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경의 내일의 세계] 세계 지성에게 10년 생존전략을 묻다
②케이트 레이워스 Kate Rayworth
②케이트 레이워스 Kate Rayworth
케이트 레이워스 교수의 도넛경제 모델은 인류와 지구가 공존하며 번영을 이어갈 구체적 해법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이 경제혁신으로 ‘최고 강국이 나아가는 미래산업이란 이곳이다’라고 길잡이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로먼 크르즈나릭(Roman Krznaric)
추출 자본주의다. 사람과 자연으로부터 이윤이 될 모든 것을 뽑아내어 물질적 풍요를 이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케이트 레이워스는 그의 책 <도넛 경제학>에서 지난 200년간의 산업 활동을 ‘애벌레 경제’로 묘사했다. 애벌레가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하듯, 지구에서 자원을 뽑아 온갖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에게 팔아 가능한 한 빨리 쓴 다음 버리게 하는 공급 사슬이다.
케이트 레이워스는 이 일직선 경제를 재생과 회복으로 순환하는 나비의 날개를 닮은 경제로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도넛 모양의 경제 모델은 세상에 나왔다. 유엔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도시와 국가에서 ‘유레카!’를 외쳤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최근 발간한 저서 <렛 어스 드림>(Let Us Dream)에서 인류와 지구가 공존하며 번영을 이어갈 방안이라며 이를 실천하자고 독려했다.
7월2일 오후 3시30분(영국 현지시각) 옥스퍼드대학교 연구실에 있는 그녀와 인터넷 화상으로 만났다.
안희경(이하 안) 작년(2020년) 4월, 코로나19로 세계가 봉쇄된 상황 속에서 위기가 기회를 만든다는 것을 확인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바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당신의 도넛 경제학 모델을 시 정책으로 추진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이론을 어떻게 실현하고 있나요?
케이트 레이워스(이하 레이워스) 암스테르담은 순환 경제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순환 전략은 새로운 원자재 소비를 줄이고 기존 자원을 다시 쓰고, 수명이 다한 제품은 재활용하여 쓸모를 살려내는 전략입니다. 소비재를 넘어 건축 자재까지 아우릅니다. 암스테르담에서 추진 중인 주거단지 에이뷔르흐(아이버그) 프로젝트의 경우 순환 전략 속에서 정책이 바뀌었어요. 인공섬 건설에 사용되는 배도 저공해 선박을 사용하고 기초 토대도 주변의 야생동물에게 해를 입히지 않도록 추진합니다. 주택은 탄소 및 폐기물 배출 제로(zero)로 디자인되며 시민들이 부담 없는 임대료로 장기간 살 수 있는 사회주택을 우선으로 건설합니다. 무엇보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환경을 조성하죠. 보다 지속 가능하고 순환할 수 있는 자재를 사용하도록 시 소유 건물을 지을 때, 시공사들이 ‘자재 여권’을 받도록 표준을 만들었습니다. 건물이 철거될 때 그 자재를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죠. 암스테르담은 도시의 모든 구조를 차근차근 바꾸어나가고 있어요.
그린뉴딜에서 ‘소비’가 빠졌다
21세기의 나침반이 되어줄 도넛: 개인의 삶의 기본을 이루는 사회적 토대와 지구 전체의 안녕을 이루는 생태적 한계 사이에 인류를 위한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초록 지대(굵은 실선 안)가 도넛이다. 입안에 달콤함을 주는 도넛처럼 도넛 모양의 두 경계 안에 있을 때, 인간다움을 누릴 수 있다. 도넛은 안전지대이다.
“과연 차를 소유해야 할까?” 저와 제 파트너는 차를 소유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대부분 차는 당연히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행기를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레이워스 그린 뉴딜에서 한 가지 빠진 점이 있어요. 바로 ‘소비’입니다. 자, 자동차 산업을 한번 보세요. 기업은 소비자가 3년마다 새 차로 바꾸기를 갈망합니다. 해마다 조금이라도 모양을 바꿔 신제품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해가 가기 전에 세일을 하죠. 이런 밀어내기 마케팅 전략 속에서 때마침 전기차가 부상한 것입니다. 새 차를 팔아야 하는데, 바로 전기차라는 급물살을 탄 거죠. 우리는 환경을 위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자동차를 구매하는 생각 있는 소비자로 변신해야 할까요? 그 많은 철과 리튬과 알루미늄을 또 배출해야 할까요? 소비하기 전에 차에 대한 생각을 점검해야 합니다. “과연 차를 소유해야 할까?” 저와 제 파트너는 차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차를 소유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대부분 차는 당연히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행기를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기차를 소유하자 하는 계획을 갖고 대출을 받습니까? 차도 마찬가지예요. 공유하고, 빌리고, 여럿이 함께 이용하는 대중교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 공공 정책도 바뀝니다. 대중교통 무료, 공유차 무료, 자전거 대여 무료. 전기차를 각자 소유하지 않고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효율적이고 정부는 서투르다고?
