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1926년 스페일 출신 이주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아바나대학 재학 시절 사회주의 민족해병 혁명 참여
바티스타 독재정권 타도위해 몬카다 병영 습격 실패 뒤
“역사가 날 무죄로 하리라” 법정 진술 남기기도
1959년 친미 독재정권 축출한 공산혁명 성공 후
2008년 모든 공직 사퇴 전까지 반세기 권력 장악
미-쿠바 관계 정상화 보며 경계심과 이상 붙들어
아바나대학 재학 시절 사회주의 민족해병 혁명 참여
바티스타 독재정권 타도위해 몬카다 병영 습격 실패 뒤
“역사가 날 무죄로 하리라” 법정 진술 남기기도
1959년 친미 독재정권 축출한 공산혁명 성공 후
2008년 모든 공직 사퇴 전까지 반세기 권력 장악
미-쿠바 관계 정상화 보며 경계심과 이상 붙들어
쿠바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 밤(현지시각) 타계했다. 향년 90.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은 26일 0시가 조금 지난 시각 쿠바 국영 티브이(TV) 방송을 통해 자신의 친형이자 ‘혁명 동지’인 피델의 부음 소식을 공표했다. 라울 의장은 “쿠바 혁명의 최고 사령관이 25일 밤 22시29분에 세상을 떠났다”며 “유해는 고인의 뜻에 따라 화장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아에프페>(AFP) 등 외신들이 전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6년부터 장 출혈로 수술을 받는 등 급속히 건강이 악화된데다 고령에 따른 쇠약함이 겹친 것으로 보인다.
피델은 2008년 2월에 동생 라울에게 최고 지도자 지위를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그가 가장 최근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9월 쿠바를 방문한 리커창 중국 총리와 면담하는 장면이 쿠바 국영매체에 소개된 게 마지막이었다.
앞서 지난 4월 피델은 쿠바 공산당 제7차 전당대회 폐회식에 참석해 “나는 곧 90살이 되고,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것이다. 그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이번이 내가 이 곳에서 말하는 마지막 순간이 될 것 같다”며 사실상의 고별 연설을 했다. 그는 당시 연설에서도 “쿠바 공산주의 사상은 인간이 열성과 품위를 가지고 일하면 인간에게 필요한 물질적, 문화적 재화를 생산할 수 있다는 증거로 남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고 말해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신념을 드러냈다.
피델 카스트로는 1926년 스페인 출신 이주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바나대학교 재학 시절, 남미를 휩쓸던 사회주의 민족해방 혁명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1953년에는 훌렌시오 바티스타 친미 독재정권을 타도하려고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실패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가 재판정에서 직접 한 변론에서 남긴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는 구절은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된다.
1955년 특사로 석방된 그는 멕시코로 건너가 쿠바 혁명을 수행할 게릴라 조직을 건설했다. 체게바라를 만난 것도 이때였다. 1959년 1월, 피델이 이끄는 혁명군은 아바나에 입성해, 부패하고 쇠락한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후 그는 반세기 가까이 총리, 공산당 제1서기, 국가평의회 의장을 연이어 맡으며, 2008년 공식 직위에서 완전히 물러나기까지 49년간 쿠바의 최고 지도자로 재임했다.
쿠바 혁명 직후부터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폭발물 시가, 독극물 우유, 옛 애인, 폭탄 조개, 고압 전기 등 온갖 기발한 수단을 동원해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카스트로는 “올림픽 경기 종목에 ‘암살 모면하기’가 있다면 내가 금메달일 것”이란 농담을 한 적도 있다.
철저한 반미주의자이자 공산주의 혁명가였던 피델 카스트로도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를 이기지는 못했다. 그는 미국과 쿠바가 냉전 시대의 오랜 단절을 끝내고 국교를 회복하는 역사의 전환기를 생전에 지켜본 뒤 세상을 떴다. 미국과 쿠바는 2015년 반세기에 걸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어 올해 3월에는 쿠바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그의 동생 라울 카스트로 간의 미-쿠바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그러나 피델은 역사적인 양국 정상회담 뒤에도 “제국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선물도 필요 없다”며 여전히 날 선 반미 감정을 드러냈었다. 피델은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쓴 글에서 “오바마가 달콤한 말로 연설했지만, 이 고귀하고 이타적인 나라의 사람들이 교육, 과학, 문화의 발전을 통해 이룩한 영광, 권리, 정신적 풍요를 포기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피델이 염원했던 ‘고귀하고 이타적인 나라의 풍요로움’의 꿈은 이제 후대들의 몫으로 남겨진 채, 도널드 트럼프(미국의 차기 대통령 당선자) 시대의 미국과 세계에서 또다른 시험대에 올랐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피델 카스트로(89·왼쪽)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현 의장. 아바나/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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