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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불신정부’ 향한 광장의 외침 “엘할”

등록 2011-02-10 20:00

“타흐리르 광장 이곳이 의회”
연설 듣고 의견과 희망 나눠
[조일주 기자의 이집트 통신]

“이곳이 의회다. 정권 퇴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등장한 수많은 구호 중 하나였다. “그가 나갈 때까지 나의 주소는 타흐리르”라고 쓴 손팻말을 든 시민도 있었다. 타흐리르 광장은 이집트의 아고라였고 아크로폴리스였다. 막혔던 봇물이 갑자기 터진 듯, 온갖 구호와 표어, 다양한 포스터들이 광장을 메웠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구호를 외치고 의견을 나눴으며 연설을 들었다. 빵조각을 나눠주는 이들이 있었고, 누군가는 조용히 광장의 쓰레기들을 주워담았다. 그들의 요구는 호스니 무바라크(83) 정권의 즉각 퇴진과 새로운 희망으로 압축됐다.

광장에서 지켜보고 만난 이집트인들은 하나같이 순박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무바라크 정권에 대해서만큼은 단호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오는 9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여야 협상이 시작되면서, 여론이 나뉘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한 한국 교민은 “안정된 직업과 재산이 있는 이집트 보수층은 ‘이 정도 했으면 됐다’는 생각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심의 큰 물줄기는 무바라크 즉각 퇴진 쪽이었다. 문제는 불신이었다. 카이로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무바라크는 도둑, 무바라크는 거짓말쟁이”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깊었다.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정부,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별로 많지 않다는 사실을 카이로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수 있었다.

광장에서 만난 카이로아메리칸대의 한 교수는 기자에게 자신의 친구들을 가리키며 “이들을 보라. 무슬림형제단이다. 너무 착한 친구들이다. 이들이 과격한 극단주의자라고? 그렇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주류 언론은 그렇게 표현한다. 서구 미디어가 아니라 이집트 사람들의 말을 듣고 당신의 견해를 만들라”고 말했다.

이집트 취재를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카이로 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 올랐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하는 이 항공편은 애초 예약된 항공편이 취소된 뒤 11시간이나 늦춰진 것이었다. 항공편 안내 전광판에는 “운항 취소”(canceled)라는 글자가 수두룩했다. 혼돈 속에서 앞길을 찾아가는 이집트 정국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비행기가 카이로 상공을 벗어난 뒤로도 귓가에는 타흐리르 광장에 메아리쳤던 “엘할, 무바라크!”라는 함성이 맴돌았다. 엘할은 “떠나라”는 뜻이다.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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