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성루 위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선글라스를 쓴 채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앞줄 가운데)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앞줄 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베이징 천안문(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항일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병력 30만명을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시 주석의 병력 감축 발표는 예고 없는 깜짝 선언이었다.
그는 10여분 동안 한 열병식 기념사 말미에 “중국은 평화 발전의 길을 갈 것이며 영원히 패권주의나 확장을 추구하지 않겠다. 중국은 우리가 겪은 전쟁의 비극을 다른 민족에게 강요하지 않겠다”라며 30만 병력 감축을 선언했다. 선언이 발표되자 천안문 광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와 청중들은 박수로 환영했다. 중국군은 현재 230만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데 향후 200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시 주석의 병력 감축 선언은 중국의 첨단 군사력을 과시한 열병식에 대한 미국과 일본, 아시아 이웃국가들의 비판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미국, 일본 등은 “열병식이 중국의 군사적 근육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무력시위의 장이 될 것”이라는 의구심을 제기해왔다. 미국은 자국에서 따로 대표단을 보내는 대신 맥스 보커스 주중 대사의 참석으로 갈음했고, 중국과 동·남중국해에서 영유권 갈등을 벌이고 있는 일본과 필리핀은 아예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유럽연합(EU) 역시 체코를 빼고는 28개 회원국 가운데 어떤 나라도 국가정상이 중국의 열병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한스 디트마르 슈바이스굿 유럽연합 주중국대표부 대표도 “열병식이 포함된 전승기념 행사가 과연 화해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인지 회원국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열병식 당일 전격적으로 병력 감축 카드를 꺼냄으로써 서방의 논리를 무색하게 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부적으로도 병력 감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중국은 1989년 이후 2010년(7.5%)를 빼고는 해마다 10% 넘게 국방예산을 늘려왔다. 올해 8869억위안에 이르는 국방예산은 지난해에 견줘 10.1%가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2012년부터 경제성장률이 7%대에 머무는 중·고속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올해 성장률 역시 7% 정도로 예상된다. 시 주석은 집권 뒤 ‘신창타이’(新常態·경제 구조조정 속에 중·고속 성장 추진)이라는 경제 속도조절 정책을 펴고 있다. 더구나 6월 중순 이후 증시 파동과 잇따른 제조업 경기 위축 신호 탓에 성장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병력 감축을 통한 국방예산 감축은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국이 경기 침체 탓에 국방비에 관해 재고하게 될 것이다. 버터냐 총이냐는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게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병력 감축은 또 이르면 이달 안으로 발표될 군구 개편과도 맞물린 결과물이기도 하다. 중국군은 현행 지역별로 편성된 7대 군구 체계를 통합해 4개 총부로 개편하는 국방개혁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군은 그동안 장비 현대화와 정보화를 추진하면서 꾸준히 군사력 규모, 편성 최적화를 추진해 왔다. 중국 국방부는 이날 “주요 감축 대상은 구식장비 부대로 2017년 말께까지 감축이 완료 될 것 ”이라고 밝혔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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