여개의 댓글을 이끌어내며 폭발적 관심을 모았다. 그는 “부동산 개발상들은 자신들이 국내총생산(GDP)을 높이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며 낙후하고 무지몽매한 곳에 새로운 기상을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주민들은 개발업자들이 말하는 소위 ‘아름답고 편안한 생활’은 필요 없다며, 나무동굴에서 신성한 영혼과 함께 살기를 바란다”고 썼다. 젊은 세대를 상징하는 인기 작가 한한도 “야만적 강제철거는 다른 나라 관중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고, 외계나 중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국 부동산 거품은 위험수위로 치솟고 있다. 지난 12월 중국 70대 도시 부동산 가격은 전년 대비 7.8% 올라 18개월 새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개발 이익이 커지자,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지방 정부와 손잡고 주민들에게 보상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폭력배를 동원해 강제철거를 밀어붙인다. 지난 11월에는 쓰촨성 청두시에서 중년 여성이 강제철거를 막으려다 분신해 숨졌고, 그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여론의 분노가 들끓자 정부는 도시주택철거관리 조례 개정에 나서고 있다. 홍콩에선 <아바타>가 고속철도 건설 반대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새해 들어 홍콩을 달구고 있는 광선강(홍콩-선전-광저우) 고속철도 건설 반대 운동에 나선 주민들과 젊은이들은 이달 초 익명의 독지가의 기부를 받아 <아바타>를 함께 관람했다. 영화를 본 주민들과 젊은이들은 <아바타>의 내용이 자신들의 상황과 아주 비슷하다며 철거 반대운동의 의지를 다졌다고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전했다. 지난 8일 밤에는 8000여명이 고속철도 건설 예산 문제를 심의하던 입법회 건물을 에워싼 채 시위를 벌여 예산 표결을 무산시켰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미국·유럽]
“이라크·아프간 침공의 거울” 미국과 유럽 등 서구에선 영화 <아바타>를 미국의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우화로 해석하는 흐름과 그에 대한 반박이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고국인 캐나다의 네티즌 매체 <래블>은 지난 14일 “많은 진보적 관객에게 <아바타>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주도한 식민 점령 전쟁에 대한 정면 비판”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는 천연자원을 노리면서 기업이 후원하는 테러와의 전쟁에 집착하는 국가를 꼬집은 작품”이란 것이다. 러시아 영어신문 <러시아 투데이>가 최근 미국의 블로거인 데이비드 스완슨과 한 5분짜리 인터뷰 동영상은 ‘<아바타>는 미국의 이라크 및 아프간 침공의 거울인가?’라는 제목이 달린 채 인터넷 유튜브를 타고 전세계로 퍼졌다. 스완슨은 “<아바타>는 미국의 군사제국주의가 자원을 얻기 위해 남의 땅을 점령하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또 그는 “이주하거나 죽어야 했던 국외자, 항거민, 원주민, 또는 이라크와 아프간의 저항민중들이 영웅이 되고 미국의 전쟁기계들과 군인들이 악당이 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극장을 채우는 모습은 깜짝 놀랄 일”이라고 평가했다. 영화에서 에너지가 고갈된 지구는 판도라 행성의 값비싼 대체자원을 빼앗기 위해 가공할 화력으로 원주민 나비족을 공격한다. 이는 조지 부시 전 미국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며 석유자원이 풍부한 이라크를 침공한 것과 닮은꼴이다. 특히 영화에서 기업체가 무력사용을 지휘하는 것은, 이라크 침공 당시 조지 부시 정부의 최고위층 상당수가 미국의 유전업체 경영진 출신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는 “<아바타>는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과 자연을 지키려는 투쟁을 보여주는 심오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영화 속 나비족들에 대한 원주민들의 감정이입을 대변한 셈이다. 반면 보수 쪽에선 <아바타>의 흥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영화의 ‘정치성’을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국제정치 전문가 나일 가드너는 최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에서 “<아바타>의 흥행 성공은 관객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값비싼 설교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최첨단 3차원 입체영상을 즐기려 하기 때문”이라며 “미국인들은 이라크 전쟁의 성공 이후 갈수록 공허해지고 있는 좌파의 반전 수사에 질렸다”고 주장했다. 최근 아들을 아프간 전쟁에 보낸 미국의 한 퇴역군인은 “미군을 민간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치광이 살인자로 묘사하는 것은 우리 장병들을 불명예스럽게 하고 군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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