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존 리 행정장관이 19일 홍콩 입법회에서 시정보고를 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핑궈일보> 퇴직 기자가 급변하는 홍콩 사회의 현주소와 이를 지켜보는 시민사회의 고민을 담은 기사를 <한겨레>에 연재한다. 열다섯 번째로 홍콩 존 리 행정장관의 첫 시정보고와 이에 대한 시민 사회의 반응을 다뤘다.
취임 두 달 반이 된 홍콩의 최고 지도자 존 리 행정장관이 지난 19일 ‘시정보고’를 했다. 리 장관은 논란이 되는 정치적 의제를 피한 채 경제 발전, 인프라 건설, 민생 개선을 위한 정책을 주로 쏟아냈다. 특히 이민 증가로 인한 홍콩의 노동력 감소와 해외 인재·기업의 탈홍콩 흐름에 맞서 인재 확보와 투자 유치에 중점을 뒀다.
그러나 리 장관이 제시한 많은 정책은 대규모 예산 지출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정부 수입이 줄어든 상황이어서 미래 홍콩 정부의 재정 상황을 우려하게 만든다. 또 인재 확보 외에 탈홍콩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은 것도 실망감을 낳았다. 리 장관은 시정보고에서 이번 홍콩 정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말한 청사진에 따라 중국 발전의 큰 흐름에 전력을 다해 융합될 것이라고 직접 말했다.
정부의 한 해 정책 방향을 담은 시정보고는 홍콩 행정장관이 기본법에 따라 매년 한 차례씩 발표한다. 리 장관은 행정장관 선거 당시 시간이 빡빡하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선거 정책을 내놓지 않아 첫 시정보고에 많은 관심이 몰렸다. 그는 ‘시민을 위한 행복, 홍콩을 위한 발전’과 ‘녹색’을 기조로, 희망, 생명, 화해·안정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리 장관은 19일 홍콩 입법회에서 3만2천자에 150개 문단이나 되는 시정보고 전문을 약 2시간45분 동안 읽었다. 보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발전’으로 173회 등장했다. 이후 내지(중국)가 60회, 인재가 59회 등장했다. 이 외에 청년과 교육, 국제, 목표, 과학, 주택 등의 용어가 비교적 많이 등장했다. 발전, 내지, 인재가 이번 시정보고의 중점이었다.
시정보고에서 리 장관은 홍콩이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 기조 아래 중국에 의지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독특한 이점이 있다며, 선진적인 인프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건전한 법률 제도를 보유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정상급 인재가 모이고, 다국적 기업들이 업무 중심지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는 동시에 지난 2년 동안 홍콩에서 약 14만 명의 노동 인구가 유출됐음을 인정했다. 이를 위해 해외 및 중국 본토 기업을 위한 300억홍콩달러(5조4300억원)의 ‘공동 투자 기금’, ‘고급 인재 통행증 계획’, ‘인재 서비스 창구’ 계획 등을 내놨다. 또 ‘국가발전 지도 감독팀’을 설립하고 자신이 책임을 맡아 중국 본토 기관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국가 정책 해석 활동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겠다고 발표했다.
민생 측면에선 홍콩 시민들을 오랫동안 고통받게 한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해 향후 5년 안에 3만호의 ‘간략한 공공 주택’을 건설해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는 컨테이너를 임시 주택으로 개조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 주요 간선 도로 3개와 철도 노선 3개를 포함하는 6개의 주요 교통 인프라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논란이 일고 있는 대규모 인공섬 매립 프로젝트도 2025년에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프로젝트의 전체 지출은 불분명하지만, 이미 다른 정책들로 1500억홍콩달러(약 27조원)의 지출이 예정돼 있다. 이 인프라 프로젝트가 가져올 경제적 이익이 기대만큼 좋지 않으면 올해 코로나19 영향으로 1000억홍콩달러(18조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는 홍콩 정부의 재정을 더욱 압박할 것이다.
중국 당국과 홍콩 정부는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발효된 뒤 홍콩이 혼란에서 벗어나 안정을 되찾았고, 안정이 곧 번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리 장관도 이날 시정보고에서 중국의 안전과 홍콩 특구의 질서를 지키고, 베이징이 제창한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가 안보 입법을 추진하고, 민주파와 시민사회가 널리 이용했던 ‘크라우드 펀딩’ 활동 등을 규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논란적인 정치 의제를 피하고, 정치개혁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구 의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언급하지 않은 채 친중 세력을 구 의회에 육성하는 ‘지역사랑대’ 설립을 제안했다.
홍콩의 친중 세력은 리 장관의 ‘시정보고’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친중 성향의 신민당 주석이자 입법회 의원인 레지나 입은 “내용이 풍부하고 포괄적이며 미래지향적”이라고 말했고, 친중 진영 최대 정당인 민건련의 스태리 리 주석은 “정책이 새로운 방향을 향하고, 시민들의 발전을 위해 희망을 제시했다”고 평했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의 평가는 달랐다. 리 장관이 시정보고 다음 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자, 한 홍콩 시민은 ‘홍콩의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더 강력해 인재 유출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홍콩 민의연구소가 실시한 실시간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은 시정보고에 대해 51.1점을 줬고, 만족한다는 답변은 33.7%,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은 30.5%로 나타났다. 시정보고에 대한 점수가 2018년 이후 처음 50점 이상으로 올라갔지만, 캐리 람 전 행정장관이 2017년 첫 시정보고를 발표했을 때의 62.4점보다는 크게 낮았다. 다른 두 전직 행정장관인 도널드 창과 렁춘잉이 발표한 첫 시정보고 평가 점수에도 크게 못 미쳤다.
홍콩의 인재 문제와 관련해, 필요한 것은 홍콩 중산층 및 전문 분야의 심각한 인재 유출 현상을 막는 방안이다. 하지만 리 장관이 제시한 방안은 중국 본토 인사를 데려오는 것이 중심으로, 홍콩을 중국의 발전에 편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홍콩 민주당은 리 장관에게 “외지 인재를 어떻게 유치할 것인가만 이야기하고, 홍콩 인재 유출을 막는 것을 얘기하지 않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리 장관은 지난 7월1일 시진핑 주석이 홍콩을 방문했을 때 한 연설이 이번 정부가 추지할 시정의 청사진이라고 했다. 또 행정장관의 '시정보고'를 국가주석 발언과 전면적으로 묶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때문에 홍콩의 정치·사회·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리 장관이 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