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방문한 테리사 메이(왼쪽) 영국 총리가 20일 베를린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것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듣고 있다. 베를린/AFP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각) 독일을 찾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하이킹 가이드북 2권을 생일 선물로 건넸다. 북잉글랜드 지방 ‘레이크 디스트릭트’와 웨일스 북서부 ‘스노우도니아’ 지방 하이킹을 다룬 책들이었다. 메르켈은 지난 17일이 62번째 생일이었고, 평소 이탈리아 북부 티롤 지방으로 휴가를 가 하이킹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 총리 역시 알프스 산맥에서 하이킹을 하는 것을 좋아해 둘은 취미가 비슷하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메이 총리가 처음 공식적으로 만나는 유럽의 또다른 여걸인 메르켈 총리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
지난달 23일 영국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이 난 이후 총리에 오른 메이는 취임 뒤 첫 방문국으로 유럽연합을 이끄는 독일을 골랐다. 유럽의 운명이 두 여성에 달렸기 때문에, 이번 방문은 큰 관심을 모았다. 독일 언론은 메이를 “영국의 메르켈”이라고 묘사하며 관심을 보였다. 메이는 마거릿 대처 이후 첫 여성 영국 총리이며, 메르켈은 독일의 첫 여성 총리다. 메이는 영국성공회 목사의 딸이며 메르켈도 개신교 목사의 딸이고, 둘 모두 자녀가 없는 등 둘은 공통점이 많다. 문제 해결을 위해 실용적인 접근 방법을 강조한다는 점도 닮았다. 다만, 메르켈이 수수한 옷차림을 선호한다면 메이는 화려한 옷을 좋아한다. 20일 만남에서도 메르켈은 바지 정장 차림이었고 메이는 호피 무늬 힐에 남색 정장을 입었다는 게 언론에 조명되기도 했다. 영국 언론들은“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지도자 둘이 만났다”고 표현했다.
메이와 메르켈의 첫 공동 기자회견은 다소 긴장된 분위기로 시작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첫 인상을 묻는 질문에 메이가 웃으며 “우리는 영국과 독일 국민들에게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전달하기를 원하는 두 여성”이라고 말하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도했다. 메르켈도 웃는 모습으로 메이를 바라보며 독일어로 “게나우”(정확하다)라고 화답했다.
메이는 이날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기 위한 공식 절차인 리스본 조약 50조를 올해 안에는 발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재차 밝혔다. 메이는 “우리는 우리의 목표가 분명해질 때까지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메르켈은 “국민투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영국 정부가 영국의 이해를 확실히 하고 영국의 다른 지방과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은 완전히 이해할만하다”고 ‘선임 총리’로서 메이가 처한 상황을 십분 이해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영국이 올해 안에 유럽연합 탈퇴 통보를 하지 않는 것을 양해한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메르켈이 메이에게 숨 쉴 공간을 줬다”고 했다.
하지만 메르켈은 “영국이 너무 시간을 끄는 데는 반대한다”고 밝히며 선을 그었다. 그는 “아무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가) 공중에 뜨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영국이나 유럽연합 다른 회원국들도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했다. 메이는 영국이 유럽연합 시민들의 이동의 자유를 통제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지만, 메르켈은 영국이 이동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영국은 유럽연합(EU) 단일시장에는 접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둘의 만남이 겉으론 화기애애 했지만, 이견은 여전했고, 메르켈은 앞으로도 양보하진 않을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독일 사회당 의원이며 독일-영국 의원 교류 모임 회원인 엔 짐머만은 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 “초조한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며 “독일인들은 ‘우리가 왜 기다려야 하고 영국은 브렉시트 협상에 왜 그렇게 느긋해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 일정 정도는 (유럽연합과) 합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파이낸셜 타임스>에 말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