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호가 개조된 랴오닝성 다롄 조선소에 크레인들이 늘어서 있다. 다롄/성연철 특파원
[광복·분단 70년 - 다시 쓰는 징비]
④중 항공모함 요람 다롄항을 가다
④중 항공모함 요람 다롄항을 가다
‘강군보국’(强軍報國: 강한 군대로 국가에 보답한다)
지난달 13일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시강구에 위치한 다롄 조선소 정문. 선명한 붉은색 네 글자는 이곳이 중국 항공모함의 요람임을 단번에 실감케 했다. 높이가 수십미터는 족히 넘을 중형, 대형 크레인 수십대가 즐비한 이곳은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호가 개조된 조선소다. 우크라이나의 6만5000t급 항모였던 바랴크호는 여기서 개조돼 2012년 9월 중국 랴오닝호로 거듭났다. 한 다롄 시민은 “랴오닝호가 종종 정비를 하려고 이곳 항구에 머문다. 차로 바닷가 쪽 고가도로를 달릴 때면 어마어마한 크기 때문에 한눈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개조 랴오닝호 넘어 ‘우리 기술로’
“시진핑 집권기 항모 4대 보유할 것”
군사·경제적 영향력 확대 잰걸음 다롄항이 중국 해양굴기(해양에서 우뚝 일어서다·해군력 강화)의 산실로 일컬어지는 것은 랴오닝호뿐 아니라 제2, 제4의 항공모함이 이곳에서 건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롄 사정에 밝은 한 중국 전문가는 “현재 중국 자체 기술로 2~4호의 항모가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며 “이 가운데 2호와 4호 항공모함은 다롄 조선소에서 건조되고 있다. 항모의 몸체는 조선소 곳곳에서 나눠 만들고, 내부에 장착할 무기 체계와 부품들은 외부의 군수공장에서 제작해 마지막에 합체 작업을 한다. 현재 바깥에서 볼 때 눈에 띄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2호 항공모함은 가스터빈식 엔진을 장착한 4만~5만t급의 중대형, 4호는 이보다 규모가 큰 원자력발전식 엔진을 탑재한 핵항모로 추정된다. 3호는 8만t급으로 상하이의 조선소에서 건조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시진핑 주석 집권기인 2018년에서 2019년께면 중국이 최소 4대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다롄 시민은 “랴오닝호는 순전히 외국 항모를 사들여 개조한 것이기 때문에 항구에서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우리 기술로 만든 항모가 등장한다면 자부심을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해양굴기’ 중국, 미국이 막을 때까지 바다 진출 밀어붙여 다롄은 ‘뒤떨어지면 당한다’는 교훈을 역사에서 체감한 땅이다. 1898년 제정러시아의 조차지가 됐고, 1905년 러일전쟁 뒤에는 일본의 조차지로 바뀌어 50년 넘게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지금은 다롄시의 한 구로 편입된 뤼순은 남의 나라 군대가 중국 땅에서 벌인 전쟁의 주무대였다. 청나라 북양함대의 근거지였던 뤼순항은 제국주의 열강의 약탈 과정에서 러시아 함대의 주력항이 됐고, 러일전쟁 당시 이곳에서 러시아 함대는 일본군의 포격을 받고 궤멸됐다. 이젠 중국 북해함대의 기지인 뤼순항이 내려다보이는 203고지에는 지금도 러시아와 일본의 장거리 대포가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역사를 증언한다. 203고지 유적지엔 ‘국치를 잊지 말자’(勿忘國恥)는 중국어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국방예산 한해 빼곤 10% 넘게 증액
지난 5월 펴낸 국방백서에
“해양 이익 고도로 중시” 밝혀 2013년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
베트남 인근 해역 원유 시추하고
남중국해선 7~8개 인공섬 쌓는 등
해양 영향력 확대전략 가속 지난달 한국 서해서 100척 실탄훈련
다음달엔 동해서 중·러 합동훈련
천안문 열병식서 최신 무기 선보일듯 이런 ‘수모의 땅’ 다롄이 강군몽(강한 군대의 꿈)을 주창하는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뒤 ‘해양굴기’의 요람으로 거듭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은 시 주석 집권 뒤 도광양회(韜光養晦·몸을 낮춰 힘을 기른다)라는 기존의 웅크린 외교전략 대신 적극적인 영향력 확대 전략을 펴고 있다. 미국에 상호 핵심이익을 존중하라는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운 뒤 아시아권에서 주변국과의 충돌도 불사하며 군사적 ‘근육’을 과시한다. 중국은 2013년 11월 동중국해에 돌연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며 해양 영향력 확대의 신호탄을 쐈다. 이어 지난해 5월엔 베트남 인근 남중국해 파라셀군도 부근 해역에서 원유 시추를 강행했다. 