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용병집단 바그너(와그너)그룹의 설립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최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자신의 용병들과 함께 이 도시 완전 점령을 선언하고 있다. 바흐무트/와그너그룹 AP 연합뉴스
러시아 용병 집단인 바그너(와그너) 그룹의 설립자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 체제에서 결코 용납되지 않던 수준까지 군부를 비판하면서, ‘푸틴 이후’를 의식한 권력 투쟁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23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최대 격전지인 바흐무트 점령 작전을 이끌고 있는 프리고진의 러시아 군부 비판이 날로 격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리고진은 이날 바그너그룹의 공식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러시아 벨고로드주에서 이틀 동안 교전이 벌어진 것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몇달 전 벨고로드 지역에서 군인들을 훈련시키겠다고 발표하자 쇼이구 장관이 전화를 걸어와 분개하며 ‘러시아군은 국경을 방어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며 벨고로드에서 교전이 벌어진 데 대해 군 관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동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벨고로드에서는 지난 이틀 동안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무장세력과 러시아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무장세력은 자신들이 ‘러시아 자유 군단’이라고 주장한 반면 러시아쪽은 이들이 우크라이나쪽 민병대라고 주장했다.
프리고진은 앞서 지난 20일 바흐무트 점령 완료를 선언하는 동영상에서도 러시아 군부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우리는 우리를 도운 이들과 지원을 적극 거부해 결국 적들을 도운 이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며 “이들이 언젠가는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리고진의 러시아 군부 공격은 러시아 내부의 군 비판 세력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프리고진이 극도로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푸틴 체제 이후의 권력 투쟁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고등국제학 대학원 소속의 역사학자 세르게이 라드첸코는 “프리고진의 행태에는 많은 미스터리가 있다”며 “프리고진이 러시아 군부의 분열, 내분, (이에 대한) 푸틴의 무관심과 푸틴 권력의 약화 등으로 비칠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는 건 우발적인 게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에 관여했던 전직 정보요원 이고르 기르킨은 “권력 핵심부의 일부가 프리고진 뒤에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프리고진의 공개적 도발과 국방부의 침묵은 지배 계층 내부 모순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푸틴 이후를 겨냥한 생존 투쟁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가 내년 4월로 예정된 만큼, 푸틴 대통령이 이런 공개적 갈등을 계속 방치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방의 한 외교관은 “(이런 상황에서도) 푸틴이 아무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그의 힘이 약화됐음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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