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지난해 9월말 자국 영토로 병합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도네츠크시에서 시민들이 “도네츠크는 영웅 도시”라고 적힌 전시물 옆을 지나고 있다. 도네츠크/타스 연합뉴스
러시아가 돈바스·헤르손·자포리자 등 우크라이나 점령지 주민에 대한 러시아 국적 부여 절차를 내년 7월 초까지 강제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특히 러시아 국적 등록을 거부하는 이들은 추방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점령지의 러시아화’에 대한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 남부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등의 주민들에게 내년 7월1일까지 러시아 국적 등록을 명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4개 주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7개월 만인 지난해 9월 말 자국 영토로 병합을 공식 선언한 지역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이 대통령령의 적용 범위에는 러시아가 지난 2014년 3월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크름반도)도 포함된다고 보도했다.
대통령령은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내 우크라이나 시민권자들이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거나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거주 자격을 취득하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또 내년 7월1일까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이들은 ‘외국 시민권자’로 간주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국적 취득을 거부하는 사람을 국외로 추방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대통령령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 국가 안보를 위협하거나 허가받지 않은 집회를 여는 이들을 추방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구체적인 추방 대상은 러시아의 헌법 질서에 대한 ‘폭력적인 변화’를 지지하거나 테러 공격을 계획·지원하는 이들이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11월 다른 나라 국적이 없는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환경·반전 운동가 아르샤크 마키챤의 국적을 박탈한 바 있어, 러시아 국적자라도 추방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르몽드>는 대통령령은 지난 2014년 3월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 주민에게도 러시아 국적 취득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상밖의 강경 조처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그동안 크림반도에서 우크라이나 여권을 소지하고 생활하는 게 어렵기는 했지만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가 이 지역에 대한 통제 강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러시아 당국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에서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이는 96만6천명에 이른다. 두 지역은 2014년 시작된 돈바스 내전 이후 친러시아계 세력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이 활동해왔고 러시아계 주민도 상당수 거주하는 곳이다. 지난해 침공 이후 새로 점령한 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에서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각각 13만명과 9만6천명으로, 돈바스에 비해 훨씬 적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한편,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은 최근 러시아 정부가 점령지에서 친 우크라이나 성향의 주민을 추방하고 러시아 주민들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키면서 이미 점령지의 인구 구성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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