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방문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9일 베이징에서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1970년대 미·중 데탕트를 실현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만났다.
중국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보도를 보면, 시 주석은 이날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났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오랜 친구를 절대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18일엔 미국 제재 대상에 오른 리상푸 국방부장(장관), 전날에는 중국 외교계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만났다. 그는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을 성사시켜 미-중 간 전략적 협력의 밑돌을 놓았다. 당시 공산주의 노선 투쟁과 국경 문제로 갈등을 빗던 중-러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 키신저의 ‘전략적 선택’으로 인해 서구가 옛 소련을 꺾고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올해 100살인 키신저 전 장관은 퇴임 이후에도 미국과 중국의 대화와 협력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접근법을 주장해 왔고, 정기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 관료들과 꾸준히 소통해 왔다.
키신저 전 장관은 지난 18일 리상푸 부장을 만나서도 “미·중 양쪽은 오해를 해소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대결을 피해야 한다”며 “어느 한쪽도 상대방을 적수로 삼은 대가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 주석이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난 것은 다소 파격으로 보인다. 최근 한 달 새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변화 특사 등 미국 고위 인사들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했으나, 시 주석을 만난 것은 블링컨 국무장관이 유일했다. 50여년 전 미·중 수교를 이끈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나 미·중 관계의 역사와 지향점을 상기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키신저 전 장관이 현직이 아닌 민간인 자격이라는 점도 둘의 만남에 따르는 부담을 낮추는 역할을 했을 수 있다.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키신저가 중국에 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개인 시민이며 미국 정부를 대신해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2019년에도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났다. 당시 시 주석은 그에게 “앞으로도 여러 해 동안 건강을 누리고 중·미관계의 촉진자이자 기여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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