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 병사가 우크라이나 남부의 자포리자 원전 주변을 지키고 있다. 에네르호다르/로이터 연합뉴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안전이 아주 위태롭다고 경고하고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 당국은 원전 주변 주민들을 철수시켰다.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반전 공세가 가까워지며 원전의 안전을 둘러싼 불안감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자포리자 원전 주변의 전반적인 상황이 점점 더 예측할 수 없고 잠재적인 위험도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6일 원자력기구 누리집에 올린 글에서 “이 원전이 직면하고 있는 정말로 실제적인 안전 문제를 극도로 우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심각한 원자력 사고 위험과 주민·환경에 끼칠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즉각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강력한 경고는 우크라이나군의 봄철 대반격이 예상되면서 원전 주변의 전투가 다시 격렬해지는 가운데 나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군 당국이 사람들을 대피시키기로 한 것은 우크라이나 군과 러시아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그는 원전 운용을 담당하는 이들은 아직 원전 단지 안에 남아 있다면서 이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극도로 긴장된 상태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원전 내에 머물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들도 주기적으로 폭격음이 들린다고 전해왔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5일 자포리자주 남부를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 당국은 원전 직원 대부분이 거주하는 에네르호다르 등 18개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러시아가 임명한 자포리자주 주지사 예브게니 발리츠키는 7일까지 1500명 이상의 주민이 대피를 마쳤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의 작전 참모도 에네르호다르 주민 대피가 진행되는 게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쪽은 주민들이 아조우해 연안 도시 베르댠스크와 프리모르스크쪽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피령에 놀란 주민들이 한꺼번에 대피에 나서면서 자포리자주 곳곳에서 혼란이 빚어졌다고 <비비시>가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의 멜리토폴 망명 시장인 이반 페도로우는 대피 차량 수천 대가 한꺼번에 떠나면서 도시를 빠져나가려면 5시간이 걸렸다고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을 통해 전했다.
러시아군은 지난해 2월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자포리자 원전과 주변 지역을 점령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9월 말 이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병합한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원전 북쪽을 지나는 드니프로강 건너편에 병력을 집중한 채 러시아군과 대치하고 있다. 두쪽이 주기적으로 폭격을 주고 받으면서 원전 안전이 위태로워지자, 국제원자력기구는 원전 주변에 안전 지대를 설치할 것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두쪽은 상대편이 원전 안전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책임 공방만 거듭하고 있다.
지난 겨울 동안에는 원전 주변의 전투가 상대적으로 격렬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이 지역에서 봄철 대규모 반격을 준비한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다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군이 드니프로강을 사이에 두고 자포리자 원전을 마주보고 있는 도시인 니코폴에 30발 이상의 포탄을 발사해 72살의 여성 노인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고 이날 밝혔다. 러시아군은 아조우해 연안 주요 도시인 마리우폴 등에서 자포리자 원전 주변으로 병력과 무기를 계속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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