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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도넛 경제학> 저자 “GDP 맹신에서 벗어나야 지구에서 오래 살 수 있다”

등록 2021-07-29 04:59수정 2021-07-29 10:23

[안희경의 내일의 세계] 세계 지성에게 10년 생존전략을 묻다
②케이트 레이워스 Kate Rayworth
케이트 레이워스 교수의 도넛경제 모델은 인류와 지구가 공존하며 번영을 이어갈 구체적 해법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이 경제혁신으로 ‘최고 강국이 나아가는 미래산업이란 이곳이다’라고 길잡이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로먼 크르즈나릭(Roman Krznaric)
케이트 레이워스 교수의 도넛경제 모델은 인류와 지구가 공존하며 번영을 이어갈 구체적 해법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이 경제혁신으로 ‘최고 강국이 나아가는 미래산업이란 이곳이다’라고 길잡이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로먼 크르즈나릭(Roman Krznaric)

추출 자본주의다. 사람과 자연으로부터 이윤이 될 모든 것을 뽑아내어 물질적 풍요를 이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케이트 레이워스는 그의 책 <도넛 경제학>에서 지난 200년간의 산업 활동을 ‘애벌레 경제’로 묘사했다. 애벌레가 먹고 소화시키고 배설하듯, 지구에서 자원을 뽑아 온갖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에게 팔아 가능한 한 빨리 쓴 다음 버리게 하는 공급 사슬이다.

케이트 레이워스는 이 일직선 경제를 재생과 회복으로 순환하는 나비의 날개를 닮은 경제로 설계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도넛 모양의 경제 모델은 세상에 나왔다. 유엔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도시와 국가에서 ‘유레카!’를 외쳤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최근 발간한 저서 <렛 어스 드림>(Let Us Dream)에서 인류와 지구가 공존하며 번영을 이어갈 방안이라며 이를 실천하자고 독려했다.

7월2일 오후 3시30분(영국 현지시각) 옥스퍼드대학교 연구실에 있는 그녀와 인터넷 화상으로 만났다.

안희경(이하 안) 작년(2020년) 4월, 코로나19로 세계가 봉쇄된 상황 속에서 위기가 기회를 만든다는 것을 확인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바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당신의 도넛 경제학 모델을 시 정책으로 추진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이론을 어떻게 실현하고 있나요?
케이트 레이워스(이하 레이워스) 암스테르담은 순환 경제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순환 전략은 새로운 원자재 소비를 줄이고 기존 자원을 다시 쓰고, 수명이 다한 제품은 재활용하여 쓸모를 살려내는 전략입니다. 소비재를 넘어 건축 자재까지 아우릅니다. 암스테르담에서 추진 중인 주거단지 에이뷔르흐(아이버그) 프로젝트의 경우 순환 전략 속에서 정책이 바뀌었어요. 인공섬 건설에 사용되는 배도 저공해 선박을 사용하고 기초 토대도 주변의 야생동물에게 해를 입히지 않도록 추진합니다. 주택은 탄소 및 폐기물 배출 제로(zero)로 디자인되며 시민들이 부담 없는 임대료로 장기간 살 수 있는 사회주택을 우선으로 건설합니다. 무엇보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환경을 조성하죠. 보다 지속 가능하고 순환할 수 있는 자재를 사용하도록 시 소유 건물을 지을 때, 시공사들이 ‘자재 여권’을 받도록 표준을 만들었습니다. 건물이 철거될 때 그 자재를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죠. 암스테르담은 도시의 모든 구조를 차근차근 바꾸어나가고 있어요.

그린뉴딜에서 ‘소비’가 빠졌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일회용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수천년이 지나면 지금의 시대를 플라스틱 문명이라고 할 거라 말해왔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전세계적으로 배출된 플라스틱 양을 보면 후세가 대체 2020년에 지구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플라스틱 폭발이 있었나 의아해할 것 같아요.

