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자 “일부는 고문”…‘겉으론 중립 실제론 탄압’ 의혹
“지난 금요일(2월4일) 타흐리르 광장에 설치된 임시 의료시설에 의약품을 담은 상자를 들고 가다가 길목에서 마주친 군인들에게 검문을 받고 총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았다. 군대가 주둔한 광장 한쪽 고대박물관의 한 방으로 끌려가 ‘누구의 돈을 받고 이런 짓을 하느냐’는 호통을 듣고 몇시간 동안 주먹과 발길질에 숱하게 두들겨 맞았다. 대검을 들이대며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협박도 들었다. 다시는 타흐리르 광장에 오지말라는 경고를 듣고서야 18시간 만에 겨우 풀려났다.”
다시 체포될까 두려워 ‘아샤프’라는 이름만을 밝힌 23살의 이집트 청년은 자신이 갇혀있던 방에 심하게 고문을 당한 흔적이 역력한 10여명의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10일(현지시각) 군인들에 붙잡혔다 풀려난 시위대와 인권단체 관계자들의 증언을 인용해 수백명 이상의 시위참가자들이 군인들에 의해 체포 구금 구타를 당하고, 일부는 발가벗겨져 전기고문까지 당했다고 보도했다.
‘휴먼라이츠워치’ 등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정치전단을 소지하거나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뿐 아니라 시위를 단순히 지켜봤다는 이유만으로도 이집트 전역에서 수백, 수천명의 보통사람들이 군인들에 끌려가 실종되고 있다고 전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한 연구원은 군에 체포된 119명의 명단을 갖고 있지만, 군이 체포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금돼 있는지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구금과 고문 등의 인권침해는 그동안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수장으로 있던 국가보안정보국(SSI)이 주로 자행해왔다는 점에서 군의 이런 인권침해는 전례없는 일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풀려난 이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이들은 하마스나 이스라엘 등 외부 세력의 사주를 받고 시위를 벌인 것 아니냐는 추궁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반면 타흐리르 광장에서 반정부시위대를 공격했다가 군에 붙잡혔던 친정부 시위대들은 구금되거나 고문받지도 않고 경찰 쪽에 넘겨졌다가 풀려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증언들이 나오며 이집트 군이 그동안 표면적으로 중립성을 강조해왔지만, 실제로는 반정부 시위를 막기 위해 배후에서 은밀히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지고 있다. 정부 고위인사들이 군을 동원한 강경진압 가능성을 잇달아 경고하고 있는 가운데 터져나온 이런 증언들은 새롭게 가열되고 있는 이집트 시위를 더욱 격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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