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7일 브뤼셀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외교장관 회의에 참여해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왼쪽), 안 린데 스웨덴 외교장관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중립국인 스웨덴과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지만 이날 회의에 참석했다. 브뤼셀/AP 연합뉴스
‘부차 학살’에 대한 러시아의 책임을 묻기 위해 미국이 6일(현지시각) 발표한 추가 제재 조처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금융기관 내에 있는 러시아 정부 계좌를 통해 부채 상환을 하지 못하게 막은 점이다. 러시아를 겨냥한 여러 제재에도 루블화 가치가 반등할 조짐을 보이자, 직접 숨통을 졸라매 국가부도를 유도하고 나선 것이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이번 제재 조처에 대해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지난 4일 우린 동결된 중앙은행 펀드를 통해 부채 상환을 하려는 러시아의 능력을 차단해버렸다. 그래서 이제 러시아는 국가부도를 피하기 위해 미국 밖에서 달러 자원을 찾아내고, 미국 은행을 통하지 않고 (부채를 상환하는) 새 지불 방법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처가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필요한 러시아의 ‘자금’과 돈의 ‘이동 통로’ 양쪽 모두를 막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 재무부는 앞선 4일 이런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러시아는 남아 있는 달러 보유고를 소진하거나, 새로운 수입을 벌어들이거나 혹은 부도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앞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국제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배제하고 미국 은행들에 예치된 러시아 소유 외환들을 동결했지만, 이 자금을 이용한 외채 상환은 허락하는 유예조처를 내렸었다.
미국이 직접 러시아의 부채 상환을 가로막는 카드를 뽑아들면서, 러시아는 사실상 국가부도의 위기에 몰리게 됐다. 러시아는 4일까지 20억달러 채무와 8400만달러 이자 상환 만기일을 맞이한 상태였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채무 상환액 20억달러(약 2조4370억원) 가운데 72%는 3월 말 루블로 상환했고 시장에 남은 물량은 5억달러 정도라고 전했다.
러시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러시아 재무부는 이날 한 외국 은행이 2건의 채권에 대한 이자 6억4900만달러 지급 업무 진행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재무부는 이 은행이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로이터>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 국채 관련 업무를 대행하는 미국 제이피모건은행의 이자 지급 업무가 미 재무부에 의해 4일 중단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종 국가부도에 이르기까지 30일간의 유예기간이 있어, 정식 부도에 이른 것은 아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러시아는 채무를 상환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고 있지만 채무 상환이 저지된다면 (앞으로는) 루블로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론적으로 보면, 채무불이행 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이는 순전히 인위적인 것”이라며 러시아가 실질적인 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정의길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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