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일 홍콩에서 열린 홍콩 주권 반환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홍콩의 주권은 1997년 중국에 돌아왔다. 베이징은 당시 전 세계 앞에서 홍콩인들을 향해 ‘일국양제를 50년 동안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올해로 이 기간이 절반 지났을 뿐인데, 홍콩의 많은 자유 공간이 돌연 사라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 1일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일국양제는 좋은 제도다. 바꿀 이유가 없다. 오래 지속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동시에 ‘4대 의무’와 ‘4대 희망’을 언급하며 홍콩의 미래 발전상을 제시했다. 시 주석의 연설은 ‘천 개의 물결’을 일으켰다.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와 각계각층 관리들은 시 주석 연설을 연구하고 해석하기 위한 ‘정치학습’ 심포지엄를 잇따라 열고 있다. 과거 홍콩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고, 중국 대륙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주권 반환 25년을 맞아 홍콩의 정치 풍토가 중국 대륙과 원활하게 통합되어 가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1일 중국 반환 25주년을 맞아 홍콩에선 일련의 축하 행사가 열렸다. 그런데 이날 홍콩 천문대가 폭풍 신호(8호 강풍)를 발령할 정도로 강력한 태풍 ‘차바’가 접근했다. 저녁 현장에서 열기로 한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 행사’는 텔레비전 녹화 방송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스물다섯 번의 반환 기념일 가운데 폭풍 신호가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사적인 날에 발생한 혹독한 기상 현상은 많은 홍콩인에게 홍콩의 현재 상황을 일깨워줬다. 50년간 변함없을 것이라고 약속한 ‘일국양제’의 후반 25년이 ‘폭풍우’에 흔들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1일 홍콩 최고지도자인 행정장관에 취임한 존 리는 취임 연설에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으로 인해 홍콩이 이미 혼돈에서 안정 상태로 바뀌었고, 향후 5년은 안정에서 번영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콩에선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1분기 홍콩 인구의 순유출은 14만명에 달하고, 영국 정부가 발행하는 영국해외시민연권(BNO)을 신청하는 인원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홍콩 정부 교육국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홍콩의 초중고교 학생 수가 지속해서 줄어, 지난 2년 동안 약 4만2000명이 감소했다. 초중고 교사도 줄어, 홍콩 주요 구직 누리집에는 2500명 이상의 교사 모집 공고가 지난 5~6월 한 달 동안 게재되기도 했다. 학생과 교사 모두 홍콩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홍콩의 현재 사회·정치적 상황과 분위기가 홍콩인들에게 매우 낯설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의 지난 1일 연설 뒤 홍콩 정부와 기존 친중파 정당과 협회는 중국에서 매우 일반적이지만 홍콩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정치학습’ 심포지엄을 열었다. 홍콩 사람들은 이런 방식의 ‘학습’에 익숙하지 않지만 중국 대륙에서는 이런 방식의 이데올로기 교육을 일찍부터 실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모든 계층에서 ‘시진핑 사상’을 매우 열심히 선전하고 배우고 있다.
지난달 30일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홍콩 거리에 중국 국기와 홍콩 국기가 걸려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시 주석은 이번 연설에서 홍콩에 대한 ‘4대 의무’와 ‘4대 희망’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4대 의무’ 중 하나는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홍콩 정부의 통치를 확고히 하고 홍콩의 흔들림 없는 장기적 안정을 위해 불가피한 요구사항”이라고 말했다. 며칠 뒤 호콩 정부의 사회복지부는 홍콩 정부의 지원을 받는 모든 비정부기구(NGO)에 ‘시진핑 주석 연설 정신을 홍보하고 구현하는 사회복지 부문 학습’이라는 주제로 연 온라인 심포지엄에 참석하도록 했다. 해당 심포지엄에는 460여명이 참석했다. 발표자들은 시 주석 연설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의견을 순서대로 발표했다.
또 홍콩 정부 공무원국과 중국 각 성 협회, 상공회의소 등 홍콩의 여러 친중 단체 및 기관도 같은 기간 비슷한 ‘시 주석 정신’ 교류회를 집중적으로 개최했다. 여러 지역의 정부 사무소도 ‘국가주석의 중요 연설의 정신’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어 시 주석 연설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교환하도록 했다. 홍콩 입법회도 지난 6일 ‘시 주석의 7월1일 연설 실현’을 주제로 첫 토론회를 열었고, 중국 연락사무소가 관리하는 홍콩 최대 서점은 중국에서 출판한 시 주석의 7월1일 연설 소책자 판매에 나섰다.
5년 전인 2017년 시 주석은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했다. 당시 친중파 인사들은 여러 매체에 출연해 그의 발언을 해석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민관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로 시 주석 정신 학습에 나서거나 정부가 시 주석 사상을 홍콩 전역에 전파하기 위해 여러 플랫폼을 만드는 모습은 없었다.
과거 홍콩은 법과 제도의 지배를 강조하는 도시였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국가 기관은 개인이 통치하지 않고, 개인의 사상과 주장을 숭배하지도 않았다. 국민의 뜻을 널리 받아들여 정책과 발전 방향을 수립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이미 마침표를 찍었다. 가장 최근 사례로, 지난해 10월1일 국경절을 전후해서 한 민간단체가 홍콩의 여러 도로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게양하겠다고 했다. 홍콩 정부의 승인을 얻은 뒤 홍콩 정부로부터 비용을 청구받았다. 홍콩은 민간단체의 행사 등으로 안전·순찰 등 행정 수요가 발생하면 그 비용을 민간 단체로부터 받는다. 그러나 존 리 장관은 홍콩은 애국주의 교육을 매우 중시한다며 단체로부터 행정 비용을 받지 말라고 지시했다. 홍콩인들은 이제 ‘애국’이 법과 제도에 우선한다는 것을, 이것이 홍콩의 ‘뉴노멀’임을 다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