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용병 단체 바그너(와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 5일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 계정에 올린 동영상에서 바흐무트 전장에서 와그너 용병 사체들을 가리키며, 탄약 등 무기부족으로 바흐무트에서 철수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의 봄철 공세가 임박한 가운데 동부 전선에서 격전을 담당해온 러시아 용병집단 바그너(와그너)그룹이 무기 부족을 내세워 10일까지 병력을 빼겠다고 밝혔다가 전격 취소했다. 러시아 당국은 곧 시작될 우크라이나의 공세에 대비해 남부 자포리자주에서 주민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시켰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7일 자신의 텔레그램 채널에서 “그들(러시아 국방부)이 우리가 작전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탄약과 무기를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또 바그너그룹 작전에 관한 모든 결정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총사령관이던 세르게이 수로비킨 장군에 의해 취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로비킨은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전쟁 총사령관으로 임명됐다가 올해 1월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에게 자리를 물려준 바 있다. 이후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의 밑에서 참모차장으로 활동해 왔다.
수로비킨은 2015년 시리아 내전 등에서 단호하고 잔인한 전술로 ‘아마겟돈 장군’이라는 악명을 얻은 바 있다. 프리고진은 그동안 수로비킨에 대해 러시아군 내에서 “싸울 줄 아는 유일한 장군”이라고 평해왔다.
프리고진은 앞선 5일 러시아 국방부가 바그너그룹에 충분한 무기를 공급하지 않고 있다면서 “더 많은 병력을 죽음으로 몰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10일부터 부대 철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게라시모프 참모총장 등 군 지도부의 이름을 거명하며 국방부의 무기 지원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러시아군 핵심부 내에 상당한 알력이 있음을 공개한 것이다.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 병사들은 “자원병으로 여기에 와 마호가니 사무실에서 살이 찌는 당신들을 위해 죽었다”고 비난했다.
실제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핵심 교두보인 바흐무트시 점령을 위한 러시아군의 선봉대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프리고진은 지난달 29일 이후 각종 인터뷰에서 탄약 부족을 호소하며 “보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부대를 물릴 수밖에 없다”는 뜻을 지속해서 밝혀왔다. <아에프페>(AFP) 통신도 프리고진이 쇼이구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오는 10일 0시 이전에 바흐무트와 주변 위치를 (체첸 공화국의) 아흐마트 대대에 이전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프리고진이 갑작스레 철수 계획을 공개하자 군사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쏟아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5일 러시아 국방부가 우크라이나의 봄철 대공세에 대비해 탄약과 물자를 아끼려는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의 ‘위장 전술’일 수 있다며 경계감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프리고진이 철수 계획을 취소하며 러시아 국방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쓴 것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결국 수로비킨이 나서 바그너그룹에 무기를 공급하기로 하고 갈등을 봉합한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군은 미국이 지원한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을 동원해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처음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미콜라 올레시추크 우크라이나 공군 사령관은 텔레그램을 통해 발표한 글에서 4일 밤 수도 키이우 주변 상공에서 러시아군의 Kh-47 킨잘 미사일을 격추했다며 이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킨잘은 최대 속도가 마하10(시속 1만2240㎞) 이상에 달하는 러시아의 차세대 공대지 극초음속 미사일이다.
한편, 발레리 잘루지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6일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과 전화 회담을 통해 영토 해방을 위한 군의 준비 상황을 전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임명한 예브게니 발리츠키 자포리자 주지사는 5일 “지난 며칠 동안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강화되고 있다”며 주민 7만명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된다면 남부 자포리자가 주요 전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기섭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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