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7일 저녁 강동구청 옆 소방서 맞은편에 있는 CGV 극장에서 아바타를 봤습니다. 정말 재밌더군요. 재미는 있지만 영화속 깊숙이 파고드는 감정몰입이나 등장인물과 하나가 되는 감정이입은 쉽지 않더군요. 유럽 작가주의 예술영화와는 다른 오직 재미만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 할리우드 상업영화에서 '영화'와 '관객'이 동시성의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일이겠죠.
천문학적인 거대자본을 앞세운 할리우드 오락영화들을 보면 영화와 관객사이에 왠지 모를 '늪'이 놓여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그 '늪'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잘은 모르겠지만 은연중에 관객들 무의식속에 <미국은 선이고 진리고 정의로운 국가>라는 심히 왜곡된 가치관을 주입하려는 것을 '늪'이라 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블록버스터 오락 흥행영화가 으레 그러하듯 극장문을 나서는 그 순간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때리고 부수고 싸우는 몇몇 장면 외엔 별로 없죠.하지만 이번 아바타의 경우엔 약간 다르더군요. 판도라 행성의 허공에 둥둥 떠있는 산들과 아름다운 대자연속에서 동식물과 하나가 되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거인 나비족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을듯합니다.
아마도 나비족들의 모습과 삶에서 그 옛날 황금과 온갖 광물이 넘쳐나고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깊은 계곡 높은 산이 어우러진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정복자가아닌 자연의 일부분으로 공존하며 살았던 인디언들이 떠오르기 때문일겁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환경파괴를 야기할 수 밖에 없으며 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체겠죠. 무분별한 개발과 제어되지 않은 탐욕은 자원고갈을 앞당기고 지구인들은 대체에너지를 찾아 판도라 행성을 점령(?)하죠.그 모습에서 16세기 영국 식민주의자들의 아메리카 신대륙 침략이 떠오르는 것은 비단 저만은 아닐겁니다. 오직 지구인들의 이해때문에 판도라 행성의 주인인 나비족들을 삶터에서 내쫓으며 학살하는 장면이 그 옛날 영국과 미국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인디언 인종말살 정책과 겹쳐지더군요.
땅에 대한 사적소유 개념 자체도 없이 자연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던 인디언들을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참히 학살하는 백인들이나 판도라 행성의 자연과 교감하며 그야말로 '한몸'이 되어 공동체 삶을 살아가는 나비족들을 마구 죽이는 지구인들이나 도대체 무엇이다를까요. 다른것이 있다면 현실속 인디언들은 당시 1000만 명이 넘던 인구가 5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200만 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패배했지만 영화속 나비족들은 지구인들과의 전쟁에서 영웅적인 승리를 쟁취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이겠죠.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가상의 세계에서나마 인디언 형상 비슷한 나비족들의 승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아바타를 보면서 내내 궁금했습니다. 왜 나비족들은 꼬리가 있는 것일까.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미개인 취급하던 백인들의 사고가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족들에게 투영된 것은 아닐까, 그런 미개인들에겐 자체내의 단결과 무력만으로 외부 침략자들을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고 지략과 힘을 겸비한 전체 지도자 지구인의 영웅적인 투쟁으로만 감동적인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영웅사관을 관객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나비족들의꼬리를 만든것은 아닐까, 그것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의도는 아닐까, 뭐 이런 비약적인 상상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분쟁(?)이 있는 세계 곳곳에 '정의로운 미국'이라는 '영웅'이 출몰하여 '악'의 무리들과 싸워서 이긴다, 뭐 이런 미국식 세계질서와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할수도 있죠.
극장문을 나서면 매서운 찬바람과 함께 부정할 수 없는 차디찬 현실이 다가옵니다. 영화 한편 책 한권 마음 편히 보고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엔 너무도 많습니다. 팍팍한 삶에 문화생활은 감히 엄두도 못내죠. 현실은 영화와는 너무도 딴판입니다. 영화속에선 종국엔 언제나 악의 무리들을 물리치지만 현실은 이와는 너무 다르죠.노동자 민중들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가는 미국식 조폭자본주의의 숨통을 끊어버리고 영화속처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짓는 새로운 세상은 언제쯤 시작할 수 있는 것일까요.
백년만의 폭설로 발걸음을 떼기도 힘든 칼바람이 파고드는 이 겨울, 그나마 좋은 사람과 함께 극장문을 나설 수 있는 저는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한 새세상 그날을 향해 좋은 사람과 함께 '이크란'을 타고 푸른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백년만의 폭설로 발걸음을 떼기도 힘든 칼바람이 파고드는 이 겨울, 그나마 좋은 사람과 함께 극장문을 나설 수 있는 저는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한 새세상 그날을 향해 좋은 사람과 함께 '이크란'을 타고 푸른 하늘을 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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