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옴스크에서 22일 의료 전문가들이 독극물 중독이 의심되는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를 독일 병원으로 보내기 위해 공항으로 옮기고 있다. 옴스크/로이터 연합뉴스
독극물 중독이 의심되는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가 22일 치료를 위해 독일로 옮겨졌다. 나발니의 독일 이송을 반대하던 러시아가 순순히 그를 내준 가운데, 그동안 규명되지 않았던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의 독극물 중독 원인의 실마리가 나올지 주목된다.
나발니는 이날 오전 독일의 비정부기구인 ‘평화를 위한 시네마’가 후원한 비행기를 이용해 입원 중이던 러시아 시베리아 옴스크의 병원에서 독일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으로 옮겨졌다. 지난 20일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져 옴스크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지 이틀 만이다. 그는 당시 비행기 탑승에 앞서 톰스크 공항에서 차를 마셨는데, 측근들은 이 차에 들어 있던 독극물에 나발니가 중독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장기독재를 강력하게 비난해 현 정부의 눈엣가시가 된 나발니가 테러의 표적이 됐다는 것이다.
이번 이송은 나발니의 가족과 지지자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뤄졌다. 옴스크 병원의 의료진은 전날까지 나발니가 이송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건강 상태가 아니라며 이송을 반대하다가 이날 이송을 허락했다. 나발니 측근들은 그가 옴스크 병원에 실려간 날 저녁 의료헬기를 확보했으나 옴스크 의료진의 반대로 이송이 이틀가량 지연됐다고 밝히고 있다.
앞서 러시아 쪽 의료진은 나발니의 체내에서 어떠한 독극물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그의 상태는 저혈당으로 인한 ‘대사이상’의 결과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시베리아 보건당국자들이 나발니의 머리카락과 피부에서 산업용 화학물질이 발견됐다고 밝힌 것과 어긋나는 것이다. 옴스크 지역의 내무부는 <랍시> 통신에 그 화학물질은 일반적으로 탄성을 개선하기 위한 중합체(폴리머)에 포함되는 것이라며, 그 물질이 집적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나발니 쪽에선 이를 두고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발니의 측근인 레오니트 볼코프는 베를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 쪽) 의사들이 더이상 협력을 거부하고, 나발니의 부인에게도 정보를 주기를 거부했다”며 “은폐 공작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2018년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였던 러시아 반체제 그룹 ‘푸시 라이엇’의 활동가 표트르 베르질로프의 전처이자 반체제 활동가인 나데즈다 톨로콘니코바도 “러시아 당국의 공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영국 <비비시>(BBC) 방송 인터뷰에서 나발니의 증세가 전남편의 독극물 중독 때와 비슷하다며 “러시아 의사들이 나발니의 출국을 허용한 것은 독극물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독극물 중독 의심 증세 당시 독일에서 치료를 받았던 베르질로프의 혈액에서 독극물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독일 의사들이 사흘이 지나면 독극물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나발니가 이송된 독일 샤리테 병원의 의료진은 현재 나발니가 왜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가 됐는지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확인하고 있으며, 추후 관련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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