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국제일반

<오래된 미래> 저자 “왕처럼 행동하지 말고, 속도를 늦춰보세요”

등록 2021-08-12 04:59수정 2021-08-12 14:38

[안희경의 내일의 세계] 세계 지성에게 10년 생존 전략을 묻다
4.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저서 &lt;오래된 미래&gt;를 통해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도시화와 결합된 세계화 무역과 대량생산 소비질서를 경고하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를 잠식하는 성장 서사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2018년 1월21일 스페인 이비사섬에서 필자와 인터뷰하던 때의 모습이다. 황채영
저서 <오래된 미래>를 통해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도시화와 결합된 세계화 무역과 대량생산 소비질서를 경고하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를 잠식하는 성장 서사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2018년 1월21일 스페인 이비사섬에서 필자와 인터뷰하던 때의 모습이다. 황채영

생수, 쇠고기, 오렌지가 지구를 가로질러 오고 갑니다. 쌀, 콩, 밀, 옥수수가 지구를 가로지르며 가공되고요. 문제는 우리가 수입하고 수출하는 물류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거예요.

지구적 규모의 식량 규모가 오염원이에요. 단일재배는 생명 순리를 거스릅니다.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사람이 비료, 살충제, 제초제를 공급해야 하죠. 토양에 있는 온갖 벌레까지 다 죽기 때문에 땅속 생명망이 죽어갑니다.

“잠시 멈추고, 잠시만 기다리자. 5G로 서두르지 말자. 인간에게 맞는 속도를 유지하고 삶을 돌보기 위해 규모를 줄이는 방법을 살펴보자”라고 말해야 해요. 사람들이 우리 시대를 잠식하는 성장 서사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나는 유명한가?’ ‘얼마나 많은 좋아요를 받았나?’ ‘내게 고급차가 있나?’ 이 모든 피상적 물음 속에서 불행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코로나가 가져다준 가족과 이웃 간의 재결합이 경이롭습니다.

4―헬레나 노르베리호지 Helena Norberg-Hodge

로컬 경제 운동의 선구자다. 1946년 스웨덴 출생.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스웨덴,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및 미국에서 수학했고, 언어학에서 박사급 과정을 런던대와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수료했다. 히말라야 지역 라다크 언어를 비롯해 7개 국어에 능통하다.

40년 동안 전세계에 행복의 경제학을 전파하며 글로벌 경제와 국제 개발이 지역 사회와 경제, 개인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분석해왔다. 경제 불평등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화’를 주장하며 세계 각지에서 활동한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고이 평화상을 수상했다. 저서 <오래된 미래>는 같은 제목의 영화와 더불어 40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었으며 다큐멘터리 영화 <행복의 경제학>의 제작자이자 공동감독이다.


1975년부터 ‘작은 티베트’라고 부르는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자국의 문화와 생태의 가치를 굳건히 지키면서도 현대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해법을 실현해왔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제2의 노벨상’이라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받았다. 미국과 독일, 영국을 비롯한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지역 경제를 전환하는 활동을 이끌었으며, 국제미래식량농업위원회, 국제세계화포럼, 글로벌에코빌리지네트워크 창립에 앞장섰다. 국제 조직인 로컬퓨처스와 국제지역화연합(IAL)을 설립했고 현재 대표를 맞고 있다. <어스 저널>(Earth Journal)이 선정한 ‘전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환경운동가 10인’ 가운데 한명이다. 지구적 위기에 대한 해법을 다룬 저서 <로컬의 미래>를 비롯해 <행복의 경제학> 등을 출간했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1991년, 저서 <오래된 미래>를 통해 자연과 멀어진 인간의 삶이 초래한 현실을 기록하고 미래를 경고했다. 그리고 2021년, 생명의 순리를 거스르던 흐름이 느닷없는 역병의 벽을 만나 회귀하는 현상을 주시하며 희망을 논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도시인이 잔디를 걷어내고 거기에 텃밭을 꾸리는 삶으로 대표되는 변화다. 물론 그녀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움직이는 산업의 재편과 그 한계도 놓치지 않는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도시화와 결합된 세계화 무역에 재생에너지 인프라로 재편되는 대량생산 소비질서를 경고하였다. 그리고 말했다. “사람들이 우리 시대를 잠식하고 있는 성장 서사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지난 5월22일 오후 3시(현지시각) 오스트레일리아 바이런베이 자택에 있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와 화상으로 나눈 대담이다.

