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70여분 동안 진행된 항일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과 열병식은 중국의 ‘군사 굴기(우뚝 일어섬)’와 함께 국제사회의 명실상부한 지도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중국의 열망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리커창 총리의 개시 선언에 이어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설과 무개차 사열로 시작된 열병식은 거대한 규모와 최첨단 무기 공개로 시종 분위기를 압도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의 공중 촬영 화면은 1만2000여 병력과 탱크, 미사일 등 500여기의 무기를 과시하며 중국군의 위용을 세계에 알렸다. 사거리가 1만㎞에 이르고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어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계(MD)를 무력화할 수 있는 둥펑-31A와 ‘항공모함 킬러’라고 알려진 둥펑-21D, ‘괌(미국령) 킬러’로 알려진 둥펑-26을 처음 공개한 것은 상대가 미국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진핑 주석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오른 49개국 대표단은 첨단화한 중국군의 위력을 지켜봤다.
한 중국 전문가는 “열병식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마디로 미국과 일본 등에 ‘당신네 영토까지 이르는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니 중국의 핵심이익에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일본·필리핀 등 동맹국과 연합해 중국 봉쇄를 목표로 추진하는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경고를 보냈다는 것이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취임 직후부터 대미 관계의 기준으로 제시한 ‘신형대국관계’의 연장선에 있다. 마티외 뒤샤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연구원은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중국이 열병식을 통해 무기산업의 발전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도 “중국이 행사 이름은 항일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돌 기념행사라고 붙이고는 실제로는 미국, 일본, 아시아 각국에 자국의 신무기를 자랑하는 열병식을 핵심에 배치했다”고 전했다.
동시에 중국은 현 국제사회 질서를 만드는 데 미국 못지않은 공헌을 했다는 점을 부각해 명실상부한 책임있는 대국의 위상을 재정립하려는 열망도 표출했다. 시 주석은 10여분 동안의 기념사에서 일본이나 특정 국가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는 대신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이 반파시스트 전쟁에서 미국, 영국 등 서방국가 못지않은 희생과 공로를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인민은 거대한 희생을 통해 세계 반파시스트 전장의 동방 전장을 지탱했고, 승리에 중대한 공헌을 했다”며 “이 전쟁 동안 세계에서 1억명 이상이 숨졌고, 이 가운데 중국의 희생자는 3500만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전장을 유럽 전장과 함께 2차 대전의 양대 전장으로 평가하며 절반의 전쟁을 중국이 수행했다고 강조한 것이다. 중국 관영 언론들은 “중국이 2차 대전 당시 세계에 이바지한 공로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백미는 중국군 병력 감축 발표였다. 시 주석은 “중국군 병력을 30만명 줄이겠다”는 깜짝 선언을 통해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세력이 아님을 부각하려 했다. 안보법제 개편을 통해 군사적 팽창을 하려는 일본과 대비되는 모습을 연출한 행보였다.
국내적으로 시 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열병식을 통해 아편전쟁 이래 중국의 숙원인 부국과 강병의 꿈이 멀지 않았음을 한껏 부각하려 했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 행사를 <중국중앙텔레비전> 등 주요 매체를 통해 생중계했다. 열병식은 85만명을 자원봉사자로 참여시키고 베이징 중심부를 전면 통제하는 국가 동원 행사로 치렀다. 각급 학교에는 열병식을 지켜본 소감과 ‘중국의 꿈’을 개학 뒤 첫 수업 주제로 삼으라는 중앙선전부의 지시가 하달됐다. 시 주석은 최근의 경기 불황과 톈진항 화학물류창고 사고, 양쯔강 여객선 침몰 사고 등으로 어수선한 여론을 고려한 듯 “마지막 고개를 넘기가 가장 힘들다는 말처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려면 많은 세대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중화민족은 5000여년 역사의 찬란한 내일을 반드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가 이번 열병식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뉴욕 타임스>는 “열병식이 중국의 국가·민족주의 발호를 우려하는 아시아 각국의 경계심을 더욱 높일 수 있다”며 “시 주석이 이를 간과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아시아 10개국 1만5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71%로, 중국에 대한 호감도(57%)보다 높았다. 첨단무기를 총동원한 중국의 ‘힘자랑’은 위협적 이미지를 더욱 키웠을 수 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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