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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올해보다 더 나쁠순 없다…‘황제 딸도 울고 갈’ 취업대란

등록 2013-05-23 20:36수정 2013-05-24 08:24

18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농업전람관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대학생들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날 설명회엔 100여개 기업이 참여했고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몰렸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18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농업전람관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대학생들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날 설명회엔 100여개 기업이 참여했고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몰렸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7월 졸업 대학생 취업시장 ‘꽁꽁’
대졸자 699만명…10년전의 5배
성장률 저하로 채용규모는 하락
베이징 졸업자 1/3만 일자리 확정

취업사기·각종 차별행위도 기승
지방출신·여성·비명문대생 ‘찬밥’
리커창 ‘차별금지’ 지침 내려도
기업은 시큰둥…좌절감만 커져

주말인 18일 오전, 중국 대학들의 7월 졸업에 맞춰 취업설명회가 열린 베이징시 차오양구 농업전람관 1층 전시실은 직장을 구하려는 대학생들로 가득 찼다. 수천명의 대학생들은 저마다 이력서를 들고 100여개 기업의 채용 부스를 분주히 오갔다. 인기 회사의 부스는 취업 상담을 받으려는 학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짙은 황사 탓에 베이징 시내 전역에 외출을 자제하라는 황색 경보가 발동됐지만, 대학생들의 절박한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전날인 17일 베이징대, 칭화대, 런민대 등 명문대학들이 몰린 하이뎬구 중관춘 인재발전센터에서 열린 취업설명회장에도 평일인데도 대학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찾는 일은 녹록잖아 보였다. 중관춘 취업설명회장 앞을 서성이던 전자 계통 전공자인 위양(25)은 “정말 올해 취업난은 너무하다. 돌아다녀도 내가 찾는 발전 가능성이 있는 직장이 없다”며 연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베이징의 5월 낮기온은 이미 30도를 넘나들고 있지만 대학생들의 취업 시장은 얼어붙었다.

■ 졸업생은 넘쳐나고 경기는 침체 17일 친구들과 함께 취업설명회에 온 베이징교통직업기술학원 4학년 장쉬(24)는 “가장 큰 문제는 어딜 가나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장쉬의 말처럼 2013년 중국의 대학 졸업생은 건국 이래 최대 규모다. 중국 교육부가 밝힌 올해 대졸자는 699만명으로 지난해보다 19만명이나 늘었다. 중국 대졸자 수는 2010년 630만명, 2011년 660만명, 2012년 680만명으로 매년 20~30만씩 증가세다. 2002년 140만명이었던 데 비해 10년 만에 5배 넘게 늘었다. 중국 언론들은 ‘황제의 딸도 울고 갈 취업난’ ‘건국 이래 60여년 만의 최악’이란 제목으로 연일 심각한 취업난을 조명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일자리는 예년보다 줄었다. 30년 넘게 두자리수 성장을 이어온 중국의 성장률이 7%대로 떨어지면서, 기업들은 대규모 채용을 꺼리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중국 500대 기업과 공공기관의 대졸자 채용 규모가 지난해보다 15%포인트 줄었다고 보도했다. ‘스님은 많고 나눠 먹을 죽은 적은’ 상황이다. <신경보>는 20일 “7월 졸업을 앞둔 베이징 소재 대학 졸업생 22만9000명 가운데 일자리를 확정한 학생은 33.6%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상하이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아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확정한 학생들은 지난해보다 2% 포인트 낮은 44.4%다. 유례 없는 취업난을 틈타 취업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산시성 타이위안에선 은행과 공기업 같은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며 500여명의 대학생에게서 무려 9000만위안(164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검거되는 일도 벌어졌다.