우리는 기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요 기업의 최전선에는 반드시 로비스트들이 있습니다. 기존의 소비 중심 마케팅, 기존의 오염 배출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을 고수하는 경영의 최일선 로비 그룹을 해체해야 합니다.레이워스 그래요. 지금의 행정부는 민간부문으로 많은 부분 외주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수많은 기업이 있죠. 그리고 주요 기업의 최전선에는 반드시 로비스트들이 있습니다. 로비 그룹입니다. 우리는 기업에서 그 그룹만 빼내면 됩니다. 요즘 대학원을 나온 졸업생들은 자기들만의 혁신안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고 생산 작업을 유지할지 방법을 알고 있고, 독성 물질이 아닌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생산하고 순환시킬 화학 부문의 혁신안을 갖고 있습니다. 쓰레기로 버릴 것이 아니라 계속 사용하도록 수리하면서도 새로운 디자인을 보충할 수 있는 방안을 이미 개발했습니다. 단지 기존의 소비 중심 마케팅, 기존의 오염 배출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을 고수하는 경영의 최일선 로비 그룹만 해체하면 됩니다. 안 경제 질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려면 그런 의지가 있는 정부가 서고, 또 정부에 힘이 있어야 하는데요, 우리에게 있는 뿌리박힌 생각은 기업가는 효율적이지만, 정부는 서투르다는 사고입니다. 혁신에 있어서 오히려 시장의 변화를 막고 있다는 질책이 정부를 향합니다. 레이워스 이 부분은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영국 UCL 교수)가 분명하게 잘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40년 가까이 정부를 축소시켜왔어요. 이윤이 나는 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 확산시킨 사고가 정부는 느리고 위기 대응력이 약하고 비효율적이라는 프레임입니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조정자 정도로 가두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혁신은 정부가 이뤄왔습니다. 오늘의 정보기술(IT) 혁신 또한 정부와 국민의 세금이 주도한 겁니다.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기획국(DARPA)이 지원해 개발했고, 지피에스(GPS)는 미국 해군이 만들도록 유인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기후 위기를 돌파할 방향성 설정 같은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나 에너지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는 정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7월2일 오후 3시30분(영국 현지시각) 케이트 레이워스 교수가 옥스퍼드대학교 연구실에서 인터넷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다가 도넛경제 모델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희경 제공
화이자 같은 제약회사들이 이윤을 내는 법
이제는 노동이 아니라 비재생 자원 사용에 세금을 물려야 합니다. 여기에 재생 에너지와 자원의 효율을 올리는 투자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까지 더한다면 산업체들은 노동 생산성을 올리는 데서 자원 생산성을 올리는 쪽으로 이동할 거예요.안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은 코로나19에 정부가 무능하게 대처하면서 경제, 정치마저 뒤흔드는 팬데믹을 맞았습니다. 그 속에서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모더나는 발 빠르게 백신을 만들어냈고 그들의 경제는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위기 타개에 있어 기업이 기민하다는 믿음을 또 한번 줬습니다. 레이워스 모든 백신은 공공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모더나, 화이자를 포함해서 모두요. 특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더 전폭적인 공공기금으로 개발됐습니다. 그리고 그 백신을 누가 연구합니까? 제약회사가 연구원을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교육시켰나요? 특히 기초과학 연구는 국가기관이 하고 있고, 수많은 연구 결과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단지 제약회사는 도구로써 그 연구들을 가져가 부분적인 혁신을 한 것입니다. 기업들은 공공 연구 결과물을 가져가 쓰는 도구 사용자예요. 마지막 순간에 자신들의 저작권을 붙여 이윤을 불리고 있습니다. 안 우리는 성장 중독에 빠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시 뛰는 대한민국 일류국가 대한민국’이라는 목표를 버리기 어려운 관성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실 저성장의 고통은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치명적입니다.