안희경(이하 안) 멸종 저항 운동을 하는 밀레니얼과 제트(Z)세대뿐 아니라 서구 언론에서도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반면에 이 단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왜 비상사태라는 말까지 쓰며 일상생활을 옥죄냐고요. 기후 변화는 늘 있어온 활동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2018년 1월21일 스페인 이비사섬에서 필자와 인터뷰하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황채영
2018년 1월21일 스페인 이비사섬에서 필자와 인터뷰하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황채영

2018년 1월21일 스페인 이비사섬에서 필자와 인터뷰하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황채영
2018년 1월21일 스페인 이비사섬에서 필자와 인터뷰하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황채영

작은 마을에 필요한 인프라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이하 노르베리호지) 무엇보다 기후 비상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는 모릅니다. 정말로 몰라요. 이유는 이 가이아(Gaia·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 등을 모두 포함하는 범지구적 실체)를 모델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이아는 무한히 복잡하고 고도로 정교하여 스스로를 안정시키려 합니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우리가 수입하고 수출하는 물류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지 정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에요. 생수, 쇠고기, 오렌지가 지구를 가로질러 오고 갑니다. 쌀, 콩, 밀, 옥수수가 지구를 가로지르며 가공되고요. 생산지에서 바다를 건너가 포장되어 다시 건너오죠. 기후 변화를 유발하는 세계 무역에 대한 보도는 없습니다. 오로지 자가용 운전을 줄이자거나 비행기 타고 휴가 가면 안 된다는 이야기뿐이에요. 우리는 기후 문제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하도록 해요. 정부가 대량 소비, 대규모 도시화, 더 많은 에너지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왜 하는지 파악하도록 합시다. 또 신제품이 곧 구식이 되어 버려지도록 기획하는 생산 판매 전략, 한 제품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며 제작하는 공정 방식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에서부터요.

영국이 버터를 수출하는 양과 수입하는 양이 비슷하다는 점에 황당했는데요. 이윤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폴크스바겐 자동차가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오가며 조립되는 이유도 그렇고요. 이러한 방식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활동이 일어난 배경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노르베리호지 엘리트 유럽인들이 규제를 변경하면서 사람들을 땅에서 밀어낸 그 강압에서 시작합니다. 그들은 ‘인클로저’라고 불리는 울타리 치기를 했습니다. 농민들은 자기 땅에서 쫓겨났고 동시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식민지가 만들어졌죠. 식민지 농민들은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농작물을 더 이상 재배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무역업자들을 위한 농사를 지어야 했어요. 그러니까 경제가 무역을 늘려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죠. 17세기 말부터 18세기에 활동했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비교우위를 갖는 물품에 집중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는데요. 그러니까 스코틀랜드에서는 귀리가 잘되니까 오로지 귀리를 길러 수출하자, 그렇게 번 돈으로 나머지 필수품을 싸게 수입해서 모두를 이롭게 하자는 논리죠.

‘세계화’를 비판하며 ‘지역화’를 해답으로 제시한 다큐멘터리 영화 &lt;행복한 경제학&gt;의 감독으로 2011년 한국을 방문했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씨네21 손홍주
‘세계화’를 비판하며 ‘지역화’를 해답으로 제시한 다큐멘터리 영화 <행복한 경제학>의 감독으로 2011년 한국을 방문했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씨네21 손홍주

삼시 세끼를 귀리로 오트밀이나 오트쿠키를 만들어 먹을 수는 없는 일인데요. 오늘날 케냐 농부들은 장미를 먹고 살 수 없다고 한탄하고, 에티오피아 농부들은 커피만 먹고 살 수 없다며 한숨짓습니다.

노르베리호지 말이 안 되는 논리지요. 하지만 도그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행한 현실이 펼쳐졌어요. 현대 서구 경제에 대해 또 자본주의에 대해 끊임없는 비판이 있었지만, 글로벌 무역업자 대 지역 생산자 및 소비자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반론이 많지 않았습니다. 현대 경제가 맞은 불행이죠.

