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홍콩의 대표적 민주파 매체인 <핑궈(빈과)일보>의 폐간 전 ‘마지막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이 시내 가판대 앞에 길게 줄지어 서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지난해 6월24일, 홍콩에서 가장 인기 있던 민주파 매체인 <핑궈(빈과)일보>가 마지막 신문을 발행하고, 같은 날 <핑궈일보>가 속한 ‘넥스트미디어그룹’ 전체가 운영을 중단했다. 한달여 뒤 넥스트미디어그룹 설립자인 지미 라이(74)는 <핑궈일보>의 경영진 및 편집부 간부 6명과 함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상 ‘외세와 공모해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 혐의’로 체포됐다. 무죄 추정 원칙에도 홍콩 법원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보석 신청을 기각했고 이들은 현재까지 감옥에 있다.
필자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던 지난해 8월22일부터 ‘오마이홍콩’이라는 제목으로, <한겨레>를 통해 한달에 한번씩 홍콩의 사회·정치적 변화를 한국 국민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는 연회는 없다’는 중국 속담처럼, 이번 기사는 한국 독자와 만나는 마지막 기사가 될 것이다. 이번 기사에서 필자는 최근 홍콩의 변화와 지난 16개월 동안의 변화, 개인적 삶의 변화를 되돌아볼 것이다.
지난해 6월 <핑궈일보>가 문을 닫은 뒤, 이 매체 기자였던 필자 역시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언론계 동료들에게 “계속 기자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어떻게 하면 계속 기자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여러 이유로 홍콩의 다른 언론사에서 일할 수 없었다. 이후 필자는 프리랜서 기자로서, 특정 주제에 대해 기사를 쓰거나 실시간 뉴스를 분석하고, 법원 재판을 취재해 소셜미디어에 특별 페이지를 만들어 기사를 공개하고 있다.
홍콩의 또 다른 민주파 매체인 <입장신문>(스탠드뉴스)과도 잠시 일했지만 이 매체 역시 곧 폐간했다. 홍콩 사회의 극심한 변화 속에 필자는 여전히 주목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고 본다.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둔 채로, 필자는 최선을 다해 계속 기자 생활을 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오늘날 홍콩 언론인의 길이 매우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많은 우수한 동료들이 다양한 1인 미디어를 만들어 계속 홍콩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필자도 곧 다른 동료들과 힘을 합쳐 홍콩의 재판 상황을 집중 조명하고 보도하는 뉴스 누리집 플랫폼(www.hkcourtnews.com)을 개설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홍콩 시민들에게 계속 뉴스 정보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0년 5월24일 홍콩 코즈웨이베이에서 홍콩 국가보안법 도입에 반대하는 시위 참가자가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최근 홍콩은 1년 반 전 체포됐던 넥스트미디어 설립자 지미 라이의 재판으로 떠들썩하다. 지미 라이는 지난 1일 정식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함께 체포됐던 <핑궈일보> 경영진 및 편집부 간부 6명은 이미 지난달 22일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현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지미 라이는 재판을 앞두고 법원에 영국 출신 변호사의 선임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승인했다. 하지만 홍콩 법무부가 이를 반대했다. 홍콩은 국외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에 참여할 수 있고, 심지어 홍콩 정부도 여러차례 이렇게 했지만 홍콩 정부는 완강했다.
급기야 지난달 28일 홍콩 최고지도자인 존 리 행정장관이 홍콩 내정에 대한 외국의 간섭 사례가 많았다며, 중국 입법부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에 국가안보 관련 사건에 외국인 변호사가 참여할 수 있는지 해석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홍콩 검찰은 중국 당국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재판의 연기를 신청했고, 법원은 재판을 내년 9월로 연기했다. 이는 지미 라이가 내년에도 계속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며, 또다시 중국의 ‘판단’이 홍콩 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뜻한다. 과거에도 중국은 홍콩기본법에 대해 다섯차례나 해석을 했고, 이를 통해 홍콩의 법치와 사법 독립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1년 반 동안 홍콩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지난해 6월 발생한 <핑궈일보> 폐간 사건은 2020년 7월 도입된 홍콩보안법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했다. 이후 홍콩 시민사회의 여러 조직이 잇따라 스스로 해산했다. 홍콩 최대 교사노조인 ‘홍콩직업교사노조’(홍콩교육전업인원협회)와 시민사회 구심점이었던 민간인권전선, 1989년 설립돼 중국의 민주·자유를 지지했던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지련회의 일부 핵심 간부들은 ‘국가 권력 전복을 선동’한 혐의로 현재까지 감옥에 있다.
