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니스에서 트럭 테러로 최소 84명이 숨진 다음날인 15일(현지시각) 아들을 찾는 한 여성이 사건 현장 근처를 걸어가며 울고 있다. 니스/AP 연합뉴스
자유·평등·박애의 날에 프랑스가 공격을 받았다.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인 14일(현지시각) 남부 휴양도시 니스를 덮친 트럭 테러는 프랑스 사회에 또 한번 깊은 균열을 냈다. 지난해 1월 시사주간 <샤를리 에브도> 총기 난사와 11월 파리 연쇄 테러에 이어 니스 참사까지, 프랑스가 최근 잇따른 테러 공격에 몸살을 앓고 있다. 모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이란 공통점이 있다.
유럽에서도 왜 유난히 프랑스가 테러의 집중 표적이 되는 걸까? 프랑스의 식민통치 역사, 무슬림 인구의 증가와 사회적 소외 현상, 자유분방한 세속주의, 대외 안보정책, 극우세력의 득세와 반이민 정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프랑스는 1830년 알제리 점령으로 북아프리카 이슬람 국가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유럽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중동과 아프리카에 깊숙이 개입해왔다. 1차 세계대전 뒤에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손에 넣었고, 2차 세계대전 뒤엔 북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프랑스인 정착촌이 건설됐다. 전후에는 ‘영광의 30년’으로 불리는 경제 호황기를 맞아 과거 식민지에서 이주노동자 수십만명이 프랑스로 건너왔다.
20세기 후반 들어 급속한 산업화는 끝났지만 무슬림 이주자 대부분은 프랑스에 남았고, 이주자 2~3세가 늘면서 거대한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했다. 현재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는 전체 인구의 7.5%인 6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프랑스 시민’과 ‘무슬림’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무슬림계 주민, 특히 젊은이들이 사회적으로 배제되거나 차별받고 있다는 정서가 크면 클수록 무슬림이란 정체성에 더 기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유럽연합 국가들에선 회원국 시민이 ‘이동의 자유’를 누린다. 이런 사정은 이슬람극단주의 세력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프랑스에서 손쉽게 지하디스트를 충원하고 테러를 저지를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다.
프랑스는 식민통치 시대가 끝난 뒤에도 ‘국익’을 앞세우며 과거 식민지 국가들에서 선뜻 발을 빼지 않았다. 알제리는 1954년부터 8년간이나 독립전쟁을 벌여 70만명이 희생되고 나서야 1962년에 독립할 수 있었다. 앞서 나치 독일이 항복한 1945년 5월에는 프랑스군이 알제리에서 자치를 요구하던 시위자들에게 발포해 수만명을 죽인 ‘세티프 학살’이 벌어졌다. 또 1961년엔 파리에서 비무장 시위를 벌이던 알제리계 시민들을 경찰이 유혈진압해 최소 200명을 학살하고 일부 주검들을 센강에 던져버렸다. 프랑스 정부는 40년이 지난 2001년에야 이 학살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시했다. 알제리, 나아가 과거 프랑스 식민지 국가들이 자신들은 결코 ‘위대한 프랑스’의 일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절감한 뒤였다.
프랑스는 지금도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참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모리타니·말리·니제르·부르키나파소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 1만여명의 병력과 전투기 수십대, 전차 200여대를 주둔시키고 있다고 <프랑스24> 방송이 14일 보도했다.
전통적 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가 완전한 세속주의 국가로 탈바꿈한 것도 극단적 이슬람주의와 부딪친다. 지난해 ‘샤를리 에브도 테러’ 직후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19세기까지만도 교회의 사립학교가 사실상 독점했던 교육이 20세기 들어 자유주의와 세속주의 중심의 공교육 체계로 재편됐으며, 2차 대전 이후에는 교육 현장이 종교와 세속주의 대결의 축소판이 됐고, 오늘날에는 종교가 풍자의 대상이 됐다”고 썼다. 실제로 이슬람국가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직후 낸 성명에서 “프랑스는 매음과 악의 소굴”이라며 “프랑스뿐 아니라 그와 같은 길을 걷는 모든 나라는 우리의 최우선 공격 목표”라고 경고했다.
프랑스에서 무슬림 인구가 급증하고 테러 위협이 커지면서, 반이민 정서가 확산되고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악순환을 낳고 있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창립자인 아버지 장마리 르펜보다는 온건한 편임에도 지난해 샤를리 에브도 테러 직후 프랑스의 다문화주의를 겨냥해 “위선은 끝났다”며 노골적인 반이슬람 노선을 분명히 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혈통과 종교를 둘러싼 갈등은 골이 깊다. 미국 작가이자 <뉴요커> 기자인 조지 패커는 지난해 8월 ‘또 하나의 프랑스’라는 기고에서 “프랑스에서 이주자 후손들은 백인 시민들을 ‘뿌리부터 프랑스인’으로 지칭하는데, 이는 피부색이 짙은 시민들은 완전한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걸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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