최근 1년 사이에는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과의 영토분쟁을 무릅쓰고 남중국해 7~8개 섬에 인공섬 건설을 추진했다. 중국은 7월 동중국해 해상에서 일본의 반발을 뒤로한 채 가스전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동·남중국해에서 야금야금 영향력을 넓히는 중국의 공격적인 움직임에 미국은 “중국이 바다에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며 강한 비판을 가했지만 현상은 바뀌지 않았다. 중국 전문가는 “일단 중국은 미국이 어디까지 용인하는지, 미는 데까지 밀어보자는 전략을 써왔고 현재까지는 이 전략이 먹히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군의 영향력 과시 무대는 남·동중국해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화통신>은 “7월2일 중국군이 황해(한국의 서해)에서 100척에 가까운 함정과 전투기 등을 동원해 실탄훈련을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군은 9월엔 밀월관계인 러시아와 함께 동해에서도 합동 군사훈련을 벌일 예정이다. 중국의 해양대국화는 5월 중국군이 발표한 국방백서에도 명확히 나타나 있다. 처음으로 군사전략을 외부에 공표한 이 백서에서 중국은 “바다는 중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이제부터는 육군을 중시하고 해군을 홀대해온 기존 관념을 버리고 해양 이익을 고도로 중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소비국으로서 생명선인 원유 수송로를 확보하고 시 주석의 최대 국정과제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를 연결하는 중국 중심의 경제벨트) 구상을 실현하는 데 해양 이익 수호가 필수적이라고 여긴다.
중국은 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정부 업무보고에서 8869억위안(155조원)의 국방예산을 편성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10.1% 늘어난 것이다. 중국의 국방예산은 1989년 이후 2010년(7.5%)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10% 넘게 증액되고 있다. 중국의 군사력 과시는 오는 9월3일 천안문광장에서 거행되는 항일 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국 언론들은 열병식에서 최신예 중국 무기들이 처음으로 공개될 것이란 예고 기사를 쏟아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 전술은 군사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활발한 경제외교를 통해 아시아에서 주도권을 확장하고 있다.
시 주석은 국정과제로 중앙아시아를 지나는 육상 실크로드와 동남아 해양 지대를 잇는 해상 실크로드를 축으로 한 일대일로 계획을 추진중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기구도 마련했다. 6월말 협정문 서명식을 마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기존 미국과 일본 등 서방 국가가 주도하는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자본금 400억달러의 실크로드기금도 형태를 갖췄다. 아시아에서 지속적으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미국의 틈새를 우회적으로 파고드는 전략이다. 중국 주도의 이 기구들이 아시아의 사회간접자본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아시아 다수 국가들의 이분법적인 구분도 허물어질 수 있다. <신화통신>, <환구시보> 등 중국 관영 언론들은 “중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 창설은 아시아의 공동번영을 위한 것”이라며 영유권 분쟁으로 인한 중국 위협론을 불식하려는 평론과 사설들을 게재한 바 있다. 미·일을 낡은 냉전 구도에 집착하는 기득권 국가로 묶으면서, 중국은 소외됐던 아시아 개도국을 지원하는 넉넉한 투자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경제외교 확대는 미·일과의 충돌 위험성을 줄이면서도 아시아 국가들을 중국의 영향력에 편입시키려는 중국 대외전략의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런 새로운 외교전략이 한국에는 더욱 어려운 선택의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한다. 안보면에서 미국이 압박을 가하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는 중국의 강한 반대에 부닥쳐 있다. 경제면에서도 미국의 반대 속에 막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고민이 드러난 바 있다. 9월 항일 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 여부 문제도 한국 외교의 숙제로 다가오고 있다.
