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31일 의회에서 국정연설을 하는 도중 딕 체니 부통령이 손뼉을 치자 오른손을 흔들어 화답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
하마스·이란등 중동국가에 강력한 경고
민주당 “11월 중간평가 앞둔 선제공격”
민주당 “11월 중간평가 앞둔 선제공격”
프라임타임(황금시간대)에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새해 국정연설은 대통령에겐 더할 나위 없는 정치 홍보의 장이다. 31일 밤 워싱턴 한복판 의사당에서 이뤄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올해 11월의 상·하원 중간선거에 초점을 맞춘 흔적이 역력했다.
부시 대통령이 최근 전사한 이라크전 참전 병사의 편지 한 구절을 읽어 내려갈 때, 그 병사의 부모와 아내가 방청석에서 눈시울을 적시는 장면이 텔레비전에 클로즈업됐다. 그 병사의 메시지는 “우리를 지지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였다.
부시는 거의 모든 현안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공세적으로 나갔다. 부시의 연설 중간중간, 공화당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뉴욕타임스> 등은 “(부시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가안보를 강조함으로써 의제를 선점하려고 애썼다”고 평했다.
우선 대외정책을 보면,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사에서 제시한 ‘전세계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이란 의제가 이번에도 그대로 강조됐다. 최근의 상황 변화를 반영해, 특히 중동 국가들에 강력한 경고가 더해졌을 뿐이다. 그는 최근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한 하마스를 두고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무기를 버리고, 테러리즘을 거부하라”고 촉구했다. 이란에 대해선 ‘소수의 엘리트 성직자들에 의해 인질로 잡힌 국가’로 지칭하고, 팔레스타인, 레바논에서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고 있는 이란 정권이 핵무기를 갖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대 현안인 이라크 문제에선 “나는 승리를 확신한다”며 패배주의에 빠져들지 말라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중동 민주화가 테러 근절과 미국 안전에 긴요함을 강조함으로써 이라크에서 단계적 철군을 주장하는 민주당과 분명한 대립각을 세우려 애썼다. 이런 기조는 국내 현안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부시는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기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애국법 재승인을 의회에 강하게 요청했다. 또 국내 전화도청 문제에선 “국내에 알카에다와 통화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내용을 알아야 한다”고 옹호했다.
부시는 공화당에 유리한 소재라고 판단하는 국가안보와 이라크 문제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지만, 불리할 것으로 보이는 의회 로비 사건이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복구 문제에 대해선 원칙적이고 포괄적으로 언급하는 데 그쳤다. <뉴욕타임스>는 “뉴올리언스 재건 문제에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의회 로비를 개혁하는 문제에서도 새 제안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당은 부시 연설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선제공격으로 간주했다. 존 케리 상원의원은 “부시 대통령은 환상의 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계속 미국민을 오도하고 있으며 약속을 파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티머시 케인 버지니아주지사는 “정부는 미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 임무가 현 정부의 잘못된 관리와 선택 때문에 망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북한 간략히 언급…‘악의 축’ ‘무법정권’ 보다 수위 낮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각)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한 국정연설에는 ‘북한’(North Korea)이 단 한 번 등장한다. 그나마도 주어는 아니다. “2006년 초, 세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민주주의 나라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는 시리아, 버마, 짐바브웨, 북한, 이란 같은 나라에 있는 나머지 절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의와 평화의 요구는 이들의 자유를 필요로 한다.” 이 발언은 “미국은 세계에서 폭정의 종식이라는 역사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한 뒤 나온 것이다. 북한 등 몇몇 나라를 세계의 대표적 비민주국가이자 ‘자유의 전파 대상’으로 꼽은 것이지만, 지난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규정한 ‘폭정의 전초기지’에 비한다면 수위가 낮아졌다. 부시 대통령의 이날 북한 관련 언급만으로는 미국의 대북정책과 6자회담 전략을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너무나 원칙적이고 간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취임 직후의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이래, ‘무법 정권들’(2003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2004년) 등이라고 몰아붙여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정연설은 상대적으로 긍정적이다.