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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독 “나발니, 독극물에 당해” 미·영·프도 러 규탄

등록 2020-09-03 18:24수정 2020-09-04 02:40

소련에서 개발된 노비초크 검출
“독극물 없었다”는 러 주장 반박
서방국들 가세해 “진상 규명 촉구”

러 “마치 미리 연습한 듯 달려들어
대러 제재 정당화하려는 것” 반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일(현지시각) 러시아의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독극물 중독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일(현지시각) 러시아의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독극물 중독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를린/AP 연합뉴스

독일 정부가 2일 “러시아의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신경작용제인 노비초크에 공격당했다”고 발표했다. “독극물이 없었다”는 러시아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결과다. 독일의 발표 이후,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앞다퉈 우려를 표명하고 나서면서, 나발니 독극물 중독 의혹을 둘러싼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 간 외교 갈등이 고조될 조짐이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총리실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어 “독일 연방군 연구소의 검사 결과, 나발니에게 노비초크 계열의 화학 신경작용제가 사용됐다는 의심의 여지 없는 증거가 나왔다”고 밝혔다고 <데페아>(DPA) 통신 등이 보도했다.

노비초크는 2018년 초 영국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 독살 미수 사건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일반인에게도 알려진 신경작용제다. 서방의 무기 전문가들은 냉전 말기 소련에서 개발된 노비초크가 러시아에서만 제조돼온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적으로 꼽히는 나발니는 지난달 20일 러시아 국내선 항공기 기내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나발니 측근들은 독극물에 중독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나발니는 독일의 시민단체가 보낸 항공편을 통해 지난달 22일 베를린에 도착해 샤리테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나발니를 ‘독극물을 사용한 살인미수의 희생자’로 규정하고 “러시아 정부만이 답할 수 있고, 반드시 답해야 할 매우 심각한 질문이 있다”고 강력 규탄했다. 앞서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주독 러시아 대사를 불러들여 사건이 철저하고 투명하게 규명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독일 정부는 이번 검사 결과를 유럽연합 회원국들에도 전달했고, 유럽연합 차원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독일에 가세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도 “러시아에 있는 이들이 책임을 지도록 동맹, 국제사회와 협력하겠다”(존 울리엇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는 입장을 잇따라 발표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등 국제기구 수장들도 “비열하고 비겁한 사건”이라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서방 국가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국제적인 조사 요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이번 사태가 서방 대 러시아의 대결 구도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크렘린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환자(나발니)의 베를린 이송 전 건강검진에선 독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검진 결과를 공유해달라는 러시아의 요청에 독일 병원이 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이날 국영 방송인 <로시야 1> 인터뷰에서 “그들(서방 국가들)은 마치 미리 연습을 한 것처럼 곧바로 마이크를 향해 달려들었다”며,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각종 제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이정애 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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