건강과 교육을 나타내는 인간개발지수를 비롯해 행복한 지구 지수, 포괄적 부 지수, 사회 진보 지수 등 계속 등장합니다. GDP를 개발한 쿠즈네츠가 살아 돌아온다면 “왜 아직도 GDP 하나로 운전하려 하느냐”고 한탄할지 몰라요.레이워스 성장 척도를 알려주는 국내총생산(GDP·지디피) 맹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삶의 지표를 나타내는 지수가 지디피 말고도 다양하게 있습니다. 1인당 소득뿐 아니라 건강과 교육까지 나타내는 인간 개발 지수를 비롯해 행복한 지구 지수, 포괄적 부 지수, 사회 진보 지수 등 계속 등장합니다. 지디피를 개발한 쿠즈네츠가 살아 돌아온다면 “지금은 21세기이다. 수많은 자료가 있는데 왜 아직도 지디피 하나로 운전하려 하느냐”고 한탄할지 몰라요. 요즘 다들 혁신과 도전을 이야기하며 지구 밖으로 나가려 하죠. 하지만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은 이 안이에요. 우리가 지구 안의 삶에 집중하여 혁신을 이룬다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오염을 제거하고, 순환 경제를 위해 다시 재생하는 물건으로 방향을 전환한다면 로봇이 만들어내는 새 공장 생산라인이 아니라 사람이 숙련하여 일하는 새로운 분야가 생겨날 거예요. 한국은 놀라운 성장으로 부자 산업 대국이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방향을 돌파하는 경제 혁신으로 ‘최고 강국이 나아가는 미래 산업이란 이곳이다’라고 길잡이 해주길 바랍니다. 미래 산업은 우주가 아니라 바로 이 지구를 살기 좋게 만드는 그곳에 있다고요.
2018년 9월 출간된 <도넛 경제학> 한국어판.
좌우파가 ‘도넛’을 대하는 태도
‘전환’의 강력한 비전을 창조하자
글 싣는 순서
1. 재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지은이, UCLA 지리학과 교수
2. 케이트 레이워스 <도넛 경제학> 지은이, 경제학자
3. 다니엘 코엔 파리 경제대 경제학 교수
4.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오래된 미래> 지은이, 로컬경제 활동가
5. 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 세습> 지은이, 예일대 로스쿨 교수
6.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7. 사티시 쿠마르 슈마허대 창립자
8. 미정 ‘안희경의 내일의 세계’는 매주 목요일에 실립니다.
2. 케이트 레이워스 <도넛 경제학> 지은이, 경제학자
3. 다니엘 코엔 파리 경제대 경제학 교수
4.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오래된 미래> 지은이, 로컬경제 활동가
5. 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 세습> 지은이, 예일대 로스쿨 교수
6.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7. 사티시 쿠마르 슈마허대 창립자
8. 미정 ‘안희경의 내일의 세계’는 매주 목요일에 실립니다.
케이트 레이워스 Kate Rayworth
21세기의 현실에 맞는 경제학을 만들고자 집중하는 경제학자. 1970년 영국 출생. 사회적인 조건과 환경적인 조건에 있어 현대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영역인 도넛 개념을 창시했다. 세계 여러 도시 및 국가, 풀뿌리 조직에 정책 지원을 하는 ‘도넛경제학행동연구소’(Doughnut Economics Action Lab, DEAL) 공동 설립자이다. 2017년 펴낸 그의 저서 <도넛 경제학>은 2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유엔 총회에서부터 프란치스코 교황,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 운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케이트 레이워스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철학·경제학을 공부했고 개발경제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옥스퍼드대학교 환경변화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환경 변화와 운영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 아프리카 잔지바르 농촌에서 마을 자립 경제를 만드는 활동을 했으며, 유엔개발계획(UNDP)의 대표 보고서인 ‘인간 개발 보고서’를 공동 작성했다. 이어서 학창 시절부터 꿈꾸던 옥스팜에서 10년간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 모두를 위한 건강 경제학 위원회에 참여한다. 영국 <가디언>지는 “세계 경제에 변화를 일으키는 트위터리안 10인”에 케이트 레이워스를 꼽았다.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 사진 정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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