지난달 세계 정상들이 기후 정상회의에서 탄소 배출량 감축을 선언했습니다. 그들은 인프라에 집중하며 재생 가능한 에너지 인프라 구축으로 기존의 방식을 바꾸자 했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인프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노르베리호지 새로운 인프라 건설 방향은 작은 농장에 필요한 기반시설이 되어야 해요. 예를 들어 작은 마을과 도시에서 학교가 폐교될 것이 아니라 유아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짜임새 있게 자리하고 대학까지 자리할 수 있어 지역이 탄탄해지고 병원과 보건소가 자리를 지키는 인프라가 되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사회기반시설은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생태발자국을 줄일 수 있습니다.

행정기관이나 학교, 병원, 지역 스포츠팀들이 선박의 닻처럼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앵커 기관이 되어야 인구를 유지하고 생산물이 지역에서 소비되도록 경제를 일으킨다는 효과인가요?

노르베리호지 그렇죠. 우리가 가장 집중해야 할 영역은 식량과 농업입니다. 지금과 같은 지구적인 규모의 식량 구조가 가장 큰 오염원이에요. 사람들은 자기 동네에서 길러진 다양한 농산물을 안전하게 먹고 누릴 기회를 잃었습니다. 세계화된 농산물 시장이 돈이 되는 단일 작물 재배를 밀어붙이기 때문이죠. 단일 재배는 생명 순리를 거스릅니다.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사람이 비료, 살충제, 제초제를 공급해야 하죠. 토양에 있는 온갖 벌레까지 다 죽기 때문에 땅속 생명망이 죽어갑니다. 50에이커(약 6만1천평) 땅에서 나온 옥수수가 온 세계의 축사로 간다면, 몇백평 규모로 다양하게 농사짓는 농장에서 수확되는 작물들은 멀지 않은 시장으로 나갑니다. 가까운 도시에 있는 도매시장에도 넘기고 또 정부 조달을 통해 지역 병원과 학교에도 납품될 수 있겠죠. 그렇게 되면 지역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운송 사슬을 갖는 거예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관계를 형성하죠. 생산자와 유통자가 더 큰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관계를 중시하는 로컬푸드 운동이 지금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세금, 보조금, 규제

국가마다 고유한 그린 뉴딜을 이야기합니다. 조 바이든의 뉴딜, 한국의 그린 뉴딜. 중국의 경우는 9년 전에 생태문명을 선포했습니다. 에너지 생산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집중합니다. 나라마다 방향을 잘 찾아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노르베리호지 대부분의 정부가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그린 뉴딜을 합니다. 에너지를 적게 쓰자거나 자원을 적게 쓰자는 말을 하지 않는 그린 뉴딜입니다. 대신에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자고 단순하게 말합니다.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도시화에 박차를 가하고 대규모 농장에 재생에너지를 끌어와 규모를 키우고 로봇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논의하죠. 지금, 우리가 사람을 로봇으로 대체하면 실업과 더 많은 자원 소비, 더 많은 에너지 소비를 창조하는 겁니다. 이렇게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행성에서 굳이 그렇게 할 상황이 아니에요. 우리는 또 여전히 규모 확대, 속도 경쟁의 길을 가고 있죠. 지구 자원을 둘러싼 전쟁, 화성 자원을 둘러싼 경쟁으로 우리를 끌고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글로벌 기업과 금융이 부유해지는 가운데, 국민과 정부는 가난해져왔습니다. 더 이상 글로벌 은행과 기업의 지시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더더욱 부자가 되도록 도울 수는 없어요. 제가 말하는 그린 뉴딜은 지역화, 분산화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부분에 대해 유엔에서 공인을 해주는데요. 이 탄소배출권이 기업의 수익 구조에서 원자재 취급을 받기까지 합니다. 탄소배출권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인데요. 테슬라의 경우도 지난 수익의 상당수가 탄소배출권 판매에서 나왔고요.

노르베리호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봅시다. 우리는 탄소 배출에 대해 정직하게 전하는 말을 듣지 못했어요. 기후 정상회의에서 진행된 논의들의 상당수가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에요. 하나의 프레임으로 틀을 짜온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글로벌 무역이 매일 얼마나 팽창되는지,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유해지는지 듣지 못해요. 정부들은 글로벌 은행들과 기업에 권한을 넘기면서 점점 허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악한 악당이라서가 아니라 파괴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는 질서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지역 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규제를 강화하는 건가요?

