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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이스라엘인 150명 인질 사태…무력충돌 위기 최고조

등록 2023-10-10 13:57수정 2023-10-11 07:25

하마스 “민간인 공격 시 인질 처형”
뮌헨올림픽 인질 사건 이후 최대 위기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공습이 발생한 지 사흘째인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다친 아이를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이날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민간인 주택을 폭격할 경우 민간인 포로를 처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자지구 신화/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공습이 발생한 지 사흘째인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다친 아이를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이날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민간인 주택을 폭격할 경우 민간인 포로를 처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자지구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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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로 인한 위기가 인질 억류 사태로 인해 증폭되고 있다.

하마스의 군사조직인 알카심여단의 대변인 아부 오바이다는 9일(현지시각) “지금 이 시간부터 사전 경고 없이 민간인 집에 대해 공격을 하면 우리가 잡고 있는 인질들을 한 명씩 처형할 것이다”고 말했다.

앞서 하마스는 지난 7일 이스라엘을 전격적으로 공격한 뒤 이스라엘인과 외국인 여러 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이스라엘 외교부는 9일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이 150명이 된다고 밝혔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인질을 다수 붙잡고 처형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것은 이번 사태를 악화시킬 뇌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75년 동안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는 인질 억류를 투쟁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은 인질 억류 사태를 통해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 했으며,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과 교환하곤 했다.

1968년 7월23일 로마를 떠나 텔아비브로 향하던 이스라엘의 엘알(El Al) 여객기가 팔레스타인 게릴라에 납치된 사건은 인질 억류 사태의 본격적 시작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 팔레스타인 게릴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과격 세력이 벌였던 여객기 납치 사건에도 영향을 줬다.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 무장대원에 의해 인질로 잡혀 가자지구로 끌려가는 이스라엘인들의 모습. 소셜미디어 영상 갈무리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 무장대원에 의해 인질로 잡혀 가자지구로 끌려가는 이스라엘인들의 모습. 소셜미디어 영상 갈무리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은 여객기를 알제리 알제에 착륙시켜 다른 승객들을 풀어주고 이스라엘 시민과 승무원 22명을 인질로 잡았다. 5주간이나 진행된 인질 석방 협상 뒤 결국 이스라엘은 타협했다. 이스라엘이 수감 중이던 팔레스타인 게릴라 15명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인질들이 풀려나고, 인질범들도 신변 안전을 보장받았다. 당시만 해도 인질범이나 이스라엘 양쪽 모두 서로 인명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인질 억류 사태가 잦아지면서, 이런 금도는 깨져갔다.

1972년 9월5일 독일 뮌헨올림픽 때 일어난 이스라엘 선수단 인질 억류 및 학살 사건은 이정표였다.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과격 좌파인 ‘검은 9월단’은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난입해 선수와 코칭스태프 등 9명을 인질로 잡고 이틀간 대치하다가, 인질 전원과 범인 그리고 서독 경찰 1명을 포함해 17명이 죽었다. 범인들은 이스라엘에 수감된 234명 팔레스타인인들의 석방을 요구했으나, 서독 당국이 구출 작전을 벌이다가 참사가 벌어졌다.

1974년 5월 이스라엘의 마알롯(Ma'alot)에서 벌어진 사건은 대량 인질 억류 사태의 시작이었다. 레바논에서 이스라엘로 침투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은 5월15일에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105명을 포함해 115명의 인질을 잡고는,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은 이틀 만에 대테러부대를 투입해 진압하다가, 인질범들이 기관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트려서 어린이 22명 등 30명 이상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후 이스라엘 당국은 인질 억류 사태에 대해 무력으로 진압하고, 다음에도 보복을 이어가는 대응으로 기울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뮌헨 참사와 관련된 이들을 추적해 암살했고 이 내용은 영화 ‘뮌헨’에서도 묘사됐다.

1974년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사이의 4차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 이후 중동평화협상이 시작됐다.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의 중심 세력이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도 이후 이스라엘과 협상 의사를 보이면서, 팔레스타인 단체가 벌이는 인질 억류 사건은 잦아들었다.

그러나 1987년 12월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인티파다(민중봉기) 이후 세력을 급속히 성장한 이슬람주의 세력인 하마스가 인질 억류 사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비타협적 투쟁을 표방한 하마스는 1990년 중반 이후 이스라엘 인질 억류를 중요한 투쟁 수단으로 이용했다.

하마스는 1994년 10월 이스라엘 병사 1명을 납치했다. 이스라엘은 협상하지 않고 즉각 구조작전을 벌였으나, 이 병사는 사망했다. 2006년 이스라엘 병사 길라드 샬리트의 납치 및 인질 사태는 5년간 지속되며, 이스라엘 내에서 큰 문제가 됐다. 샬리트는 2011년 팔레스타인 수감자 1천여명과 교환돼 석방됐다.

2014년 6월 이스라엘 청소년 3명이 납치됐다가 사망한 사건은 2014년 가자 전쟁을 촉발했다. 이스라엘은 2014년 7월 초부터 50일 동안 매일 가자지구를 공습하면서 지상군 3대 여단을 투입해, 가자지구를 초토화했다. 팔레스타인 주민 2300여명이 죽었다.

하마스가 대규모로 인질을 억류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100명 내외의 인질이 이스라엘 남부 각지에서 잡혀서 가자지구로 끌려간 사태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위기다. 이스라엘은 진퇴양난에 빠졌고, 하마스 역시 기로에 섰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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