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와그너)그룹 설립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동부 교전지 바흐무트에서 자신의 병사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바흐무트/UPI 연합뉴스
러시아 용병집단 바그너(와그너)그룹의 설립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 국방부의 통제를 따른다는 계약을 거부하면서, 군부와 바그너그룹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프리고진은 11일(현지시각) “바그너그룹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어떤 계약도 맺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그의 발언은 전날 쇼이구 장관이 다음달 1일까지 모든 ‘자발적 파견 부대’와 계약을 맺으라고 명령한 데 대한 반응으로 나온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쇼이구 장관이 군의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렇게 명령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 조처는 자발적 참전 편대에 법률적 지위를 부여하고, 포괄적인 대비 태세와 임무 수행을 조직화하는 데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구체적으로 바그너그룹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러시아 언론들은 이 조처를 바그너그룹을 굴복시키려는 시도로 풀이했다.
프리고진은 국방부가 계약의 불이행을 내세워 바그너그룹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을 걸 예상했다. 그는 “이 명령 뒤에 벌어질 일은, 그들이 우리에게 무기와 탄약을 주지 않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쇼이구 장관의 명령이 바그너그룹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쇼이구는 군 편성을 적절하게 관리할 수 없다”고 공격했다. 이어 현재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끄는 총사령관인 세르게이 수로비킨 장군과 작전을 조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로비킨은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작전’의 합동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됐으며, 러시아 체첸공화국과 시리아 등에서 인권을 유린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선봉대 구실을 하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바흐무트 점령을 성공하는 등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에서 성과를 올려왔다. 프리고진은 이 과정에서 쇼이구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군 총참모장이 무능하다고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등 군 수뇌부와 대립각을 세워왔다. 특히, 지난달 23일에는 러시아 지배계층이 전쟁에 안일하게 대응하면 내부 분열로 혁명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프리고진의 군 수뇌부 공격은 러시아 내부의 군 비판 세력을 대변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체제 이후의 권력 투쟁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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