노르베리호지 정부들은 세가지 장치를 쓸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방향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작동 원리로 세금, 보조금, 규제입니다. 산업화 속에서 대다수의 정부가 지역 인프라를 무시하고 심지어 파괴하면서까지 글로벌 인프라에 자금을 지원해왔습니다. 도로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지역 도로 대부분은 빠듯한 지역예산으로 관리됩니다. 하지만 수출입 세계 경제의 한 축인 대형 트럭이 다니는 고속도로는 더 많은 예산으로 신속하게 관리됩니다. 또 글로벌 규제는 완화하고 지역 규제는 과도하게 강화하고 있어요. 세계화 산업을 이루는 망 속에 있는 시설이나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지역과 국내 산업에는 세금으로 압박하죠. 지금 즉시 이 규칙을 뒤집는다면 그 땅에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지구 전체가 이로워집니다.

큰 그림을 보고 이해할 시간이 필요

2014년에 생닭을 포장해서만 팔 수 있는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령 때문에 시장 상인들이 과태료를 내고 곤란을 겪었는데요. 기사화되면서 영세 상인을 위한 법이 바뀌고, 소비자도 생닭의 상태를 보고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는 가정에서 만든 음식 판매가 불법이었다가 풀뿌리 조직들이 빵이나 쿠키를 구워 팔 수 있도록 법을 바꾸고, 지금은 따뜻한 음식을 부엌에서 만들어 팔 수 있게 되면서 특히 갓 이민 온 여성들의 자립에 도움이 되고 있고요. 여러 예가 떠오르네요.

노르베리호지 규제를 새로운 방향으로 재정립해나가면 민주주의도 강화됩니다.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지역 경제망 속에서 자리를 찾아가고 눈으로 확인하는 관계 속에서 먹거리 안전도 단단해질 수 있지요. 우리가 탈중앙화한다면 관료주의는 덜하고 민주주의는 더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안 구글이나 아마존이 파산해도 우리와는 상관없지만 삼성이 파산하면 나라도 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들이 있습니다. 현재 삼성의 최고경영자(CEO)는 감옥에 있는데요. 최근 여론조사에 60% 넘는 사람들이 삼성 시이오를 석방하는 데 동의했다고 합니다. 삼성이 한국의 경제를 지탱해주기에 기회를 주자고요. 삼성은 글로벌 기업의 중심에 있습니다. 이런 한국 사회의 논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노르베리호지 한국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솔직히 말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열린 질문을 한다면 답이 나올 거라 봅니다. “당신에게 미래를 위해 지금 소중하게 여기는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아이들에게 행복하고 뜻있는 미래를 갖도록 하기 위해 지금 어떤 사회의 모습을 보고 싶은가요?” 우리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단지 기후 비상사태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전염되고 있는 불행을 보고 있어요. 우울증, 자살이 유행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잘못되었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전체적으로 이해하도록 자리를 틀고 앉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더 큰 그림을 보기 위해 뒤로 물러서고 전체론적으로 본다면, 딜레마에 빠져 보이는 문제들도 실마리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흑이냐 백이냐 하는 질문, 한 단어로 단순화하는 상황 정리가 현실을 왜곡하고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로 흐르는 경우를 보아왔습니다. 현대 정치의 문화인 것 같아요.

노르베리호지 예, 세상에 오로지 좋거나 오로지 나쁜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역할이 있고 서로 의존하며 상호 존재하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말 그대로 종을 영원히 소멸시키며, 점점 더 많은 에너지,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고 있어요. 우리가 더 큰 생명 가족의 일원이라고 알아차리기보다는 왕인 것처럼 맹목적으로 행동합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내기 위해 조금은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기술의 속도로 달리고 있어요. 지금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한가요? 아니면 다른 기술이 필요한가요? 우리가 인간으로서 알아야 할, 우리를 진정 돕는 기술 말입니다. 시간 압박은 그 어떤 현명한 사람이라 해도 큰 그림을 보기 어렵게 하는 파괴적인 장치입니다. 삼성, 에이치에스비시(HSBC·영국의 세계 최대 다국적 금융회사), 다국적 기업의 시이오들, 그들은 악인이 아니에요. 세상을 파괴하려고 거기 앉아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큰 그림으로 보고 이해하고자 할 시간이 있을까요? 아니에요! 더 큰 권한을 가질수록 더 바삐 움직이고, 오래된 아이디어를 고수하고 지디피(GDP·국내총생산)로 측정되는 성장에 집착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해요. “잠시 멈추고, 잠시만 기다리자. 5G로 서두르지 말자. 인간에게 맞는 속도를 유지하고 삶을 돌보기 위해 규모를 줄이는 방법을 살펴보자.” 저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를 잠식하고 있는 성장 서사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녹색 채무전환’이 탐탁지 않은 이유

