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 수준의 홍수를 겪고 있는 파키스탄 남서부 소바트푸르 주민들이 29일 식수를 얻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소바트푸르/AP 연합뉴스
유럽과 중국 등이 올여름 극심한 가뭄을 겪은 반면 파키스탄은 최악의 홍수로 1천명 이상이 희생되는 등 지구촌이 물 관련 재해로 고통받는 가운데 올해부터 2050년까지 물 관련 재해 누적 피해액이 5조6천억달러(약 7556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국제 공학·환경 컨설팅 기업 ‘지에이치디’(GHD)는 29일 가뭄·홍수·폭풍 등 물 관련 재해가 2050년까지 세계 경제에 끼칠 손실을 분석한 보고서를 내어, 해가 지날수록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기후 변화와 함께 물 관련 재해가 잦아지면서 올해부터 2030년까지 전세계 누적 손실액이 1조3천억달러에 이르고, 이후 10년 동안에는 피해액이 50% 더 늘어 2040년까지 누적 손실이 3조3천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됐다. 2050년까지의 누적 피해액은 여기서 70%가량 불어난 5조6천억달러로 예상됐다.
2050년까지의 누적 피해액은 벨기에 브뤼셀의 ‘재난의 역학 연구센터’가 최근 추산한 지난해 전체 자연재해에 따른 경제적 손실 2240억달러의 25배에 이르는 규모다. 연구센터는 지난해 전세계의 홍수 발생 건수가 2001~2020년 평균치인 163건보다 37% 많은 223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폭풍은 지난 10년 평균치보다 19% 늘어난 121건이었으며, 가뭄은 10년 평균보다 1건 적은 15건으로 집계됐다. 또 지난해 전세계 홍수 피해 사망자는 4143명, 폭풍 피해 사망자는 1876명으로 나타났다.
지에이치디는 보고서에서 “전세계 곳곳의 지역사회가 이미 기후 관련 사건의 충격이 급증한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며 “지난해에만 전세계 인구 1억명 이상이 홍수, 폭풍, 가뭄으로 고통을 겪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런 극단적 물 관련 재해가 기후 변화와 함께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실제로 올여름 유럽과 중국 서부 지역이 가뭄에 시달리는 동안 파키스탄은 사상 최악의 홍수를 겪는 등 심각한 가뭄과 홍수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는 물 관련 재해가 불러오는 경제적 여파는 폭풍이 전체의 49%로 가장 크고, 홍수와 가뭄은 각각 전체의 36%와 15%를 차지할 것으로 분석했다. 산업별로는 제조업과 유통 분야 피해액이 2050년까지 4조2110억달러로 가장 많을 것으로 봤다. 보고서는 “제조업의 경우, 물이 부족할 때 생산 차질이 빚어지고 홍수와 폭풍은 건물과 장비 등 자산 피해를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필품 업종과 유통(1조1040억달러), 금융과 보험(5140억달러), 농업(3320억달러), 에너지와 수도·전기 등의 기반시설(2370억달러) 순으로 피해가 클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미국에선 한해 평균 물 관련 경제 손실이 국내총생산(GDP)의 0.5%에 이르고, 중국도 평균 0.2%의 손실을 볼 것으로 분석했다. 두 나라의 누적 경제 손실액은 각각 3조7190억달러, 1조1440억달러로 추산됐다. 필리핀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피해액이 각각 국내총생산의 0.7%와 0.6%에 달해 미국보다 충격이 더 클 것으로 평가됐다.
지에이치디의 캐나다 물 시장 프로그램 책임자 돈 홀랜드는 <로이터> 통신에 “물 문제는 한 지역 사회가 직면하게 되는 가장 파괴적인 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경제포럼(WEF) 물 경제 위원회의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공동의장도 “물과 기후를 동시에 관리하는 혁신이 필요하다”며 “비용이 결코 적지 않게 들지만, 극단적인 기후에 따른 피해와 비하면 아주 적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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