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6 전투기가 경기 평택 오산기지 활주로를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과 네덜란드가 우크라이나에 F-16 전투기를 지원하기 위한 협력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서방이 그동안 확전을 우려해 공급을 꺼리던 F-16 전투기가 실제 지원되는 전기가 될지 주목된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16일(현지시각) 만나 “블라디미르 푸틴의 침략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의 전황이 전환점을 맞고 있는 시기에 국제사회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논의했다”며 “우크라이나에 공중전 능력을 제공할 국제 협력을 구축하기로 합의했으며 여기에는 F-16 전투기의 제공과 교육 훈련 지원을 포함한다”고 영국 정부가 밝혔다.
이날 정상회담은 두 정상이 ‘유럽평의회’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수낵 총리는 이 자리에서 또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적법한 자리가 있다는 믿음”을 거듭 밝혔고, 두 정상은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장기적인 안보 지원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영국 정부가 전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그동안 미그-29나 수호이(Su)-27 등 러시아제 전투기로 러시아에 대항해 왔지만, 낡은 항공기인 데다 부품 공급도 끊겨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과 유럽에 더 성능이 앞선 F-16 전투기의 지원을 호소해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5일 영국을 방문해 수낵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하늘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전투기 지원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으며 매우 가까운 시간에 매우 중요한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위해 좀 더 노력해야만 한다”며 F-16 전투기 지원을 얻기 위해 미국과 유럽 나라들의 설득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번 영국과 네덜란드의 ‘F-16 지원을 위한 국제협력’ 합의는 이런 우크라이나의 호소에 대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전투기 지원이 이뤄지면, 전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실제 지원이 이뤄질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 영국은 F-16을 운용하고 있지 않아 지원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네덜란드는 F-16 24대를 운용하고 있지만, 전투기를 외국에 넘기려면 F-16 제작국인 미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F-16은 미국의 군수업체 제너럴다이내믹스(현 록히드마틴)가 제작한 전천후 전투기로, 1976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4600대가 넘게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항공기다.
열쇠를 쥔 미국은 “전투기를 지원하면 우크라이나가 국경 넘어 러시아 영토를 직접 공격해 확전의 우려가 있다”며 F-16 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월 ‘우크라이나에 F-16을 지원할 것이냐’는 언론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도 15일 전투기 지원과 관련해 미국의 입장에 변화가 있느냐는 언론 질문에 ”없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이 이런 기조에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미국 언론들은 지난 3월 우크라이나 공군 조종사들이 F-16 전투기 운용 관련 평가를 받기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다고 잇따라 보도했다. <시엔엔>은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이 F-16 등 미국 전투기의 조종 기술을 익히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비행 시뮬레이터 훈련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공식 입장과는 별도로, 내부적으로 F-16 지원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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