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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푸틴의 야망은 더 커졌다

등록 2022-04-07 14:56수정 2022-04-08 02:40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농어업 발전 관련 화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농어업 발전 관련 화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지옥의 묵시록 같은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부 부차와 체르니히우, 수미 지역 등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에 대한 고문, 처형, 성폭행의 참상이 마치 종말의 시간처럼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위성사진을 분석해보면 아마도 이 학살은 러시아군의 퇴각이 점쳐지던 3월 하순부터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해방되지 않은 마리우폴 등 남부 도시 인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것으로 본다. 너무나 증거가 많아서 국제형사재판소와 우크라이나 검찰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러시아의 만행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제노사이드! 집단 학살을 뜻하는 이 말이 문명사회에서는 사라진 줄 알았는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종 해결책’으로 또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전황은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 첫번째는 지난 2월24일부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동부, 남부, 북부 세 방면에서 수도 키이우를 향해 진군하던 지상전 단계다. 이 당시만 해도 푸틴은 키이우에 무혈입성하여 우크라이나 정부를 전복하고 괴뢰 정권을 세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3월 초부터는 전선이 교착되었다. 두번째 단계는 3월 초부터 하순까지 러시아가 하루 평균 200여회 정도 전략폭격기와 전투기, 장거리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도시를 폭격한 항공전 단계다. 이 정도면 완전히 고립되어 생존의 기반이 파괴된 도시들이 항복할 것으로 푸틴은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세번째는 동남부에서의 지상전에 집중하기 위해 키이우 인근으로부터 러시아군을 철수시키는 3월 말 재배치 단계다. 언뜻 보면 러시아군이 수세에 몰려 퇴각하며 그 앙갚음으로 시민을 학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실은 그 이상이다.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는 분쟁지역 전문 피디 김영미에 따르면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인질로 삼아 인근 나토 국가에도 위협을 가하는 더욱 대담하고 확장된 전쟁의 목표를 추구”하는 중이다. 만일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여 전쟁이 장기화되면 우크라이나 시민이 희생된다는 공포를 인근 국가에 전달하려는 게 푸틴의 의도라는 설명이다. 피오나 힐(57) 전 미국 백악관 고문은 지난 4일 영국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기본 전략이 우크라이나 함락에서 ‘대학살’ 또는 ‘절멸’로 전환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만일 우크라이나 도시를 함락하지 못하면 봉쇄하여 시민을 굶겨서 죽인다는 소모전으로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힐은 푸틴의 최종 해결책은 시민 학살을 넘어 전술 핵무기 사용 위협이라는 점도 암시한다.

참으로 섬뜩한 전망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국제사회는 푸틴의 의도를 어떤 방법으로 거부할 것인가. 그동안 국제사회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 전쟁을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리라고 예측조차 하지 못하다가 전쟁이 임박해서야 사태가 심각함을 깨달았지만 너무 늦었다. 지금도 설마 푸틴이 핵무기까지 사용하겠는가,라며 안이한 인식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이제 국제사회는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비상 대책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왔다. 항상 푸틴은 서구의 예상을 깨뜨리며 대담성으로 돌파해왔다. 러시아 내부의 반전 여론이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러시아 국민 상당수는 푸틴의 전쟁을 지지하기 때문에 정변으로 푸틴이 실각할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아울러 이 전쟁으로 에너지와 식량 위기가 촉발되고 금융 불안까지 이어지면 시간이 반드시 미국 편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게다가 최근 드러난 푸틴의 전쟁 범죄는 협상으로 전쟁을 종결할 출구마저 막아버렸다.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압박과 경제 제재 역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국제사회는 과연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면 지금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전쟁의 문제를 풀지 못하고 어떻게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질서가 가능할 것인가. 한 독재자로 인해 지금의 국제 질서는 붕괴될 수 있다. 국제사회는 이제 비상한 대책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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