레이워스 지금 당장 두려움에 일회용을 쓰고 버리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를 보호하는 길일까요? 코로나19가 지나가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하고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해요. 2020년 6월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도 도넛 경제학을 시의 주요한 정책 방안으로 채택했는데요, 덴마크에서는 오래전부터 플라스틱이나 캔 대신에 유리병을 사용해왔습니다. 콜라나 맥주 같은 음료를 유리병에 담아 팔고, 이 유리병도 일회용이 아니라 재사용할 수 있는 병을 쓰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어요. 의무 사항입니다. 소비자가 음료를 마시고 수집함에 넣으면 병값을 돌려받고, 제조회사는 이를 수거해서 소독해 다시 채워 상점에 진열합니다. 덴마크의 유리병 재활용률은 약 95퍼센트입니다. 에너지 소비도 줄어들죠. 무엇보다 물건을 소비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도넛 경제는 모두가 공유하는 우리의 환경과 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며 소비하도록 행정과 시장이 협력하는 방식입니다.
21세기의 나침반이 되어줄 도넛: 개인의 삶의 기본을 이루는 사회적 토대와 지구 전체의 안녕을 이루는 생태적 한계 사이에 인류를 위한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초록 지대(굵은 실선 안)가 도넛이다. 입안에 달콤함을 주는 도넛처럼 도넛 모양의 두 경계 안에 있을 때, 인간다움을 누릴 수 있다. 도넛은 안전지대이다.
21세기의 나침반이 되어줄 도넛: 개인의 삶의 기본을 이루는 사회적 토대와 지구 전체의 안녕을 이루는 생태적 한계 사이에 인류를 위한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초록 지대(굵은 실선 안)가 도넛이다. 입안에 달콤함을 주는 도넛처럼 도넛 모양의 두 경계 안에 있을 때, 인간다움을 누릴 수 있다. 도넛은 안전지대이다.

2017년에 <도넛 경제학>이 나왔을 때, 환경과 경제가 충돌하지 않고 나아갈 방향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어 희망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환경도 먹고살 만한 사람이 신경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사는 동네 식료품점에 유기농 식재료가 냉장고를 채우듯이요.

레이워스 도넛은 안전지대입니다. 도넛 모양 안에 있다면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도넛 가운데 구멍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으로 지켜내는 목표를 갖습니다. 음식이나 물, 의료자원, 살 집이 마련되고, 정치적인 목소리와 사회적 평등이 보장되는 21세기 인간의 핵심적인 삶의 조건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생태적인 천장을 침범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 소비를 좇는 20세기 사고 속에서 지구에 너무도 많은 압력을 넣었어요. 이 별의 균형이 흐트러지도록 몰아쳤습니다. 우리의 집인 지구를 안정적으로 지켜내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입니다. 모든 음식, 옷, 전자제품, 소비재들, 건축 자재들이 매일 온 세계로부터 우리가 소비하는 이곳으로 옵니다. 그리고는 쓰레기가 되어 나가요. 지구적인 차원에서 자원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탄소 배출, 물 남용, 비료, 광물 채취 등등요. 그런 다음 묻는 겁니다. 세계인의 안녕을 내가 있는 이곳에서 보살필 수 있을까? 사회적, 생태적, 지역적, 지구적인 렌즈로 우리 주변을 살피는 거예요.

저는 전부터 그린 뉴딜을 응원해왔습니다. 지금도 재생 에너지로 인프라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요, “과연 우리의 탄소 에너지 인프라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바른길을 가고 있는가?” 의문입니다. 특히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휘발유차와 디젤차 판매를 금지하려 하는 지금 모두가 있던 차를 버리고 새 전기차를 산다면 지구가 지탱할까요? 다시 원자력 발전소 폐쇄 정책을 멈추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차를 소유해야 할까?” 저와 제 파트너는 차를 소유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대부분 차는 당연히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행기를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레이워스 그린 뉴딜에서 한 가지 빠진 점이 있어요. 바로 ‘소비’입니다. 자, 자동차 산업을 한번 보세요. 기업은 소비자가 3년마다 새 차로 바꾸기를 갈망합니다. 해마다 조금이라도 모양을 바꿔 신제품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해가 가기 전에 세일을 하죠. 이런 밀어내기 마케팅 전략 속에서 때마침 전기차가 부상한 것입니다. 새 차를 팔아야 하는데, 바로 전기차라는 급물살을 탄 거죠. 우리는 환경을 위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자동차를 구매하는 생각 있는 소비자로 변신해야 할까요? 그 많은 철과 리튬과 알루미늄을 또 배출해야 할까요? 소비하기 전에 차에 대한 생각을 점검해야 합니다. “과연 차를 소유해야 할까?” 저와 제 파트너는 차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차를 소유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대부분 차는 당연히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행기를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기차를 소유하자 하는 계획을 갖고 대출을 받습니까? 차도 마찬가지예요. 공유하고, 빌리고, 여럿이 함께 이용하는 대중교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 공공 정책도 바뀝니다. 대중교통 무료, 공유차 무료, 자전거 대여 무료. 전기차를 각자 소유하지 않고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효율적이고 정부는 서투르다고?