■ 호적·간판·성별…차별에 두번 울다 가뜩이나 어려운 취업시장에서 대학생들을 좌절시키는 것은 차별이다. 중관춘 인재발전센터에서 만난 쑹란란(25)은 “4월부터 계속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 쉽지 않다. 베이징 후커우(호적)가 없는 탓에 기업들이 차별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선 도시 후커우가 있어야만, 해당 도시로부터 교육이나 의료, 주택 등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기업들은 도시 후커우가 있는 학생들을 채용해 복지 비용을 줄이려 한다. 일부 기업들은 아예 ‘베이징 후커우 소유자’로 응모자격을 제한하기도 한다. 한 기업 취업 담당자는 “치솟는 집값 때문에 구직자들은 숙소 문제를 기업이 해결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실무 경험을 요구하는 것도 구직에 나선 학생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요소다. 허베이공대생인 인아무개(21)는 “전공이 전자계산학이라 다른 과보다는 취업이 나은 편이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학과 성적 외에도 실제 업무를 해본 경험이 있는지 묻는다”며 “방학 때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현장 경험을 쌓았지만 기업들은 더 높은 수준을 원한다”고 말했다.

마오쩌둥 시대엔 ‘여성이 하늘의 절반’이란 구호가 울려퍼졌지만, 이제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여성 차별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후베이문리학원의 여대생 천린(22)은 “여성이라서 아무래도 출장이 잦은 일자리보다 사무실 행정직을 찾고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인터넷을 통해 지금껏 50통의 이력서를 기업에 보냈지만 대부분 답이 없다”고 말했다. 한 여대생은 중국 언론에 “기업들이 여성은 출장에 제약이 있고, 출산 등으로 업무에 영향을 준다고 대놓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명문대와 비명문대의 차별은 중국에서도 뚜렷하다. 위양은 “이른바 985대학, 211대학 등 명문대와 보통대학 출신 간에 취업에 큰 차이가 있다”며 “정부에선 학교 차별을 금지하라고 한다지만 기업은 이해관계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985 대학은 1998년 5월 장쩌민 전 주석이 베이징대 개교 100주년 당시 “베이징대, 칭화대 등 9개 대학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말에서, 211 대학은 정부가 “21세기를 이끌 100대 대학을 육성하겠다”는 방침에서 생겨난 말로 모두 중국의 명문대를 일컫는다. 여기에 외국 유학생까지 취업시장에 뛰어들면서 일반 대학 출신들의 구직난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한 대학생은 “유학도 돈이 있는 집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요즘은 유학을 다녀온다고 해도 별 수가 없다. 빨리 어디라도 취직해서 경력을 쌓아 더 나은 자리로 이직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17일 중국 인재발전센터에서 열린 대학생 취업설명회에서 대학생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17일 중국 인재발전센터에서 열린 대학생 취업설명회에서 대학생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구직행렬에서 만난 베이징 대학생들은 월급 수준보다는 발전 가능성을 우선 순위에 두고 있었다. 대략 월급 3000위안(53만원) 정도면 만족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중소기업에서는 자신을 계발하고 향후 발전 가능성을 찾기 어렵다’며, 중소기업 기피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당국이나 취업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서 먼저 경험을 쌓으라고 권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 시진핑, 리커창도 나섰지만… 인구대국 중국에서 일자리는 사회안정과 직결된다. 중국 정부도 대학생들의 취업난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까지 직접 나설 정도다. 시 주석은 지난 14일 톈진시에서 열린 대학생 취업박람회에 깜짝 등장해 “실제 일을 하는데는 감성지수(EQ)가 지능지수(IQ) 보다 중요하다. 시짱이나 신장 등 상대적으로 소외된 서부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의미 있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리커창 총리도 국무원 회의를 열어 “기업들이 학교나 나이, 성별, 후커우 등에 차별을 두지 말고 학생들에게 각종 취업 정보를 효과적으로 알리라”는 지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신경보>는 20일 구직자로 가장한 기자의 취재를 통해, “여전히 적지 않은 기업들이 채용조건에 그런 조건들을 명시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한 대학생은 “정부야 당연히 그런 노력을 해야하지만, 그건 정부 사정이고 기업은 자기네들 사정이 있는 것 같다. 결국 취업 문제는 정부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베이징/성연철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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