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본과 1%의 탐욕에 저항하는 전세계 동시다발 시위가 벌어진 15일 저녁,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과중한 대학등록금과 청년실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불공정성 등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5일 벌어진 전세계 ‘보통사람들의 동시시위’는 2008년 이후 각국이 벌여온 위기 해결이 근본적 한계에 봉착했음을 선언하고 있다. 3개국 ‘99%’ 사람들의 사연과 양극화가 깊어지고 위기가 상시화된 세계경제의 구조적 문제, 그리고 ‘1%’만을 위한 시스템을 바꾸려는 실험 등을 3차례에 걸쳐 전한다.
“자본에 손과 발 묶였던 20대
우리가 새 민주주의 설계할 것” “청년층 일자리 사라진다” 분노
텐트들고 ‘분노한 사람들’ 동참 벨기에 브뤼셀의 인세스대 연극학과에 다니는 클레망 롱거빌(22)은 15일(현지시각) 군중 사이를 바삐 오가며 ‘분노한 사람들’의 시위를 주도했다. 고함을 질러대며 다국적 참가자들을 이끈 그는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에 대해 “우리 세대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위에는 롱거빌처럼 청년실업의 그늘 아래 놓인 20대들이 대거 참여했다. 롱거빌은 “유럽의 젊은 세대는 베를린장벽 붕괴(1989년)를 전후해 태어났다”며 “장벽 붕괴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가 완전히 승리했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게 틀린 말이 됐다”고 말했다. 유토피아는 펼쳐지지 않았고, 극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반면에 많은 사람들이 실업의 고통에 시달리는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그는 “스페인이나 그리스가 가장 심각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유럽 지역에서 청년층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는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며 자신들을 “손과 발이 묶인 세대”로도 표현했다.
롱거빌은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하며 변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한댔지만 지금 약자들은 벌레처럼 짓밟히고 있다”며 “현 체제는 경제뿐 아니라 환경이나 문화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문제들을 타파하는 것은 기존 정치체제로는 불가능하며 ‘분노한 사람들’이 주창하는 직접민주주의가 “21세기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사람들끼리 친밀하고 정직한 대화를 나누는 게 정치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주장이다.
지난 6월 ‘분노한 사람들’의 취지를 접하고 집에서 텐트를 들고나와 이 운동에 합류했다는 그는 학교에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고 동참을 호소해왔다고 말했다.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번 집회를 준비했다고 한다.
롱거빌은 이번 시위에 참여하려고 다양한 나라에서 브뤼셀로 모여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고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매끄럽지 못했고 혼란스러운 면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한데 모여 시대적 문제를 함께 고민한 것은 자신에게도 값진 경험이었다고 했다. 롱거빌은 “한국에서도 집회가 열렸냐”고 물으면서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같은 가치를 내세우며 행동에 나선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브뤼셀/글·사진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잘못된 사회시스템 안고치고
왜 ‘청춘’이 아파해야 하나요?” 학자금 이자·비정규직 고통
“대책 내라” 대한문 앞 나서
“청춘이 왜 아파야 하죠? 하고 싶지 않은 고생을 왜 사서 해야 하나요?”
지난 15일 오후 6시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1%에 맞서는 99% 분노, 1015 국제 공동행동의 날’ 집회에 참가한 송화선(31)씨는 같은 날 전세계 곳곳의 거리에 선 젊은이들처럼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송씨는 “비싼 등록금, 청년실업 등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삶의 문제는 사회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인데,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며 “‘낙오자’를 타박하는 사회 분위기가 싫어 나왔다”고 말했다.
송씨는 한 달 전 한 노동조합의 상근 간부로 취직하기까지 대학 졸업 뒤 꼬박 3년 동안 비정규직을 전전했다. 지방대에 다니다 2003년 서울의 한 사립대에 편입할 때까지만 해도 좀 더 나은 직장에 들어가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할 수 없이 받았던 1600여만원의 학자금 대출이 6년 동안 송씨의 발목을 붙들었다.
연 7%의 이자와 원금을 갚느라 재학중에도 매일 과외를 했고, 한 쇼핑몰에서 상자 접는 일도 했다. 이 와중에도 송씨는 토익 950점에 자격증도 3개나 땄지만, 정규직 일자리는 머나먼 희망일 뿐이었다.
