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스라엘 여성이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베들레헴의 콘크리트 분리장벽에 그려진 낙서들을 바라보며 걷고 있다.
팔레스타인 르포
신변 개인책임에 보험도 거부당하는 위험지대
유대인 12가구 보호위해 아랍인들 생존권 파괴
정착촌·분리장벽 확대…“평화 말살 범죄행위”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총선에서 승리한 2006년 하반기부터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봉쇄는 더욱 강도를 높이고 있다. 주민들의 통행은 물론이고, 생필품의 공급이 통제되는 자치지역 안도 유대인 정착촌에 의해 분리돼, 사실상 수백개의 섬으로 바뀐지 오래다. 세계 최대의 수용소로 변해가는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한겨레>가 가보았다. <편집자> 곳곳이 섬이었다. 아랍인 거주지역은 대부분 이스라엘이 설치한 거대한 분리장벽으로 둘러쳐져 바깥세상과 단절돼 있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하려면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이 발행한 출입허가증을, 외국인은 여권을 보여줘야 한다. 방문지와 이유를 캐묻고 몸수색과 차량검색을 해도 불쾌한 내색조차 할 수 없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5㎞ 떨어진 헤브론. 가자지구, 나블루스와 함께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저항이 거센 곳이다. 신변 안전이 개인 책임이며 보험도 거부될 만큼 민감하고 위험한 지역이다. 이 곳에는 아브라함-이삭-야곱 3대의 가족묘지인 막펠라 동굴 사원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중요한 성지다. 본디 아랍인들의 영토였지만, 1967년 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이후 지금은 아랍 거주지역과 유대인 정착촌으로 분리됐다. 몇해 전부터 이 곳의 아랍인 주거지역 한 복판에 유대인 12가구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불법’으로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가 이들을 강제퇴거하려 했으나 이스라엘의 정착촌연합까지 가세해 철수를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이스라엘 정부는 ‘아랍 속 유대인’ 12가구를 위해 방탄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군인들을 주둔시켜 아랍인들의 접근을 통제했다. 인접한 아랍인 주거지역은 살림집이며 상가가 문을 닫고 인적이 끊겨, 한낮인데도 텅 빈 ‘유령의 마을’로 변했다. 주인이 떠나버린 빈 집들의 문에는 유대인 표식인 ‘다윗의 별’이 스프레이 낙서로 그려져 있었다. 기자는 조그만 가게에서 3달러에 건전지 4개를 샀다. 가게 주인 무니에르 카피샤는 “당신이 4일만에 첫 손님이다. 유대인과 이스라엘군이 들어오면서 모든 게 망가졌다”라고 하소연했다.
예루살렘 시당국은 최근 중장비를 몰고나와 난동을 벌이다 사살된 팔레스타인 청년의 거주지인 동예루살렘의 수르 바히르 지역에 수백 가구의 유대인 정착촌을 짓는 계획을 사전 승인했다고 <예루살렘포스트>가 7일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있는 라말라, 팔레스타인 경제 중심지이자 거센 저항의 도시인 헤브론, 예수 탄생의 성지 베들레헴, 유서 싶은 고도들이 모두 그렇게 고립되어 가고 있다. 아랍인 거주지역 곳곳에는 칙칙한 회갈색의 주변 가옥들과 달리 산뜻한 주황색 지붕을 얹은 신축가옥들이 들어서있다. 유대인 정착촌이다. 자동차 번호판 색깔도 유대인은 흰색, 아랍인은 노란색으로 구별된다.
요르단강 서안의 분리장벽만 2007년 말 기준으로 474㎞에 이른다. 현재 건설중이거나 계획인 장벽도 316㎞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전체 도로 연장 3500㎞중 1500㎞는 팔레스타인 사람은 통행할 수 없는 유대인 전용도로다. 서안 인구 246만여명 중 10% 남짓에 불과한 유대인이 전체도로의 43%를 점유한 셈이다.
분리장벽마다 가득한 낙서와 그림에는, 땅을 빼앗기고 유폐된 이들의 절망과 분노와 염원이 묻어난다. “존재한다는 것은 저항하는 것” “팔레스타인 해방 만세!” “실종된 평화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북 고동이 아파르헤이트를 뚫고 울려퍼진다” “너희가 저지른 짓을 신께서 잊을 것 같으냐?” “컨트롤+앨트+딜리트”(컴퓨터 재부팅 단축키)등등….
라말라에서 만난 야세르 아베드 라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집행위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과 분리장벽 건설은 팔레스타인과의 평화공존을 근본적으로 깨뜨리는 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600개가 넘는 이스라엘군의 검문소가 팔레스타인의 마을과 마을, 생활과 생활을 단절시킵니다. 분리장벽은 아랍인 거주 마을들을 고립화해 팔레스타인의 경제난을 가중시키고 있어요.”
예루살렘에 본부를 둔 이스라엘의 시민단체 ‘피스 나우’의 야레브 오펜하이머 사무총장은 “두 나라의 공존이 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올 가장 합리적 방안이지만, 정착촌과 분리장벽은 그런 가능성을 봉쇄해버린다”고 비판했다.
글·사진 라말라 헤브론/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관련기사는 hani.co.kr
유대인 12가구 보호위해 아랍인들 생존권 파괴
정착촌·분리장벽 확대…“평화 말살 범죄행위”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총선에서 승리한 2006년 하반기부터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봉쇄는 더욱 강도를 높이고 있다. 주민들의 통행은 물론이고, 생필품의 공급이 통제되는 자치지역 안도 유대인 정착촌에 의해 분리돼, 사실상 수백개의 섬으로 바뀐지 오래다. 세계 최대의 수용소로 변해가는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한겨레>가 가보았다. <편집자> 곳곳이 섬이었다. 아랍인 거주지역은 대부분 이스라엘이 설치한 거대한 분리장벽으로 둘러쳐져 바깥세상과 단절돼 있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하려면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이 발행한 출입허가증을, 외국인은 여권을 보여줘야 한다. 방문지와 이유를 캐묻고 몸수색과 차량검색을 해도 불쾌한 내색조차 할 수 없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5㎞ 떨어진 헤브론. 가자지구, 나블루스와 함께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저항이 거센 곳이다. 신변 안전이 개인 책임이며 보험도 거부될 만큼 민감하고 위험한 지역이다. 이 곳에는 아브라함-이삭-야곱 3대의 가족묘지인 막펠라 동굴 사원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중요한 성지다. 본디 아랍인들의 영토였지만, 1967년 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이후 지금은 아랍 거주지역과 유대인 정착촌으로 분리됐다. 몇해 전부터 이 곳의 아랍인 주거지역 한 복판에 유대인 12가구가 ‘종교적 신념’에 따라 ‘불법’으로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가 이들을 강제퇴거하려 했으나 이스라엘의 정착촌연합까지 가세해 철수를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이스라엘 정부는 ‘아랍 속 유대인’ 12가구를 위해 방탄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군인들을 주둔시켜 아랍인들의 접근을 통제했다. 인접한 아랍인 주거지역은 살림집이며 상가가 문을 닫고 인적이 끊겨, 한낮인데도 텅 빈 ‘유령의 마을’로 변했다. 주인이 떠나버린 빈 집들의 문에는 유대인 표식인 ‘다윗의 별’이 스프레이 낙서로 그려져 있었다. 기자는 조그만 가게에서 3달러에 건전지 4개를 샀다. 가게 주인 무니에르 카피샤는 “당신이 4일만에 첫 손님이다. 유대인과 이스라엘군이 들어오면서 모든 게 망가졌다”라고 하소연했다.
유대인 정착촌 건설로 황폐화한 아랍인 주거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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