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CSIS 연설서 대북 ‘5노’ 원칙 천명
군사공격·정권교체·정권붕괴·인위적 통일 가속화 배제
’적절한 대화 조건’ 때 중요한 토대로 삼기 위한 복선
“김정은, 핵폐기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북한이 올바른 선택한다면 함께 걸어갈 준비돼 있어"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전문가 초청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 사흘째인 30일(현지시각) 북한에 대한 적대적 행위, 군사적 공격, 정권교체, 정권 붕괴, 인위적인 한반도 통일의 가속화 등을 하지 않겠다는 ‘5노(No)’ 방침을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저녁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추진하지 않는다.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 정권의 교체나 정권의 붕괴를 원하지도 않는다. 인위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가속화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같이 말한 뒤 “북한에게 분명히 요구한다. 비핵화야말로 안보와 경제 발전을 보장받는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3일 국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과 내용적으로 흡사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완성된 직후인 당시 틸러슨 장관은 대북 접근법과 전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원칙을 밝혔는데, 문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적대적 행위’ 부분을 뺀 ‘4노(No)’ 원칙이었다.
북한과 ‘적절한 대화의 조건’이 형성됐을 때, 상호 체제 인정과 상호 불가침 약속 정신을 담고 있는 문 대통령의 ‘5노’원칙이나 틸러슨 장관의 ‘4노’ 원칙은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굳히기’를 노린 전략적 복선이 깔려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5노(No)’ 원칙을 소개하며 주어를 ‘나와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원칙이 한-미 간의 합의하에 만들어진 것임을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토대를 강조한 뒤 “우리의 새로운 방향은 전략적 인내에서 벗어나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가 북한에서 핵 폐기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라며 현실적인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그는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고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국으로서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며 “한국이 미국과 긴밀한 공조 하에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면 그 과정에서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도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서도 “대화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 평화와 번영의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촉구한다“며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길을 북한과 함께 걸어갈 준비가 돼 있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외교 문제의 최우선 순위를 북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에 둔 것은 역대 미국 정부가 하지 않았던 일로 이 사실이 북핵 해결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이 기회를 살리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 확고한 전제는 바로 굳건한 한-미 동맹”이라며 “한국은 미국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여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우리나라는 유례없는 정치적 위기를 겪었으나 우리 국민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냈다”며 “우리 국민은 이것을 촛불혁명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촛불혁명은 대통령으로서 나의 출발점”이라며 “그 요구에 화답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나의 책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고고도 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와 관련해 “사드 배치에 관한 한국 정부의 논의는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투명성이 담보되는 절차에 관한 것”이라며 “이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우리 정부에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나는 한-미 간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정당한 법 절차를 지키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이 한-미 동맹의 발전에도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여러분의 깊은 이해와 공감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