덩치 큰 교통수단을 누가 소유하겠다 생각하겠냐고 여길 수도 있지만, 요즘 전동 킥보드 공유하는 것을 보면 규모와 비용의 문제는 아니라 봅니다. 다만 기업이 가만히 있을까요? 시장을 뽑아도 실제 시장과 공무원이 일을 한다기보다 컨설팅 회사가 일을 합니다. 행정부조차 아웃소싱되었습니다. 공무원은 입찰을 관리하고 그에 뽑힌 사기업이 일을 합니다. 경전철 타당성을 보고한 컨설팅 회사는 건재하지만, 시민의 세금은 수백억이 사라지고, 도시는 괴물 철로를 이고 있는 현실이죠. 과연 우리에게 공공 정책을 가져갈 힘이 있을까요?

우리는 기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요 기업의 최전선에는 반드시 로비스트들이 있습니다. 기존의 소비 중심 마케팅, 기존의 오염 배출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을 고수하는 경영의 최일선 로비 그룹을 해체해야 합니다.
레이워스 그래요. 지금의 행정부는 민간부문으로 많은 부분 외주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수많은 기업이 있죠. 그리고 주요 기업의 최전선에는 반드시 로비스트들이 있습니다. 로비 그룹입니다. 우리는 기업에서 그 그룹만 빼내면 됩니다. 요즘 대학원을 나온 졸업생들은 자기들만의 혁신안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바다를 오염시키지 않고 생산 작업을 유지할지 방법을 알고 있고, 독성 물질이 아닌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생산하고 순환시킬 화학 부문의 혁신안을 갖고 있습니다. 쓰레기로 버릴 것이 아니라 계속 사용하도록 수리하면서도 새로운 디자인을 보충할 수 있는 방안을 이미 개발했습니다. 단지 기존의 소비 중심 마케팅, 기존의 오염 배출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을 고수하는 경영의 최일선 로비 그룹만 해체하면 됩니다.

경제 질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려면 그런 의지가 있는 정부가 서고, 또 정부에 힘이 있어야 하는데요, 우리에게 있는 뿌리박힌 생각은 기업가는 효율적이지만, 정부는 서투르다는 사고입니다. 혁신에 있어서 오히려 시장의 변화를 막고 있다는 질책이 정부를 향합니다.

레이워스 이 부분은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영국 UCL 교수)가 분명하게 잘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40년 가까이 정부를 축소시켜왔어요. 이윤이 나는 공기업을 민영화하면서 확산시킨 사고가 정부는 느리고 위기 대응력이 약하고 비효율적이라는 프레임입니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조정자 정도로 가두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혁신은 정부가 이뤄왔습니다. 오늘의 정보기술(IT) 혁신 또한 정부와 국민의 세금이 주도한 겁니다.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기획국(DARPA)이 지원해 개발했고, 지피에스(GPS)는 미국 해군이 만들도록 유인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기후 위기를 돌파할 방향성 설정 같은 거대한 규모의 프로젝트나 에너지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는 정부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7월2일 오후 3시30분(영국 현지시각) 케이트 레이워스 교수가 옥스퍼드대학교 연구실에서 인터넷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다가 도넛경제 모델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희경 제공
7월2일 오후 3시30분(영국 현지시각) 케이트 레이워스 교수가 옥스퍼드대학교 연구실에서 인터넷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다가 도넛경제 모델판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희경 제공

화이자 같은 제약회사들이 이윤을 내는 법

기업들이 순환 경제 속으로 들어오도록 하려면 정부는 어떤 설계를 해야 할까요?

