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어디일까.
지난해 11월15일(현지시각), 유엔은 세계 인구가 80억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70억 지구’에서 ‘80억 지구’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11년. 10억명 단위로 따져봤을 때 인류는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을 “이정표”라고 불렀다. 그는 “수명이 늘어나고 산모와 아동 사망률이 극적으로 떨어질 수 있게 한 보건의 발전”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한편, 세계 인구가 80억명을 돌파한 것은 “지구를 보살펴야 하는 우리들의 책임을 상기시키고, 약속한 것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되돌아보게 한다”고 덧붙였다.
인구는 늘고 있지만, 인구 증가율은 이미 느려지기 시작했다. 유엔은 80억명이 90억명이 되는 데는 15년, 90억명이 다시 100억명으로 늘어나기까지는 22년이 더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유엔의 예측에서 110억명은 도달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희미한’ 경우의 수다. 세계 인구는 2080년대에 104억명으로 정점을 찍고 2100년대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 감소할 확률이 높다. 한국을 포함해 선진국들은 이미 저출생·고령화에 접어들었고, 14억명이 사는 중국 역시 올해부터는 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더 많은 사람이 살지만 더 적은 사람이 일하게 될 지구에서 결국 문제는 ‘어떻게 모두가 먹고살 것인가’로 요약된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기후변화를 늦추고 한정된 자원을 지금보다 평등하게 나누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먹고사는 문제가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고, 이것이 다시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월22일(현지시각) 인도 뭄바이 다다르 기차역 근처에 있는 현지 시장의 모습. 뭄바이/EPA 연합뉴스
2022년 11월15일에 태어난 80억번째 삶을 상상해보자. 그가 어떤 얼굴과 이름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추정해볼 수는 있다. 유엔은 2022∼2050년 사이 세계 인구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의 8개 나라에서 발생할 것으로 본다.
아프리카에선 5개 나라에서 인구가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나이지리아·에티오피아·이집트·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탄자니아로, 이집트를 제외하면 모두 사하라사막 이남에 있다. 아시아에선 인도·파키스탄·필리핀 세곳이 꼽힌다. 특히 인도는 올해 중국을 제치고 인구 1위의 대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중앙·남아시아 지역은 가장 빠르게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대륙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이 포함된 동아시아·동남아시아는 가장 빨리 인구가 감소한다.
80억번째 아이의 삶의 전망은 장밋빛이 아니다. 바네사 페레스시세라 세계자원연구소 글로벌경제센터장은 <에이피>(AP)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80억번째로 태어난 아이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충분한 자원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선 식량이 부족해질 수 있다. 1960년대 이후로 곡물 생산성의 연평균 증가율은 세계 인구 증가율을 웃돌았다. 잉여 식량은 인구 증가를 이끈 요인 중 하나였다. 이제 전망은 불투명하다. 과도한 농업과 축산업 등은 온실가스를 쏟아내고 토지를 황폐하게 만들어 기후위기를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망가져가는 지구는 지금처럼 무조건 생산을 늘리는 방식을 견딜 수 없다. 영국 <가디언>은 “지금은 80억명에게 충분한 식량이 생산되지만 기아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며 “인구가 100억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농부·정부·과학자들은 기후위기를 악화시키지 않으며 식량 생산을 늘려야 하는 도전과 마주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 다른 문제는 전쟁이다. 전쟁은 식량 생산과 유통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식료품과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며 세계 곳곳에서 식량난과 에너지 위기를 촉발했다. 2022년 6월 나온 세계식량계획(WFP) 분석을 보면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식량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인구는 6960만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15%(1050만명)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받았다. 남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에서 각각 5910만명, 5620만명이 식량 위기에 처했다. 역시 이 가운데 각각 960만명, 970만명이 전쟁의 영향으로 굶주리게 된 사람들이다.
가장 직접적인 위협은 기후변화와 팬데믹이다. 지난해는 세계 곳곳에서 극한의 날씨가 관찰됐다.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파키스탄은 최악의 홍수를 겪었다. 국토의 3분의 1이 침수돼 1700여명이 사망했다. 2억3000만 인구 가운데 약 7분의 1인 3300만명이 피해를 입었다. 물난리로 거처를 잃은 이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전염병에 내몰렸다. 유럽은 폭염을, 미국은 혹한을 겪었다. 80억번째 아이는 남반구의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과밀화된 도시에서 지금보다 훨씬 길고 더워진 여름을 위태롭게 살아갈지 모른다.
