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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석유 중독 벗어나려면

등록 2006-02-01 19:20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조홍섭칼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일 새해 국정연설에서 “미국은 석유에 중독됐다”며 기술의 힘으로 이를 벗어나겠다고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쓰고 있는데도 아직 그 갈증이 채워지지 않고 있는 미국이, 이에서 벗어나겠다고 한 선언이기에 더욱 눈길을 끈다. 미국은 세계 인구의 4%를 차지하지만 석유의 25%를 쓴다. 게다가 미국인의 석유 소비는 지난 10년 동안 17%나 늘었다.

그의 ‘탈석유’ 방안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지는 두고봐야겠지만 우리에게도 주목할 대목들이 있다. 먼저 원자력 발전에 부활의 신호를 보낸 점이다. 그는 기술개발 투자를 할 삼대 분야의 하나로 ‘깨끗하고 안전한 핵 에너지’를 들었다. 이 발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104기의 원전을 돌리고 있지만 1979년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신규 주문이 없어 휴면상태에 빠져 있는 미국 원자력계엔 낭보임이 분명하다. 나아가 우리나라처럼 원자력을 주종 전력원으로 추진하는 나라들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원전을 새로 짓지 않는 정책을 채택해 온 영국도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 사태를 계기로 원전 건설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23일 새 원전 건설에 관한 국민적 논의를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최근 에너지 안보와 지구 온난화가 세계적 현안으로 다가오자 원자력 발전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말도 나온다. 발전단가에서 우라늄이 차지하는 비중이 5%에 불과하고, 원전의 안전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탄소세를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원자력의 경제성은 높아질 것이다. 가이아 이론을 만든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 온난화는 집에 불이 난 꼴이기에 (재생 에너지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원자력을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최근 이란의 핵 개발을 둘러싼 분쟁에서 드러났듯이 핵 발전을 위한 기술과 핵무기용 기술 사이의 경계는 흐릿하다. 핵 확산 못지않게 테러 위험도 문제다. 플루토늄 등 다량의 핵물질이 남아 있는 사용후 핵연료는 테러리스트에게 취약한 목표물이 될 수 있다.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는 ‘20억달러짜리 자산을 한 시간반 만에 10억달러짜리 복구 사업장으로 바꾸어놓았다.’ 확률이 낮더라도 치명적 사고의 위험은 상존한다. 수십만년을 환경에서 격리해야 하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문제도 아직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에너지 정책을 다루면서 놀랍게도 ‘절약과 효율화’나 ‘지구 온난화’란 말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의 정책적 주제어는 ‘기술’과 ‘공급’이다. 시민들의 소비와 생활 방식을 바꾸어 절약과 효율화를 추구하는 수요관리보다는 새로운 기술로 다량의 청정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발상이다. 원자력을 주요한 대체 에너지로 세우고 각종 신기술과 재생 에너지를 묶어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맞추자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과도 흡사하다.

화석연료는 언젠가 동이 난다. 재생 에너지로 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불확실하다. 분명한 건 기술만으로 에너지 전환을 이룰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재생 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절약·효율화, 그리고 분산형 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럽은 그런 길로 가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발표한 에너지 계획에서 2020년까지 에너지 사용량을 20% 줄이고 재생 에너지 비중을 2010년까지 12%로 늘리기로 했다.

조홍섭/편집부국장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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