탄소 배출량 감소를 위한 지구적인 에너지 인프라 전환의 일환으로 나온 ‘녹색 채무 전환’(Green Debt Swap)에 대해 묻고 싶은데요. 4월15일에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책임자가 100곳이 넘는 나라에서 아이엠에프에 위기 재원 조달을 요청했다고 말했습니다. 대부분 개발도상국이지만 세계 지디피의 40%를 차지하기에 이들의 위기가 내년에는 세계 경제위기로 올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들 국가가 재생에너지로 인프라 전환을 하고 환경 파괴를 막도록 선진국에서 이들 국가의 채무를 변제해주자고 강조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경제 개발을 이룬 국가들이 내뿜은 탄소량은 적도 인근에 있는 저개발 국가들을 고통받게 했습니다. 녹색 채무 전환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노르베리호지 가난한 나라들도 산업화된 나라들처럼 배출량을 빠르게 줄이도록 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산업화된 세계에 있는 환경단체들은 ‘아니요’라고 했어요. 가난한 나라에 배출량을 줄이도록 압박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왜냐하면 문제는 우리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논쟁은 산업화된 국가들의 기업들이 생산 공장을 가난한 나라로 이동하기 시작한 때와 거의 동시에 나왔습니다. 그들 기업은 미국에서 또 한국에서 중국, 인도네시아, 멕시코로 공장을 옮겨갔어요. 브라질에서 멕시코, 인도, 중국에 이르기까지 그 나라의 수많은 엘리트들은 지금 글로벌 카지노 경제의 일부로 작동합니다. 신흥 억만장자들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보면 분명해져요. 소위 부유한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곳이 아니라 바로 이들 나라에서 더 많이 나왔어요. 저는 녹색 채무 전환이 그리 바람직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을 거라 봅니다. 서구나 아시아나 산업화된 나라의 중산층들은 인도나 콜롬비아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산업화 방향을 바꾸고 자립을 지원하는 일은 돈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지구적인 시민운동으로 무르익어 전체 산업의 방향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해요. 우리는 아마존을 밀어버리는 것과 같은 대규모 추출이 그 어디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잖아요. 풀뿌리에서부터 논의가 올라와야죠. 녹색 채무 전환은 아주 상층 단위에서 고려하는 방안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해법으로 현실에서 결과를 가져오기는 어렵습니다.

요즘 지구 온난화로 더 많은 기후이민자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뭄과 허리케인 등으로 농사를 망치니 도시로 이동하고, 코로나 영향으로 도시 경제까지 무너지니 국경을 넘습니다.

노르베리호지 글로벌 기업이라 하더라도 중국의 모든 마을에 맥도날드를 열 수는 없습니다. 거대 기업의 경우 큰 항구, 큰 공항 및 거대 도시를 키워갑니다. 인구가 그들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글로벌 시스템과 거대 도시는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계 무역업자한테 도시가 의존하고 토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도시와 마을이 파괴되기 시작한 지 벌써 400~500년 됐습니다. 오랫동안 계속되어왔고, 점점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식을 탈중앙화, 분산화를 고려하도록 넓혀야 하겠습니다. 그린 뉴딜로부터 탈중앙화를 통한 탄소 저감으로 확장하도록요.

노르베리호지 진짜 그린 뉴딜이죠. 저는 이를 진짜 그린 뉴딜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2021년 5월 22일 오후 3시(바이런 베이 현지 시각) 오스트레일리아 바이런 베이 자택에 있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2021년 5월 22일 오후 3시(바이런 베이 현지 시각) 오스트레일리아 바이런 베이 자택에 있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사람들이 다시 빵을 굽기 시작했어요

요즘 들어 선생님께 뭔가 미래를 보여주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사건이나 광경이 있나요? 희망을 전하는 모습이라면 무엇일까요?