어두운 전망은 단순히 자원을 나눠 써야 하는 이들의 수가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불평등이다. 페레스시세라 센터장은 “우리에게 인구는 문제이자 쟁점”이라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과소비”라고 말했다. 기후과학자인 빌 헤어 역시 “문제는 인구가 아니라 소비의 양상”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파키스탄에 폭우와 홍수를 불렀지만, 정작 파키스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지구 전체 배출량의 1%도 되지 않는다. 환경단체 ‘네이처 컨서번시’의 수석 과학자 캐서린 헤이호는 “인구과잉이 기후변화의 주요 문제라는 신화에는 인종차별의 낌새가 있다”며 “전세계의 가난한 절반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7%에만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은 “인구가 늘면서 자연에 더 큰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얼마나 소비하는지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며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소비 행태를 바꾸도록 함으로써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을 포함한 개발도상국들은 지난해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선진국들의 손실과 피해 ‘보상’을 촉구했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당사국총회 정상회담 연설에서 “파키스탄은 탄소 배출량이 아주 낮지만, 인류가 만든 재앙의 피해자가 됐다”며 보상의 중요성을 호소했다. 선진국의 경제 개발 과정에서 빨라진 기후변화의 영향이 가난한 나라들을 향하는 불평등한 구조를 보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지난해 정식으로 채택된 ‘손실과 보상’ 의제는 선진국들의 기금 마련 합의로 이어졌지만, 개도국에 대한 ‘지원’ 차원이었을 뿐 ‘보상’을 인정하고 명시하는 데는 실패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조금 더 직접 생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2021년에 코로나19 영향으로 약 1490만명이 초과 사망했다고 추정했다.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한 사람과, 팬데믹이 없었다면 적절한 치료를 받아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이들을 모두 더해서 예상한 수치다. 강력한 봉쇄 정책으로 일관하다 정책 기조를 바꾼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한 것을 고려하면, 당분간 팬데믹이 인구수에 미치는 영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나 또 다른 대규모 전염병의 출몰 가능성도 있다.
11월8일(현지시각)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한 빈민가에서 학생들이 카누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느는 나라 중 한 곳으로, 라고스 인구는 약 1540만명이다. 라고스/AP 연합뉴스
인구 증가는 지정학의 지도를 바꿔놓고 있다. 강대국들은 인구 증가를 선도하는 아프리카 대륙에 구애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4일 8년 만에 개최된 미국-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미국은 아프리카의 미래에 올인한다”며 아프리카 끌어안기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리카가 성공할 때 미국이 성공하고 전세계가 성공한다”며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고령화로 골머리를 앓는 선진국들에 비해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대륙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다.
중국은 일찌감치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에티오피아·탄자니아·케냐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 자금을 빌려주고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해왔다. 서방에선 중국의 일대일로가 참여국들을 빚더미에 빠지게 한다고 비판해왔지만, 이런 움직임이 없었다면, 미국도 아프리카의 잠재력에 예의주시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미국 <포린 폴리시>는 “아프리카를 향한 쟁탈전에는 많은 나라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중국·미국·프랑스·러시아가 목록을 이끌고 있지만, 아프리카와 역사적 관계가 깊지 않은 브라질·일본·말레이시아·사우디아라비아·한국·튀르키예·베트남도 참여하고 있다”며 “이들은 모두 이번 세기에 인구 증가를 주도할 대륙에서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경쟁국의 영향력에 대항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들의 아프리카 사랑은 경제적 동기 때문만은 아니다. 영국 <비비시>(BBC)는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다른 곳으로 위험한 여정에 나설 수 있다. 불만을 품은 이들은 극단주의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며 “지금 아프리카의 뿔(소말리아 반도)과 서아프리카 사헬 지역에서 발생하는 폭력도 어느 정도 이런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위태로운 경제와 두꺼운 청년층은 혼란을 거듭하는 중동 국가의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다.
지난해 8월27일 파키스탄 남서부 발루치스탄주 자파라바드에서 홍수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가재도구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자파라바드/AP 연합뉴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적 노력은 완전하지 않고, 전쟁과 전염병의 위협은 상존하며, 계속해서 아이들이 태어난다. 하지만 전망이 마냥 캄캄하진 않다. <뉴욕 타임스>는 “기후를 파괴하지 않고 건강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좋은 조짐들이 있다”며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면서 경제를 성장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이 주요하게 꼽는 의제는 여성 교육이다. 여성 교육과 권리 확대는 이들이 주체적으로 가족계획을 꾸릴 수 있게 해 인구 증가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더 많은 여성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한 것은 이미 인구 급증에 다소 제동을 건 요인으로 평가받는다. 2019년 유엔은 2100년대에 전세계 인구가 110억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지만 교육 확대 등에 힘입어 지난해 전망에선 인구 정점이 104억명으로 낮아진 것이다.
2022년 출생자의 기대수명은 73살(세계 평균)이다. 인류의 역사가 지금처럼 이어진다면 2095년 지구엔 100억개 안팎의 삶이 있을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과거에 인구 증가가 그랬던 것처럼, 전세계적인 고령화라는 과제가 혁신에 박차를 가하게 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며 “새로운 생각과 힘을 가진 새로운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전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