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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 양도초등학교 5년 만에 폐교 위기 벗어나

등록 2016-09-22 17:06수정 2016-09-22 21:32

오늘 르포
“바다처럼 넓고, 하늘처럼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파릇파릇한 초등학생들한테 바다는 넓고 하늘은 파랬다.

22일 오전 인천시 강화군 석모도 나들길. 배를 타고 섬으로 건너온 강화도 양도초등학교 학생들은 유난히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를 보며 걷고 또 걸었다. 이날 학교 체험학습으로 마련된 ‘도보백리’ 행사에는 이 학교 전교생 74명 중 부모와 국외여행을 떠난 2명을 제외한 72명과 교사 9명이 모두 참석했다.

학생과 교사들은 이날 오전 8시40분 학교에서 출발해 배로 건넌 석모도 강화나들길을 따라 보문사 눈썹바위까지 걸어 올라갔다. 학생들은 힘들어하면서도 즐거워했다. 선배 손을 잡고 걸으며 계단을 오른 학생들의 이마엔 땀방울이 계속 흘러내렸다. 그런 새싹들의 입에선 “힘들지만 좋아요”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 학교는 강화도 유적지와 둘레길을 2박3일 동안 걷는 ‘도보백리' 행사를 2013년부터 매년 해왔다. 1~6학년생을 고루 섞어 조를 짜 함께 걷는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1박을 한 뒤 23일 강화군 창후리에서 황청리까지 걸어 교회에서 점심을 먹은 뒤 학교까지 다시 걸을 계획이다. 이 학교의 이석인 교장은 “내일까지 학생들이 20㎞ 정도 걷게 될 것 같다”며 “힘들겠지만, 멀리 가려면 친구와 함께 가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 역경을 이겨내고 친구랑 선후배들과 우애도 생기고, 인성 차원에서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108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학교는 얼마 전 자칫 사라질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1908년 설립된 양도초는 독립운동가 이동휘 선생이 초대교장을 지낸 학교다. 한때 학생수 700명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골학교였다. 그러나 농촌 인구가 줄면서 다른 시골학교와 마찬가지로 학생수가 계속 줄어 폐교 위기까지 몰렸다. 2011년 전교생이 23명까지 줄면서 교육부의 초등학교 존립 기준인 60명 아래까지 떨어진 것이다. 여차하면 2~3년 뒤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었다.

2010년 9월 공모를 거쳐 부임한 이석인 교장은 시골학교가 가진 잠재력에 주목하고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아이들이 학교를 둘러싼 자연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진정한 행복과 가치를 찾아가는 ‘기본에 충실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일반 교과 과정 외에 ‘자연학교'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 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도시의 다른 학교 학생들도 계절마다 1주일간 시골학교에 머물며 자연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강화도에 있는 유적을 들르는 한편 전통재래시장도 구경하고, 2박3일간 자연을 걷는 도보백리를 기획했다. 아이들은 망둥이 낚시, 모내기, 순무김치 담그기, 곶감 만들기, 숲에서 놀기, 나들길 걷기 등 계절마다 달라지는 자연 체험에 푹 빠졌다.

그러자 소문을 들은 인근 도시에서 이 학교로의 전학이 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문제풀이와 교재 위주의 공부에 찌들었던 아이들의 표정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학생들간의 성적 경쟁도 덩달아 약화됐다. 달라진 자녀의 모습을 접한 도시 부모들은 계절마다 열리는 자연학교에 꼬박꼬박 신청하다 아예 전학을 결심했다. 서울은 물론 인천, 경기 지역 도시 학생이 꾸준히 전학하면서 23명에 불과하던 이 학교의 학생수는 2013년 42명, 2015년 67명, 현재 74명으로 계속 늘었다. 교육부 폐교 기준을 가볍게 넘어섰다.

2014년 8월 임기를 마치고 인천시내 학교로 간 이 교장은 “서울과 인천에서 나를 믿고 애들을 보냈는데 혼자 떠나 부담스럽다”며 올해 2학기에 다시 이 학교로 돌아왔다. 그는 “아이들이 사랑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며 “그것을 위해 아이들 본성에 맞고 발달 단계에 맞는 교육을 하겠다. 시험과 경쟁보다는 아이들이 감성적으로 익히고 충분한 놀이가 보장된 적기에 맞는 교육을 하겠다”고 말했다.

2013년 5월 서울 노원구에 살다 이 학교 계절 체험학교에 참여한 뒤 아예 두 자녀를 이 학교로 전학시킨 학부모 김문경(37)씨는 “체험학교에 참여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그해 7월 마니산 중턱에 집을 마련하고 강화도로 이사왔다”고 말했다. 그는 “강화도에 와보니 애들도 좋아하고 어머니들의 자기 개발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 생활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며 “애들이 학교를 졸업해도 이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땅을 사 집을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도초의 성공은 주변의 다른 학교들에도 ‘따뜻한 감염’을 일으켰다. 양도초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도입한 강화군 송해초는 42명이던 학생이 1년 만에 52명으로 늘었고, 양사초도 1년이 안 돼 검단신도시에서 2명이 전학을 왔고, 5명이 전학을 준비 중이다. 이들 두 학교는 올해도 26일부터 외부 위탁체험 과정에 참여할 학습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양사초 이명학 교무부장은 “2013년부터 재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한 자연학교를 올봄에 처음으로 외부에 개방했을 때는 10명이 왔는데, 여름 자연학교에는 38명이 신청했다”며 “평생 경쟁만 강요받아온 부모 세대가 자녀의 진정한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결단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인천/김영환 기자 yw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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