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날인 20일 아침, 타이 수도 방콕에서 스님들이 도로에서 경계 중인 탱크 옆을 지나고 있다. 무혈 쿠데타로 탁신 친나왓 총리를 축출한 군부는 이날 집회를 금지하고, 탁신 총리의 지지 기반인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정치에 개입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방콕/AP 연합
‘타이판 6·29’ 뒤에도 군 영향력 막강
정부·의회서 힘 발휘…방송사 4곳중 2곳이 군 소유
군-국왕, 탁신의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에 반감
정부·의회서 힘 발휘…방송사 4곳중 2곳이 군 소유
군-국왕, 탁신의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에 반감
19일 쿠데타로 타이에서는 15년 만에 다시 군부가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1932년 쿠데타로 전제군주제를 깨뜨린 이후, 타이에선 이번을 포함해 모두 18차례의 쿠데타가 일어났다. 1991년 군이 부패 정치인 척결을 내세우며 당시 찻차이 춘하완 민간정부를 전복시킨 게 가장 최근의 쿠데타다.
이번 쿠데타는 ‘타이판 6·29’로 불리는 1997년 민주헌법 개정 이후에도 여전한 군부의 힘과 문민정치의 미성숙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군의 영향력은 97년 헌법 개정을 기점으로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다. 그전까지 타이에선 육군 참모총장이 차기 총리가 되는 수순이 일종의 ‘관례’였다. 육사 출신의 육군 참모총장은 현역에서도 군의 실세로 현실정치를 좌지우지했다. 군부 출신 총리들은 군 출신을 임명직 상원의원에 진출시켜 하원을 견제하도록 했고, 내각에도 군 출신을 대거 포진시켰다.
상원의원 직선제 등을 뼈대로 한 97년 개헌으로 2000년 3월 임명직 상원이 해산되는 등 제도상의 변화가 있었지만, 60년 이상 계속된 군부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여전히 크다. 80년대부터 군은 사관학교 출신들을 자치단체 조직에까지 파견해, 지방 행정의 중추 요원으로 키웠다. 지금도 군 출신이 정부나 의회의 각종 위원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방송사 4곳 중 2곳이 군 소유이고, 방송의 주파수 배분 등 각종 이권에도 군이 관여하고 있다.
군사쿠데타가 자주 발생하는 데는 국민으로부터 절대 추앙을 받고 있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구실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쿠데타를 기도하는 군부는 항상 명분을 “왕실을 보호하고 국왕을 받들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라고 내세운다. 이번 쿠데타 세력도 국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노란 리본을 탱크나 군복에 매달았다. 국왕 역시 이번에 쿠데타를 사후 추인한 것처럼, 지금까지 군부의 손을 매번 들어주면서 정통성을 부여했다. 타이 헌법에서 국가수반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국왕이 군부 안에 측근을 심어 놓고 끊임없이 충성을 맹세하도록 하는 등 실제 권력투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의 경우, 군부 엘리트와 국왕이 기업 민영화나 자유무역협정 등 탁신의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에 대한 반감을 서로 공유하거나 교감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19일 “타이에선 ‘기업가형’인 탁신과 국왕이 내세우는 자족경제라는 두 비전이 맞부닥치고 있다”며, 이번 쿠데타는 이런 대립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군부가 전통적으로 친미노선을 지향하면서 미국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는 점, 민간정부가 만연한 부정부패와 권력 남용, 민주제도의 약화 등으로 국민적 지지를 잃어 온 점도 군부의 개입을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이번 쿠데타를 두고 “정치적 차이가 민주적 원칙을 통해 해소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온건한’ 견해를 피력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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