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선 대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평가가 많다. 북한과 관련한 도발적 언급이 없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부시 대통령의 기본인식에 변화가 없다는 점에선 긍정적 전망을 할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핵문제 및 위폐·마약밀매 협의와 관련한 금융제재 문제 등 북-미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이런 간략한 언급은 “나쁘지 않은 징조”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쪽도 있다. 부시 대통령이 ‘자유의 성취’와 관련한 대표적 장애물로 ‘이슬람 급진세력’을 꼽으면서 강경한 발언을 길게 이어간 것과 비교하기도 한다. 적어도 이번 연설에선 ‘북한을 찍어서 거론’함으로써 미국이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진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부담스런 대목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최대 현안인 이라크 문제에선 “나는 승리를 확신한다”며 패배주의에 빠져들지 말라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중동 민주화가 테러 근절과 미국 안전에 긴요함을 강조함으로써 이라크에서 단계적 철군을 주장하는 민주당과 분명한 대립각을 세우려 애썼다. 이런 기조는 국내 현안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부시는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기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애국법 재승인을 의회에 강하게 요청했다. 또 국내 전화도청 문제에선 “국내에 알카에다와 통화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내용을 알아야 한다”고 옹호했다.
부시는 공화당에 유리한 소재라고 판단하는 국가안보와 이라크 문제를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지만, 불리할 것으로 보이는 의회 로비 사건이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복구 문제에 대해선 원칙적이고 포괄적으로 언급하는 데 그쳤다. <뉴욕타임스>는 “뉴올리언스 재건 문제에서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고 의회 로비를 개혁하는 문제에서도 새 제안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당은 부시 연설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선제공격으로 간주했다. 존 케리 상원의원은 “부시 대통령은 환상의 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계속 미국민을 오도하고 있으며 약속을 파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티머시 케인 버지니아주지사는 “정부는 미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 임무가 현 정부의 잘못된 관리와 선택 때문에 망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북한 간략히 언급…‘악의 축’ ‘무법정권’ 보다 수위 낮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각)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한 국정연설에는 ‘북한’(North Korea)이 단 한 번 등장한다. 그나마도 주어는 아니다. “2006년 초, 세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민주주의 나라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는 시리아, 버마, 짐바브웨, 북한, 이란 같은 나라에 있는 나머지 절반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의와 평화의 요구는 이들의 자유를 필요로 한다.” 이 발언은 “미국은 세계에서 폭정의 종식이라는 역사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한 뒤 나온 것이다. 북한 등 몇몇 나라를 세계의 대표적 비민주국가이자 ‘자유의 전파 대상’으로 꼽은 것이지만, 지난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규정한 ‘폭정의 전초기지’에 비한다면 수위가 낮아졌다. 부시 대통령의 이날 북한 관련 언급만으로는 미국의 대북정책과 6자회담 전략을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 너무나 원칙적이고 간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취임 직후의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이래, ‘무법 정권들’(2003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2004년) 등이라고 몰아붙여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정연설은 상대적으로 긍정적이다.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선 대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평가가 많다. 북한과 관련한 도발적 언급이 없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부시 대통령의 기본인식에 변화가 없다는 점에선 긍정적 전망을 할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핵문제 및 위폐·마약밀매 협의와 관련한 금융제재 문제 등 북-미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이런 간략한 언급은 “나쁘지 않은 징조”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쪽도 있다. 부시 대통령이 ‘자유의 성취’와 관련한 대표적 장애물로 ‘이슬람 급진세력’을 꼽으면서 강경한 발언을 길게 이어간 것과 비교하기도 한다. 적어도 이번 연설에선 ‘북한을 찍어서 거론’함으로써 미국이 북한의 정권교체를 추진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부담스런 대목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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