중국 국경절을 하루 앞둔 지난해 9월30일 홍콩 침사추이의 도로 위에 중국 국기 오성홍기와 홍콩기가 내걸려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핑궈일보> 외에 민주·진보 진영 매체로 분류되던 인터넷 매체 <입장신문>과 <시티즌뉴스>(중신문)가 지난해 말 전 편집장과 편집장 대리가 선동물 배포 등 혐의로 체포됐다. <입장신문>은 즉시 운영이 중단됐고 현금 자산이 동결돼 재판 중이며, 피고인 2명은 1년 가까이 구금돼 있다. <시티즌뉴스>도 <입장신문>의 운영 중단 뒤 곧바로 운영을 중단했고, 다행히 아직 구속된 구성원은 없는 상황이다.
위에서 몇차례 언급한 ‘선동 혐의’는 홍콩 식민지 시대의 유산으로, 1990년대 홍콩에 인권법이 제정되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다. 선동 혐의를 적용한 기소가 인권에 위배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2020년 7월 중국에 의해 홍콩보안법이 도입된 뒤, 홍콩 정부는 ‘선동죄’를 적용해 지금까지 최소 20건을 기소했다. 이들 사건은 공통점이 있는데, 피고인들은 보석 없이 수감되고, 재판 과정 등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다.
홍콩 정부는 애국주의와 국가안전지상주의 원칙에 따라 홍콩이 ‘아름다운 새 시대’에 들어섰다고 묘사한다. 홍콩이 ‘혼돈에서 통치로, 통치에서 번영으로’ 가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과거 ‘오광십색’의 다채로웠던 홍콩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다. 예컨대, 과거 홍콩에서는 대만의 국경일인 ‘쌍십절’(10월10일)을 경축해 대만의 청천백일기를 게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이 행위가 불법으로 간주되면서 이런 모습은 사라졌다. 대신 중국 건국 기념일인 10월1일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온 홍콩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동안 홍콩에서 30년 넘게 열린 ‘8964 추모 촛불집회’(천안문 항쟁 추모집회)도 지난 2년 연속 사라졌다. 홍콩 시민들은 빅토리아공원에 모여 양심의 상징인 촛불을 켰지만, 지난해 6월4일부터는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시민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추모의 뜻을 표시했지만 홍콩보안법이 이를 계속 허용할지 알 수 없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1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존 리(가운데) 홍콩 행정장관 취임 기념행사에서 홍콩 관료의 인사를 받고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홍콩 최고지도자와 국회 격인 입법회 등 핵심 권력층이 임기 만료로 지난 1년 동안 교체됐다. 재선을 노리며 ‘송환법’ 개정을 추진했던 캐리 람 전 행정장관이 연임에 실패했고, 대규모 시민운동을 진압하던 보안국장을 맡았던 존 리가 베이징에 의해 후임으로 선택돼 지난 5월 새 행정장관이 됐다. 중국은 입법회에 대해서도 홍콩기본법을 따르지 않고, 모든 반대 의견을 배척한 채 제도를 대폭 바꿨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입법회 당선자 전원이 친중파로 채워졌다.
새 최고지도자와 입법회가 들어섰지만, 홍콩 시민들이 겪어온 주택난과 코로나19 사태 등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존 리 행정장관은 지난 홍콩 정부에서 코로나19 대응에 앞장섰던 관료 중 한명이지만 결국 5차 감염을 촉발했고 홍콩은 당시 세계 평균보다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다.
시민들의 불만이 매우 크지만 표현할 공간이 사라진 지 오래다. 최근 중국에서는 고강도 장기 봉쇄에 대한 불만으로 대규모 백지시위가 발생했다. 외신에 따르면, 시진핑 국가주석도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이사회 의장을 만나 ‘중국 청년들이 제로 코로나 정책에 낙담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홍콩 시민들도 거리에 나와 중국의 백지시위를 응원했지만, 덩빙창 보안국장은 시진핑 주석보다 먼저 “중앙을 겨냥한 행위”라고 규정하며 참가자들을 향해 “국가정권을 전복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홍콩은 이미 중국 본토와 성공적으로 하나가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