레이워스 역사적으로 각국 정부는 마땅히 세금을 매겨야 하는 쪽에 과세를 하지 않았습니다. 세금 매기기 편한 쪽에서 징수해왔습니다. 사람을 고용하는 기업에는 세금(지불 급여세)을 물리고 로봇을 구매하는 기업에는 보조금을 주고(자본 투자에 대한 소득공제) 토지와 여타 비재생 자원 사용에 대해서는 세금을 거의 물리지 않습니다. 2012년 유럽연합(EU)의 세수를 보면 50퍼센트 이상이 노동에 관한 세금이었습니다. 미국은 그 비율이 더 높고요. 이제는 노동이 아니라 비재생 자원 사용에 세금을 물려야 합니다. 여기에 재생 에너지와 자원의 효율을 올리는 투자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까지 더한다면 산업체들은 노동 생산성을 올리는 데서 자원 생산성을 올리는 쪽으로 이동할 거예요. 새로운 재료는 적게 사용하면서도 일자리는 늘어날 겁니다. 그리고 반드시 규제로 뒷받침해야만 합니다. 화학물질, 자연을 오염시키는 생산 과정을 퇴출시키고 생명 친화적인 화학 기술만 사용하도록 유도하면서 에너지 소비가 제로이거나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산업 표준을 바꾸어가는 겁니다. 바로 국가가 주도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변화죠.

이제는 노동이 아니라 비재생 자원 사용에 세금을 물려야 합니다. 여기에 재생 에너지와 자원의 효율을 올리는 투자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까지 더한다면 산업체들은 노동 생산성을 올리는 데서 자원 생산성을 올리는 쪽으로 이동할 거예요.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은 코로나19에 정부가 무능하게 대처하면서 경제, 정치마저 뒤흔드는 팬데믹을 맞았습니다. 그 속에서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모더나는 발 빠르게 백신을 만들어냈고 그들의 경제는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위기 타개에 있어 기업이 기민하다는 믿음을 또 한번 줬습니다.

레이워스 모든 백신은 공공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모더나, 화이자를 포함해서 모두요. 특히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더 전폭적인 공공기금으로 개발됐습니다. 그리고 그 백신을 누가 연구합니까? 제약회사가 연구원을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교육시켰나요? 특히 기초과학 연구는 국가기관이 하고 있고, 수많은 연구 결과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단지 제약회사는 도구로써 그 연구들을 가져가 부분적인 혁신을 한 것입니다. 기업들은 공공 연구 결과물을 가져가 쓰는 도구 사용자예요. 마지막 순간에 자신들의 저작권을 붙여 이윤을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장 중독에 빠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다시 뛰는 대한민국 일류국가 대한민국’이라는 목표를 버리기 어려운 관성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실 저성장의 고통은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욱 치명적입니다.

건강과 교육을 나타내는 인간개발지수를 비롯해 행복한 지구 지수, 포괄적 부 지수, 사회 진보 지수 등 계속 등장합니다. GDP를 개발한 쿠즈네츠가 살아 돌아온다면 “왜 아직도 GDP 하나로 운전하려 하느냐”고 한탄할지 몰라요.
레이워스 성장 척도를 알려주는 국내총생산(GDP·지디피) 맹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삶의 지표를 나타내는 지수가 지디피 말고도 다양하게 있습니다. 1인당 소득뿐 아니라 건강과 교육까지 나타내는 인간 개발 지수를 비롯해 행복한 지구 지수, 포괄적 부 지수, 사회 진보 지수 등 계속 등장합니다. 지디피를 개발한 쿠즈네츠가 살아 돌아온다면 “지금은 21세기이다. 수많은 자료가 있는데 왜 아직도 지디피 하나로 운전하려 하느냐”고 한탄할지 몰라요. 요즘 다들 혁신과 도전을 이야기하며 지구 밖으로 나가려 하죠. 하지만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은 이 안이에요. 우리가 지구 안의 삶에 집중하여 혁신을 이룬다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오염을 제거하고, 순환 경제를 위해 다시 재생하는 물건으로 방향을 전환한다면 로봇이 만들어내는 새 공장 생산라인이 아니라 사람이 숙련하여 일하는 새로운 분야가 생겨날 거예요. 한국은 놀라운 성장으로 부자 산업 대국이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방향을 돌파하는 경제 혁신으로 ‘최고 강국이 나아가는 미래 산업이란 이곳이다’라고 길잡이 해주길 바랍니다. 미래 산업은 우주가 아니라 바로 이 지구를 살기 좋게 만드는 그곳에 있다고요.