<돈과 힘-중국의 부강을 이끈 11인의 리더>를 쓴 중국 전문가 존 델러리와 오빌 셸은 “아편전쟁 이후 제국주의 열강에 무참히 무너지는 일이 계속되면서 중국의 지도자들은 부강한 중국을 만들고자 노력했다”며 “중국이 강해진 힘을 공격적이거나 호전적인 방향으로 쏟아낸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존중받는 국가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강군몽을 추구하는 중국이 자강(自强)쯤에서 자제력을 발휘할지, 주변 국가에 강압적인 국가로 나아갈지, 광복과 분단 70년을 맞은 한반도에도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다롄/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시진핑 집권기 항모 4대 보유할 것”
군사·경제적 영향력 확대 잰걸음 다롄항이 중국 해양굴기(해양에서 우뚝 일어서다·해군력 강화)의 산실로 일컬어지는 것은 랴오닝호뿐 아니라 제2, 제4의 항공모함이 이곳에서 건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롄 사정에 밝은 한 중국 전문가는 “현재 중국 자체 기술로 2~4호의 항모가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며 “이 가운데 2호와 4호 항공모함은 다롄 조선소에서 건조되고 있다. 항모의 몸체는 조선소 곳곳에서 나눠 만들고, 내부에 장착할 무기 체계와 부품들은 외부의 군수공장에서 제작해 마지막에 합체 작업을 한다. 현재 바깥에서 볼 때 눈에 띄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2호 항공모함은 가스터빈식 엔진을 장착한 4만~5만t급의 중대형, 4호는 이보다 규모가 큰 원자력발전식 엔진을 탑재한 핵항모로 추정된다. 3호는 8만t급으로 상하이의 조선소에서 건조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시진핑 주석 집권기인 2018년에서 2019년께면 중국이 최소 4대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다롄 시민은 “랴오닝호는 순전히 외국 항모를 사들여 개조한 것이기 때문에 항구에서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우리 기술로 만든 항모가 등장한다면 자부심을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해양굴기’ 중국, 미국이 막을 때까지 바다 진출 밀어붙여 다롄은 ‘뒤떨어지면 당한다’는 교훈을 역사에서 체감한 땅이다. 1898년 제정러시아의 조차지가 됐고, 1905년 러일전쟁 뒤에는 일본의 조차지로 바뀌어 50년 넘게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지금은 다롄시의 한 구로 편입된 뤼순은 남의 나라 군대가 중국 땅에서 벌인 전쟁의 주무대였다. 청나라 북양함대의 근거지였던 뤼순항은 제국주의 열강의 약탈 과정에서 러시아 함대의 주력항이 됐고, 러일전쟁 당시 이곳에서 러시아 함대는 일본군의 포격을 받고 궤멸됐다. 이젠 중국 북해함대의 기지인 뤼순항이 내려다보이는 203고지에는 지금도 러시아와 일본의 장거리 대포가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역사를 증언한다. 203고지 유적지엔 ‘국치를 잊지 말자’(勿忘國恥)는 중국어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국방예산 한해 빼곤 10% 넘게 증액
지난 5월 펴낸 국방백서에
“해양 이익 고도로 중시” 밝혀 2013년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
베트남 인근 해역 원유 시추하고
남중국해선 7~8개 인공섬 쌓는 등
해양 영향력 확대전략 가속 지난달 한국 서해서 100척 실탄훈련
다음달엔 동해서 중·러 합동훈련
천안문 열병식서 최신 무기 선보일듯 이런 ‘수모의 땅’ 다롄이 강군몽(강한 군대의 꿈)을 주창하는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뒤 ‘해양굴기’의 요람으로 거듭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은 시 주석 집권 뒤 도광양회(韜光養晦·몸을 낮춰 힘을 기른다)라는 기존의 웅크린 외교전략 대신 적극적인 영향력 확대 전략을 펴고 있다. 미국에 상호 핵심이익을 존중하라는 ‘신형대국관계’를 내세운 뒤 아시아권에서 주변국과의 충돌도 불사하며 군사적 ‘근육’을 과시한다. 중국은 2013년 11월 동중국해에 돌연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며 해양 영향력 확대의 신호탄을 쐈다. 이어 지난해 5월엔 베트남 인근 남중국해 파라셀군도 부근 해역에서 원유 시추를 강행했다. 최근 1년 사이에는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과의 영토분쟁을 무릅쓰고 남중국해 7~8개 섬에 인공섬 건설을 추진했다. 중국은 7월 동중국해 해상에서 일본의 반발을 뒤로한 채 가스전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동·남중국해에서 야금야금 영향력을 넓히는 중국의 공격적인 움직임에 미국은 “중국이 바다에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며 강한 비판을 가했지만 현상은 바뀌지 않았다. 중국 전문가는 “일단 중국은 미국이 어디까지 용인하는지, 미는 데까지 밀어보자는 전략을 써왔고 현재까지는 이 전략이 먹히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군의 영향력 과시 무대는 남·동중국해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화통신>은 “7월2일 중국군이 황해(한국의 서해)에서 100척에 가까운 함정과 전투기 등을 동원해 실탄훈련을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군은 9월엔 밀월관계인 러시아와 함께 동해에서도 합동 군사훈련을 벌일 예정이다. 중국의 해양대국화는 5월 중국군이 발표한 국방백서에도 명확히 나타나 있다. 처음으로 군사전략을 외부에 공표한 이 백서에서 중국은 “바다는 중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이제부터는 육군을 중시하고 해군을 홀대해온 기존 관념을 버리고 해양 이익을 고도로 중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소비국으로서 생명선인 원유 수송로를 확보하고 시 주석의 최대 국정과제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를 연결하는 중국 중심의 경제벨트) 구상을 실현하는 데 해양 이익 수호가 필수적이라고 여긴다.
지난달 13일 찾은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시강구에 위치한 다롄 조선소 정문. 선박 제조용 대형 크레인을 배경으로 ‘과학발전, 강군보국’이란 표어가 선명하다. 다롄/성연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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