노르베리호지 저에게 희망을 주는 상징적인 징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부엌에서 빵을 굽기 시작했어요. 한번도 무언가를 재배해보지 않았거나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이 먹거리를 기르는 기쁨을 발견하고, 땅을 통해 자연과 연결되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있어요. 갑자기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부모와 함께 살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하게 된 동거인데 다들 좋아합니다. 그들 중 일부는 이제 땅을 사서 함께 살 생각까지 하더군요. 그리고 봉쇄(록다운) 상태에서 어르신들을 돌보려고 동네에서 단체를 만드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서구 사람들은 가족이나 이웃과 분리되어 사는 경향이 강합니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고 경쟁이 치열하고 피상적이라서 그래요.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일수록 표피적인 데 쏠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유명한가?’ ‘얼마나 많은 좋아요를 받았나?’ ‘내게 고급 차가 있나?’ 이 모든 피상적인 물음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저는 가족과 이웃에게서 일어나는 이 재결합이 경이롭습니다. 가장 상징적이죠.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원하는 미래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중국의 경제학자 원톄쥔은 코로나19가 우한을 덮치고 퍼져나갔을 때, 중국 시골 마을들이 시행했던 생존법을 이야기해줬다. 마을 전체를 스스로 봉쇄한 것이다. 그들은 한가로이 겨울과 봄을 보냈다고 했다. 만약 그 마을들이 택배 차량 없이는 살 수 없는 구조라면 그들은 고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선술집에서 친구를 만나고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고 시장을 열며 들일을 했다. 마스크 없이 역병의 파고를 건넌 것이다.

우리에게는 늘 환란이 왔고, 늘 이름 바뀐 위기가 왔다. 이제는 위기가 위기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손보아야 한다. 지역이 자생력을 갖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탄성을 갖춘다면 그 어떤 위급 상황이라 하여도 고통의 질과 강도는 다르지 않을까? 다음 장에서는 불평등을 세습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는 능력주의 구조에 대해, <엘리트 세습>의 저자이자 예일대 로스쿨 교수 대니얼 마코비츠와 이야기 나눈다.

한국어로 번역된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책들.
한국어로 번역된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책들.

글 싣는 순서

1. 재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지은이, UCLA 지리학과 교수

2. 케이트 레이워스 <도넛 경제학> 지은이, 경제학자

3. 다니엘 코엔 파리 경제대 경제학 교수

4.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오래된 미래> 지은이, 로컬경제 활동가

5. 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 세습> 지은이, 예일대 로스쿨 교수

6.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7. 사티시 쿠마르 슈마허대 창립자

‘안희경의 내일의 세계’는 매주 목요일에 실립니다.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 사진 정미숙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 사진 정미숙

문명의 미래를 묻는 사람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2002년 미국으로 이주,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계 지성들과 코로나19의 원인과 이후 인류의 미래를 탐색하는 <오늘부터의 세계>, 세계적 마음 전문가들의 인터뷰집 <사피엔스의 마음>,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엮은 <어크로스 페미니즘>,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집 <문명, 그 길을 묻다>, 노엄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해인의 말>, 에세이 <나의 질문>과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캐나다·멕시코, 미국에 보복 관세 맞불…‘관세 전쟁’ 1.

캐나다·멕시코, 미국에 보복 관세 맞불…‘관세 전쟁’

일본, 1시간 일해 빅맥 두 개 산다…한국은? 2.

일본, 1시간 일해 빅맥 두 개 산다…한국은?

기어이 ‘관세 전쟁’ 트럼프의 속내…38년 전 광고엔 대놓고 3.

기어이 ‘관세 전쟁’ 트럼프의 속내…38년 전 광고엔 대놓고

미국서 또 항공기 추락…어린이 환자 태운 채 주택가로 떨어져 4.

미국서 또 항공기 추락…어린이 환자 태운 채 주택가로 떨어져

멕시코·캐나다 공장 어쩌나…트럼프 관세 폭탄에 글로벌 기업 당혹 5.

멕시코·캐나다 공장 어쩌나…트럼프 관세 폭탄에 글로벌 기업 당혹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