2018년 9월 출간된 &lt;도넛 경제학&gt; 한국어판.
2018년 9월 출간된 <도넛 경제학> 한국어판.

좌우파가 ‘도넛’을 대하는 태도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경제학자로 통합니다. <도넛 경제학> 책을 내고 수많은 국제포럼뿐 아니라 국가 수반들이 주제하는 회의 등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반가운 점은 그들이 당신을 불렀다는 건데요, 한 가지 의문은 과연 그들이 당신의 말을 듣고 행동을 바꿨나 하는 점입니다.

레이워스 정부들의 경우 좌파 정권이건 우파 정권이건 모든 곳에서 우리(도넛경제학행동연구소)에게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매우 감동적이에요. 경청하며 검토하고 정책으로 개발해내죠. 그들의 모습 속에서 확실히 확인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들도 모두 한계에 다다랐다는 현실입니다. 막다른 곳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었어요. 언젠가 제가 환경과 삶의 질을 개선해 나갈 방향에 대해 열의에 차서 이야기하고 나오는데, 한 정책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시군요.” 제가 희망적인 대안을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저는 오늘의 상황을 너무도 비관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서 제 스스로 열정을 북돋으려 애쓰는데, 반대 반응이 나온 것이죠.

곧이어 한국은 대통령 선거 열풍으로 들어갑니다. 지금 두각을 나타내는 후보들이 있습니다. 매일 뉴스에서 그들의 말을 반복하고 과연 누구 지지도가 더 높을까 여론조사를 보도합니다. 후보들 중에는 불평등을 해결하겠다는 정책을 제시하며 적극적인 정책을 제기하는 이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후 위급 상황에 대한 언급은 진보와 보수를 아울러 찾기 어렵습니다.

레이워스 정말인가요? 당장 우리에게 닥친 긴급한 사안이잖아요.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10년인가요?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지 않으면 되돌리기 어려운 고통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나요?

레이워스 가슴 아프지만 저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선을 넘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2030년이란 숫자는 과학자들이 제시한 시간이 아닙니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로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지만, 이 숫자들은 정치인들이 선택한 숫자일 뿐이에요. 그들은 매번 뒤로 미뤄왔습니다. 괜찮겠지 하는 관성에 젖어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기한을 연장하며 마지못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반으로 줄여야 한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완성해야 한다”고 협상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개최되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결의를 하리라는 보도가 나오는데요, 주최국인 영국조차도 지금 구체적인 방안을 내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속 타는 일이에요.

‘전환’의 강력한 비전을 창조하자

신자유주의 속에서 우리는 뼛속까지 신자유주의 문화에 물들어 있습니다. 점점 치열한 경쟁이 교실까지 잠식했는데요. 과연 우리가 연대를 이루어가며 나아갈 수 있을까요?