결국 2007년 졸업 뒤 학자금 대출을 갚으려고 영화제 사무국에 사무보조로 취업했다. 잦은 야근에도 월급은 100만원에 불과했고, 4대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1년 넘게 일을 했지만 사무국장이 바뀌자 해고됐고,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한 달에 50만원씩 갚아야 하는 학자금 대출 상환이 석달치나 밀리는 바람에 친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송씨는 이어 한 방송사의 사무보조로 월 100여만원을 받으며 1년 정도 일했지만 소속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또 해고됐다. 다행히 실업급여를 한 달에 83만원씩 받을 수 있었지만, 그는 “이 사회가 내 노동력을 실업급여 수준으로밖에 인정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송씨는 ‘1%에게 세금을, 99%에게 복지를’이라는 팻말을 들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만 하지 말고, 청년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반값 등록금과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4대보험 감면 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모든 청년들이 거리로 함께 나와,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사진 최우리 박태우 기자 ecowoori@hani.co.kr
“해고 뒤 가치없는 사람처럼 돼
열심히 일했는데 뭔가 잘못됐다” 턱없는 실업수당에 가족과 절망
‘점령 시위’ 소식듣고 뉴욕 합류
1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리버티 플라자 공원(주코티 공원)에서 만난 에릭 코베이(59)는 “2년 전만 해도 내가 이리될 줄 꿈에도 몰랐다”고 자조했다.
고급 가구 컴퓨터설계(오토캐드) 디자이너였던 그는 연봉 10만달러(1억1560만원)를 받았다. 그런데 2007년 11월 아내가 암으로 숨졌다. 불행은 겹쳐 오는지, 그 무렵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며 일감이 급격히 줄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직격탄이었다. 고급 맞춤가구 수요가 사라지자 2009년 1월 회사는 직원 30%를 해고했다. 그도 35년을 일했던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는 보스턴을 떠나 생활비가 적게 드는 지방도시인 노스햄프턴으로 이사했다. 정들었던 집을 32만달러에 팔고, 방 2개짜리 800스퀘어(22평)짜리 집에 딸(18)과 둘이 세들어 산다.
재취업을 위해 애썼지만, “뉴잉글랜드(미국 동북부 지방)에서 날 찾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주당 625달러(월 2800달러)의 실업수당을 받는다. 이 가운데 월세로 1200달러가 들어간다. 부족한 생활비는 집 판 돈에서 까먹는다. 그러면서 프리랜서로 가끔 일한다. 일하는 기간에는 실업수당이 안 나온다. 프리랜서 급여는 대개 실업수당보다 더 적다. 그래도 일이 생기면 마다하지 않는다. 실업수당은 99주까지만 나오기 때문이다. “70주가 넘었다. 5개월 정도 남았다. 그 이후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며 그는 씁쓸히 웃었다. 12학년(고등학교 3학년)인 딸은 내년에 대학에 간다. 장학금 혜택을 못 받으면 학기당 2만5000달러가 들어간다.
‘다행히’ 의료보험은 저소득층 대상 메디케이드(공공의료) 혜택을 받는다. 그는 “메디케이드 대상자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해고 전, 그는 월 1200달러의 값비싼 민간 의료보험을 들고 있었다. 그는 “나 스스로 가치 없는 인간이란 생각이 많이 들고, 때론 막연히 화가 치민다. 평생 열심히 일했는데, 이게 뭔가? 뭔가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월가 점령’ 시위 소식을 듣고 노스햄프턴에서 이 운동에 가담했다. 이날은 자동차로 4시간을 달려 동료 5명과 함께 뉴욕 시위에 참가했다.
뉴욕/글·사진 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우리가 새 민주주의 설계할 것” “청년층 일자리 사라진다” 분노
텐트들고 ‘분노한 사람들’ 동참 벨기에 브뤼셀의 인세스대 연극학과에 다니는 클레망 롱거빌(22)은 15일(현지시각) 군중 사이를 바삐 오가며 ‘분노한 사람들’의 시위를 주도했다. 고함을 질러대며 다국적 참가자들을 이끈 그는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에 대해 “우리 세대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위에는 롱거빌처럼 청년실업의 그늘 아래 놓인 20대들이 대거 참여했다. 롱거빌은 “유럽의 젊은 세대는 베를린장벽 붕괴(1989년)를 전후해 태어났다”며 “장벽 붕괴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가 완전히 승리했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게 틀린 말이 됐다”고 말했다. 유토피아는 펼쳐지지 않았고, 극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반면에 많은 사람들이 실업의 고통에 시달리는 시대가 왔다는 얘기다. 그는 “스페인이나 그리스가 가장 심각하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유럽 지역에서 청년층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는 갈수록 찾아보기 어렵다”며 자신들을 “손과 발이 묶인 세대”로도 표현했다.
22살 벨기에인 클레망 롱거빌
“잘못된 사회시스템 안고치고
왜 ‘청춘’이 아파해야 하나요?” 학자금 이자·비정규직 고통
“대책 내라” 대한문 앞 나서
31살 한국인 송화선씨
“해고 뒤 가치없는 사람처럼 돼
열심히 일했는데 뭔가 잘못됐다” 턱없는 실업수당에 가족과 절망
‘점령 시위’ 소식듣고 뉴욕 합류
59살 미국인 에릭 코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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