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3일 밤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B-1B 랜서 여러 대와 F-15C를 불시에 출격시켜 비무장지대(DMZ) 최북단까지 “21세기 들어 가장 북한에 근접 비행”을 한 것은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최대한 끌어올려 추가 긴장고조 행위를 억지하고 ‘힘에 의해’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번 작전에서 B-1B 2대는 F-15C들의 호위를 받으며 23일 늦은 밤 동해 쪽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북쪽으로 올라갔다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B-1B가 괌에서 오면 한국 공군,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들과 함께 비행하지만, 이번엔 미군만 작전을 벌였다. 군 당국자는 “전례없이 북쪽 지역까지 날아가는 등 과거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임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미군이 이번에는 북한 영공에 바짝 다가서며 훨씬 더 위협적인 무력시위를 했다는 것이다. B-1B가 한밤중에 작전한 것도 이례적이다. 필요하면 언제 어느 때라도 기습공격을 할 수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무력시위의 최우선 목적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19일 ‘북한 완전 파괴’ 발언과 이에 맞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처’ 거론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다음달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강력한 무력시위를 통해 북한의 추가 긴장고조 행위를 억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좀더 넓은 범위에서 보면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북핵 문제 돌파구 전략과 연결돼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핵심 외교소식통은 “트럼프 행정부도 북한과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이 먼저 굽히고 들어오기를 원한다”며 “무력시위는 북한을 협상장으로 불러오기 위한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힘에 의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를 위해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부터 일련의 무력시위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에는 B-1B 2대와 주일미군에 배치된 F-35B 스텔스 전투기 4대가 우리 공군 F15K 4대와 연합훈련을 실시해 군사분계선 인근까지 북상했다. 10월에는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를 비롯한 미 항모강습단이 한반도 해역에서 우리 해군과 연합훈련을 할 예정이다.

미 국방부는 무력시위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번 작전을 정교하게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부가 이례적으로 대변인 성명 형식으로 이번 무력시위를 발표한 것도 작전의 무게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가 이번 무력시위를 두고 북한의 ‘위협적 행위’에 대한 방어적 조처라고 하는 점에 비춰보면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북-미가 최고 지도자 차원에서 말폭탄 공방 수위를 높이면서 상호 경계감이 높아진 점 등을 고려하면 정세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뉴욕/이용인 특파원, 박병수 선임기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