레이워스 밀턴 프리드먼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이 두 경제학자와 두 정치 지도자 마거릿 대처, 로널드 레이건이 만들어낸 체제죠. 대처는 우리 각자를 따로따로 분리시켜냈어요. 시장에서 존재하는 인간으로 각자가 홀로 치열히 경쟁하며 생존하도록 개인을 강조했습니다. 개인이 스스로를 지켜내도록 몰아쳤죠. 그러나 우리의 삶은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생명은 홀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특히 인간은 월등히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당연히 서로의 이익을 위해 나아갈 수밖에 없죠. 강력한 비전을 창조합시다. 전환을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역과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에 여타의 모든 방법까지 결합해서 전환점을 만듭시다. 각자 할 수 있는 그곳에서부터 지역과 세계를 모니터하는 거예요. 지역의 정책이 도넛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요. 지속적으로, 창의적으로 그리고 즐겁게 해나갑시다.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 경제학은 도넛경제학행동연구소(the Doughnut Economics Action Lab. 약칭 DEAL)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 코스타리카를 선두로 국가 단위에서 실현되고 있을 뿐 아니라 덴마크 코펜하겐, 캐나다 너나이모, 미국 포틀랜드, 필라델피아, 영국 레이디우드 등에서도 실현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시민 주도 운동으로 캘리포니아 전역, 시애틀, 상파울루, 베를린, 쿠알라룸푸르 등에서 아래로부터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마을이 바뀌고, 의회의 의제가 바뀌며 지역 기업과 시장이 변화한다. 이 연구소는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연구원과 공개된 정책 자료를 통해 <포천> 선정 500대 기업뿐 아니라 마을 단위에서 인큐베이트 되는 기업까지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특히 시 단위의 변화는 서울, 베이징, 런던, 파리, 뉴욕 등 세계 주요 87개 도시가 참여하는 C40 그룹과 협력하는데, 지난(2021년) 4월 <암스테르담 정책 방법론>(Amsterdam’s City Portrait)을 함께 펴냈다(이 자료집은 누구나 DEAL 웹사이트(doughnuteconomics.org)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교통, 대기뿐 아니라 실업, 도시 농장, 패스트패션에 이르기까지 보살피는 방법론이 펼쳐져 있다. 우리 땅에도 불평등과 환경을 보살피는 정책 방향에 대한 논의가 깊어지길 희망한다.

다음 회는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 진단,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 사회 안전망 구축, 기본소득 정책 등에 대해 파리 경제대학의 경제학 교수 다니엘 코엔과 이야기 나눈다.

글 싣는 순서

1. 재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지은이, UCLA 지리학과 교수
2. 케이트 레이워스 <도넛 경제학> 지은이, 경제학자
3. 다니엘 코엔 파리 경제대 경제학 교수
4.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오래된 미래> 지은이, 로컬경제 활동가
5. 대니얼 마코비츠 <엘리트 세습> 지은이, 예일대 로스쿨 교수
6.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7. 사티시 쿠마르 슈마허대 창립자
8. 미정

‘안희경의 내일의 세계’는 매주 목요일에 실립니다.

케이트 레이워스 Kate Rayworth

21세기의 현실에 맞는 경제학을 만들고자 집중하는 경제학자. 1970년 영국 출생. 사회적인 조건과 환경적인 조건에 있어 현대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영역인 도넛 개념을 창시했다. 세계 여러 도시 및 국가, 풀뿌리 조직에 정책 지원을 하는 ‘도넛경제학행동연구소’(Doughnut Economics Action Lab, DEAL) 공동 설립자이다. 2017년 펴낸 그의 저서 <도넛 경제학>은 20여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유엔 총회에서부터 프란치스코 교황,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 운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케이트 레이워스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철학·경제학을 공부했고 개발경제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옥스퍼드대학교 환경변화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환경 변화와 운영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 아프리카 잔지바르 농촌에서 마을 자립 경제를 만드는 활동을 했으며, 유엔개발계획(UNDP)의 대표 보고서인 ‘인간 개발 보고서’를 공동 작성했다. 이어서 학창 시절부터 꿈꾸던 옥스팜에서 10년간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 모두를 위한 건강 경제학 위원회에 참여한다. 영국 <가디언>지는 “세계 경제에 변화를 일으키는 트위터리안 10인”에 케이트 레이워스를 꼽았다.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 사진 정미숙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 사진 정미숙

문명의 미래를 묻는 사람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2002년 미국으로 이주, 문명사적 성찰과 대안 모색 등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있다. 세계 지성들과 코로나19의 원인과 이후 인류의 미래를 탐색하는 <오늘부터의 세계>, 세계적 마음 전문가들의 인터뷰집 <사피엔스의 마음>, 리베카 솔닛 등 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대화를 엮은 <어크로스 페미니즘>, 재러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 지성 11명과의 대담집 <문명, 그 길을 묻다>, 노엄 촘스키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윌리엄 켄트리지 등을 인터뷰한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이해인의 말>, 에세이 <나의 질문>과 다수의 번역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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