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편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수개월째 계속되어온 이스라엘에서 5일 텔아비브 경찰서장이 정부 개입을 이유로 사퇴한 가운데, 기마 경찰이 거리로 나온 시위대에게 곤봉을 휘두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사법부 권한 축소를 뼈대로 하는 사법 개편안 추진에 대해 격렬한 반대 시위가 계속되어온 이스라엘에서 실질적 수도인 텔아비브의 경찰청장이 정권의 시위대 강경 진압 요구에 반발하며 전격 사퇴했다. 수천명의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정부를 비판했다.
5일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에이피>(AP) 통신 등에 따르면 아미 아셰드 텔아비브 경찰청장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내각이 시위대에 과도한 무력 사용을 원한다며 사퇴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모든 규칙을 어기고 전문적 의사 결정을 노골적으로 간섭한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 후임자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경찰 봉직을 마감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는 시위 때마다 병원 응급실을 환자들로 채워 그들의 요구를 쉽게 맞춰줄 수도 있었다”며 “30년 동안 복무하면서 처음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라는 부조리한 현실과 마주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는 내전을 피하기 위한 내 선택에 대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개인적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도 말했다.
네타냐후 내각은 지난해 말 이스라엘 사상 가장 극우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출범한 이후 사법부 권한을 축소하는 내용의 사법 개편안을 추진했으나, 시민들은 사법부가 무력화될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3월 11일엔 50만명(주최 쪽 추산)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이스라엘 사상 최대 시위까지 벌어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같은달 27일 사법 개편안 입법 추진을 연기한다며 한발 물렀지만, 지난달 다시 입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에셰드 청장은 초기부터 네타냐후 내각의 사법 개편안 반대 시위 강경 진압 요구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특히, 시위를 강경 진압하라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치안부 장관의 압력을 계속 거부하며 네타냐후 내각과 충돌해왔다. 벤그비르 장관은 지난 3월 9일 에셰드 청장이 시위 대처에 미온적이라며 그를 훈련 부서로 전보하는 결정을 내렸으나, 갈리 하바라브-이마라 검찰총장은 벤그비르의 결정을 무효화했다. 이스라엘 사상 최대 시위가 벌어졌던 3월 11일에는 에셰드 청장이 텔아비브에서 경찰 정복을 입고 시위대 속으로 걸어들어가 시위대의 박수를 받은 일도 있었다.
에셰드 청장이 이번에 벤그비르 장관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임은 벤그리브 장관에 대한 항명으로 해석된다고 <로이터> 통신은 짚었다. 벤그비르 장관은 극우적 인물로 반아랍 인종주의를 선동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전과도 있다. 그는 에셰드 청장이 결국 사임한 것 대해 “정치권이 경찰 최고위층에 침투했으며 에셰드 청장이 좌파 정치인들에게 완전한 항복을 했다”고 말했다.
5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정부의 사법제도 개편 계획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고속도로를 점거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해산을 요구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에셰드 청장 사퇴 발표 직후 시위대 수천명이 텔아비브 중심가로 나왔다. 시위 지도부는 성명을 통해 “에셰드 청장의 사임 발표를 통해 이스라엘 경찰에 독재를 심으려는 벤그비르의 음모가 드러났다”며 “시민만이 ‘사법 쿠데타’를 중단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고속도로를 점거해 모닥불을 피우고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물대포를 쏘고 곤봉을 휘둘렀다. 시위 지도부는 사법 개편안 입법을 빠른 속도로 추진하려는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